사람은 여러 번 바뀝니다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딛고

by 교양있는 개구리

한 모임에서 쫓겨난 적이 있다. 일종의 독서모임이었다. 내가 졸업한 '아름다운 서당'이란 단체의 이사장님께서 꾸리신 것이었다. 어디든 빠질 수 없는 나는 숙고 없이 가입했다. 졸업생 천여 명 중에서 5명이 모였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4명의 사유는 깊이가 달랐다. 내가 좋아하는 한근태 작가는 말한다. 자기 주제보다 높이 올라가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은 없다고 말이다. 난 미처 이를 깨닫기 전 일을 저질렀다. 난 그들과 독서 토론을 할 수준도 안 되었었고, 그 와중에 내가 맡은 책도 제대로 읽어가지 않았다. 이사장님은 단칼에 나를 내보내셨다. 심지어 직접 통보도 받지 못했다. 다른 팀원을 통해 전해 들었다. '얼마나 꼴도 보기 싫으셨으면 직접 말씀도 안 해주셨을까, 난 정말 최악이고 이제 아름다운 서당 커뮤니티에서 나는 끝이다.'라고 생각했다. 내가 아끼고 사랑하던 집단에서 퇴출당하는 것만큼 좌절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나의 상상일 뿐이었다. 이후에도 그곳에서 만난 교수님, 친구들과 관계를 잘 이어갔고, 도움도 많이 받았다. 그때의 부끄러움을 전화위복 삼았는지 모르지만 그 후 독서모임을 직접 만들어 운영한 지도 2년이 넘어간다. 우리 모임에는 아름다운 서당의 교수님이 셨던 은사님이 한 분 함께 해주시고 대학 후배 3명까지 총 5명이 함께 하고 있다. 여긴 좀 더 캐주얼한 독서모임이다. 모임날짜도 급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 바꿀 수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과하게 미안해한다던가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다. 모두가 모두의 사정을 양해하는 편이다. 쿨하고 편안하다.

언젠가 은사님께 이사장님의 독서모임에서 쫓겨났던 일에 대해 말씀드리며 한탄한 적 있다. 은사님은 쿨하게 말씀해 주셨다. '이사장님이 계시면 뭐가 다른가요? 그냥 너랑 안 맞았을 뿐입니다. 잊어버리세요.' 내가 이 분을 좋아하는 이유이다. 천근 같은 문제도 깃털같이 다루신다. 처음에는 '진지하게 안 받아들이시는 거 아냐? 뭐야, 말 한마디로 되는 일이었으면 말하지도 않았죠'라는 마음도 들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한 없이 가벼운 저 말씀에 내게 꼭 필요한 처방이 다 들어 있다는 걸 말이다.

모임에서 쫓겨나고 2년 정도가 지났을까? '아름다운 서당 창립 20주년' 행사가 있었다. 프로 참석러는 빠질 수 없다. 행사 전 당연히 이사장님도 오 실 텐데 어떻게 해야 하나 조금의 두려움도 느꼈다. 당일이 되었고, 전현직 교수님들과 1기부터 18기 졸업생, 현직인 19기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16기 졸업생인 내 자리는 꽤나 뒤였다. 나는 괜스레 큰 몸을 웅크리며 이사장님을 멀찍이서 살폈다. 쉬는 시간이 되고 드디어 결전의 시간, 친한 교수님들께 먼저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이사장님이 내 옆을 지나가셨다. 나는 2년간 묵힌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딛고 먼저 인사를 드렸다. '안녕하세요, 이사장님. 면목이 없습니당... 그때는 죄송했습니다.' 이사장님은 딱 두 마디를 남기고 떠나셨다. '어, 괜찮아~ 사람은 여러 번 바뀌어.' 서울에서 일하고 사신 지 수십 해이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갱생도 남자 특유의 말투였다.

우리 대다수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절대 안 바뀌어.'이렇게 믿는다. 사실 나는 여기에 반대해 왔다. 불과 8년 전에는 꿈꿀 수 조차 없었을 만큼 나 자신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나는 매년 매년 놀랍도록 발전한다. 사람들의 이야기가 '사람은 성장하고 발전할 수는 있지만 본판은 바꿀 수 없다'는 말이라고 할지라도 나는 반대한다. 어릴 때의 내 모습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주장을 펼치는 데 있어서 자신은 없었다. 첫째 이유는 사람은 안 바뀐다는 통념을 믿는 사람들이 절대적 다수라는 점, 둘째 이유는 그래서 내 의견에 동의해 주는 주변인들이 많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다. 한데 내가 존경하는 은사님들이 존경하는 진짜 어른, 서재경 이사장님께서 내게 직접 말씀해 주신 것이다. 사람은 여러 번 바뀐다고. 모두가 사람은 한 번 바뀌기도 힘들다고 하는데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여러 번이나 바뀐다고 말씀해 주신 것이다.

사람은 여러 번 바뀐다. 더 말할 것도 없는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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