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공무원

오래된 친구 얘기

by duke j


명절을 앞두고 오랜 공직을 떠나 야지로 나온지 몇달이 지났다는 어릴적 친구를 만나고 왔다. 나와 엇비슷한 시기에 합격했던 놈은 좋은 행정고시 성적에도 불구하고 당시 누구나 기피하던 체신청을 자원해 첫 공직을 시골벽지의 우체국장으로 시작했다. 경제기획원이나 재무부에 들어가 나중에 비빌 언덕이라도 되어주길 바랬으나 놈과 같은 대학 전자공학과를 1기로 졸업해 모 방송국의 설립멤버로 참여했고 당시 그 방송사의 임원이셨던 놈의 아버지가 하필 남들은 띄엄띄엄 보던 체신청에 자원하길 권고하셨다 했다. 우습게도 90년대말이 되자 놈이 근무하던 체신청 부서는 우리나라에서 막 태동한 이동통신 사업의 주무부처인 정보통신부의 주력 부서로 승격했고 질풍노도같은 조직의 성장세에 힘입어 시험 동기들이 사무관에 머무를때 놈은 이미 서기관, 부이사관으로 고속승진 길을 달렸다. 공무원으로 일하는 기간동안 동료들이 몇배의 연봉을 보장받고 이동통신사 임원과 법무법인 파트너 같은 자리로 빠져 나가는 걸 지켜보면서도 무덤덤해 했다. 좌파정권 말기에 청와대 비서관으로 차출되자 사실 저 우파에요 라고 소소하게 버텨보려다가 결국 붙잡힌 목덜미를 풀지못해 대통령실에 끌려갔고 그곳을 마지막 근무지로 정권이 바뀌는 시점에 사직했다. 전 정권때 바뀐 연금정책으로 60살이 되기 전까진 공무원 연금도 못받고 퇴임후 3년간 취업제한도 걸려있어 월급쟁이 공무원 최고위직을 지낸 놈이 생계가 막막했다고 한다. 다행히 법무법인 고문직에 대한 취업 승인이 겨우 나서 생활을 이어갈 방편이 마련되었다고 좋아했다.

처음 공무원 일을 시작할땐 사명감이네 국가에 대한 희생이네 하는 말을 주변 놈들의 어설픈 자아도취적 슬로건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짓으로 수십년을 살아보니 정말 굳은 의지 없인 버텨내기 힘든 최악의 직업이었다 회고했다. 퇴임시점까지 매일매일 극한의 긴장감 속에서 격무에 시달려야만 했고 재산이랄 것도 없는 것들에 대한 정기적인 신고는 물론 지 처의 해외여행 상세내역까지 다 보고해야 했다고 한다. 전직장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은 차관이나 장관으로 지명되어야 하는 건데 제안이 오더라고 응하고 싶진 않다고 했다.

국가에 본인의 모든걸 헌신하고 퇴임후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늙은 전직 공무원을 친구로 둔 내가 점심엔 만원짜리 곰탕을 호탕하게 쐈고 놈은 지 사무실에서 공짜로 내린 커피를 내게 대접했다.

공무원 시험 시장이 한창 호황일때 나는 안정적인 직업군이 당면해야 할 운명적인 위험에 대해 아이들에게 경고했다. 안정의 다른말은 곧 퇴보란 걸 그간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순간 공무원 시험에 대한 인기가 식어간단 말이 들리더니 요즘엔 어렵게 시험을 봐 합격한 어린 공무원들의 퇴직이 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미 그바닥에선 헬게이트가 열렸다는 걸 숨길수 없게된 거다. 분명한건 이제는 우리가 그들을 격려하고 지지하고 응원해줘야 할 시기가 왔다는 점이다. 적어도 평생을 나라에 헌신한 공복이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을 우리가 계속 모른척하고 넘어간다면 나까지 포함해 늙은이만 드글드글 남게될 우리 공동체의 미래는 지극히 암울해질 거란 사실 만큼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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