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규
(2023.8.7일 퇴임 소식 듣고.)
첫 일터에서 내가 배속된 감사본부에 상무님이 한분 계셨다. 회계법인 안 누구에게나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고 항상 존대를 해주셨던 안경을 쓰고 깡마른 몸을 지닌 분이었다. 가끔 어사인된 일이 미숙해 리뷰노트를 받아 볼때면 둥글둥글한 글씨체가 여자가 쓴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었다. 그때만해도 우리 업무는 계산기와 연필과 산더미같은 종이파일로 이뤄졌었다. 특화된 분야가 은행 외부감사 일이어서 어느정도 느긋해질만도 한 파트너였음에도 항상 분주한 분이셨다. 소문을 들어보니 대학시절 학생운동 경력 때문에 차석으로 합격했던 행시를 포기하고 숫자일로 경로를 바꿔 시험을 다시 봤고 옆방 다른 상무님이 매니저일때 1년차 스텝으로 입사후 바로 고속승진을 거듭해 어느새 상사이던 그 상무님과 직급이 같아졌다 했다. 책 이야길 나누다 그가 혼잣말처럼 했던 말이 기억난다. 본인이 해외출장을 다녀올 때면 매번 공항 검색대에서 출국할 땐 없던 큰 짐을 수색 당했는데 가방을 열어봐야 벽돌처럼 무거운 책들만 가득해서 세관직원이 항상 이게 다 머냐고 질문했었다고.. 내가 이걸로 먹고 사는 사람인데 밖에 나가서 사올게 책 말곤 머가 더 있겠냐고 매번 똑같이 대답해줬다 했다. 일본의 연계 펌에 1년 남짓 교환근무를 다녀 왔는데 그 일본 회계법인 안에서 한국에서 천재가 왔다고 소문이 자자했었다고 했다. 같이 근무했던 매니저가 말해준 바 국내 메이저 뱅크 은행가들과 한담을 나누는 자리가 마련되면 그 은행의 현직 실무 임원들보다 은행업계 사정을 더 잘알고 있어 다들 놀란다고 했다. 나중에 물어보니 은행업계에서 출간하는 모든 잡지를 다 구독해 보고 있다고 해 더 놀랐다고 했다. 내가 그 법인을 퇴사하고 몇년 후에 그분도 그곳을 퇴사했다는 소식을 기사를 통해 전해 들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오늘자 기사에선 그가 회계법인을 나와 쭉 몸담고 있던 내 주거래 은행의 금융지주 회장 직 연임을 이젠 고사하겠단 뜻을 후배들에게 전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소외된 시골의 한 청년이 흰머리 가득한 노년이 될 때까지 일생을 다바쳐 걸어온 금융인의 여정을 이젠 끝내려 하나보다. 윤종규 회장의 아름다운 은퇴에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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