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맥이란 건

요령이 될수 없다.

by duke j


서울시청 건너편 건물 지하에 보쌈정식을 파는 가게가 있다. 창덕궁 돌담 옆에 있는 보쌈집과 같이 자주 가는 곳이다. 오늘도 그 보쌈집에서 점심을 먹는데 바로 옆 테이블에서 직장인 3명이 정식에 막걸리까지 마시며 나누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오래된 관계는 아니었고 무언가 접점을 찾으려는 부단한 노력들로 봐선 처음 만났거나 만난지 얼마안된 사람들 같았다. 우선 고등학교부터 따졌다. 그나마 서로 졸업한 대학을 더듬지 않은게 얼마나 다행인지 싶었다. 일터에서 만난 사람들, 주로 윗사람과 자기의 관계, 그와 자신이 얼마나 막역한 사이인지를 서로간 경쟁적으로 역설했다. 인간사회에서 항상 반복되는 뻔한 자리잡기 과정이 또 한바퀴 돌고있는 현장을 목도한 거다.

고등학교 수업시간 중에 어느 과목 선생님이 살아갈 날들에 있어 인맥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당시 넉살이 좋아 여러 친구들과 두루 잘 사귀던 아이들 어깨가 들썩였다. 철이 들고 일터에 들어가기 위한 시험을 준비한 2년여를 포함해 20대 후반에 시작된 실무의 무지막지한 고됨은 도무지 사람들과의 관계를 새로이 시도하고 돈독하게 할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았다. 30대 중반까진 하루하루 눈앞에 쌓인 일들을 처리하느라 모든 에너지를 다 쓰는 일상이 계속 이어졌다. 두번째 일터였던 안진회계법인의 회장이던 차재능 대표가 그 상황을 위로했다. 40대까지는 굳이 지 앞가림도 못할 애들 친구라고 사귀고 만나 시간 쓸 필요가 없다고.. 무슨 얘긴지는 50대 쯤 살아남게 되면 알게 된다고. 40대를 지나며 다소 여유가 생기는 듯하니 그간 끊겨있던 지난 인연들로부터 연락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차대표 말대로 살아남아 추려지고 걸러진 친구들이 연결되기 시작한 거다. 고등학교 때 사교성 좋기로 유명했던 몇몇 아이들이 40이 넘어 아직 그 친교를 유지하며 잘 살고 있는지는 연락이 끊긴지 오래되어 그 아이들 소문을 전혀 못듣고 있다는 동문회장 녀석의 말로 미루어 짐작해 볼수 있다.

과거 클라이언트였던 중소기업의 사장은 아직까지도 전설로 남아있는 당시 삼성전자의 현직 부회장과 아주 긴밀한 친분이 있었다. 그 회사가 삼성전자에 납품하던 lcd 모듈에 대규모 하자가 발생해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하는 사고가 벌어졌을 때 내가 그에게 왜 부회장을 찾아가 사정하지 않냐 질문했더니 10여년 나이많던 그 양반이 한심하다는 듯 내게 답해줬다. "내가 그에게 청탁할 기회가 있다면 그건 죽느냐 사느냐를 결정할 절명의 상황으로 그것도 일생에 단 1번 뿐일거다. 지금은 내가 죽을 정도는 아니다."

인맥은 상대적인거다. 내가 아껴 마지않는 손흥민 뿐 아니라 괴물 김민재도 학교 후배임이 자랑스럽지만 냉정한 둘째애 질문마냥 그 후배놈들도 날 선배로 알아 줄지는 답이 뻔한 얘기다. 결국 다들 금과옥조처럼 사회생활의 엄청난 노하우라 믿고 있는 인맥이란건 과정이나 수단이 아니라 삶의 보상과 같은 결과물에 가깝다. 40대까지는 언제 떨어져 나갈지 모를 친구 만나며 시간 쓰지 말라던 오래전 상사의 냉혹한 말의 의미를 이제는 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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