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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웃는남자> 후기 및 리뷰

우리는 무엇을 보고 웃는가, 웃는 남자가 비추는 사회

by Just Be

뮤지컬 <웃는 남자> : 슬픈 광대가 던지는 질문


2025년, 뮤지컬 웃는 남자가 네 번째 시즌으로 우리 곁에 돌아왔습니다. 2018년 초연 이후 매 시즌마다 진화를 거듭하며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이 작품은, 다시 한번 웅장한 무대와 가슴을 울리는 음악으로 감동을 선사할 예정입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돌아온 이번 시즌은 과연 어떤 새로운 매력을 보여줄까요.


뮤지컬 웃는 남자는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입니다. 2018년 초연 이후 한국 창작 뮤지컬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압도적인 무대 연출과 감성을 자극하는 음악, 그리고 인간의 존엄과 계급의 모순을 깊이 탐구하는 서사가 결합되어 관객들에게 강력한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웃는 남자는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입니다. 시대를 초월한 이야기 속에서 인간의 존엄과 사회적 모순을 깊이 있게 탐구하며, 관객들에게 단순한 감동을 넘어선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아름다운 음악과 강렬한 연출, 그리고 시대를 넘어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는 이 작품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줍니다.


기형적으로 입이 찢어진 채 버려진 주인공 그윈플렌이 서커스단에서 자라며, 한순간에 귀족이라는 신분을 얻게 되면서 겪는 극적인 인생 역정. 사랑과 배신, 정의와 위선,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그의 삶 속에서 우리는 과연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 본 리뷰는 뮤지컬 <웃는 남자>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뮤지컬 <웃는 남자> 줄거리


어느 날, 영국의 한 해안가에서 얼굴이 기형적으로 찢어진 채 버려진 소년 그윈플렌은 차가운 바람 속에서 홀로 길을 헤맵니다.


그 과정에서 그는 같은 처지의 눈먼 소녀 데아를 발견하고, 우르수스라는 방랑 극단의 보호 아래 자라게 됩니다. 우르수스는 가난하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철학자이자 광대였고, 두 아이를 친자식처럼 돌보며 키웁니다.


그윈플렌은 서커스에서 얼굴이 기괴하게 찢어진 채로 사람들을 웃기는 광대로 성장합니다. 그의 비극적 외모는 역설적으로 그를 유명한 존재로 만들었고, 사람들은 그의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지만 정작 그가 느끼는 감정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삶은 한순간에 바뀌게 됩니다. 알고 보니 그는 몰락한 귀족의 아들이었으며, 그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귀족 사회로 편입됩니다. 갑작스럽게 주어진 귀족 신분과 화려한 삶. 하지만 그곳에서 그는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귀족들은 그의 존재를 단순한 볼거리로 소비하며, 그를 진정한 인간으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지닌 권리는 허울뿐이었고, 그의 고통조차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로 변질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정체성과 신념을 지키기 위해 무대를 박차고 나가며, '모두의 세상'을 꿈꾸는 마지막 결정을 내립니다.


그는 귀족과 천민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외치며, 자신의 존재를 다시금 되찾으려 합니다. 하지만 그의 외침은 사회의 냉정한 현실 앞에서 거대한 벽에 부딪히고 맙니다. 과연 그의 외침은 누군가의 마음에 닿았을까요?




뮤지컬 <웃는 남자> 무대와 넘버


뮤지컬 웃는 남자는 그야말로 시각적, 청각적 감동을 극대화한 작품입니다. 웅장한 무대 연출과 감성적인 음악이 조화를 이루며 관객을 몰입하게 만듭니다. 무대 연출은 작품이 담고 있는 주제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며, 넘버는 등장인물들의 감정과 갈등을 극대화하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제가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콤프라치코스의 배가 가라앉는 오프닝 장면입니다. 부드러운 천을 활용해 바다를 표현하고, 거대한 폭풍우를 영상으로 형상화하며 배가 가라앉는 장면은 초반부터 관객들을 몰입하게 만듭니다.


이 장면은 일반적인 재현이 아니라, 인간이 가진 잔혹함과 운명 앞에서의 무력함을 보여줍니다. 그윈플렌이 이 폭풍 속에서 버려지는 장면은 그의 삶이 처음부터 철저하게 부조리한 운명 속에 던져졌음을 시각적으로 강조하는 연출입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장면은 상원 의회 장면입니다. 귀족들로 가득한 상원 의회의 화려한 무대는 그윈플렌이 들어간 세계가 얼마나 화려하고 높은 곳인지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웅장한 배경과 화려한 조명, 높은 무대에서 아래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은 귀족 사회의 위선을 시각적으로 강조합니다. 이곳에서 그윈플렌이 외치는 그 눈을 떠라는 넘버는 이러한 무대의 구성으로 인해 권력자들을 변화시키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이 됩니다.


그러나 이 공간에서 그의 외침은 끝내 조롱과 무관심 속에 사라지며, 귀족들이 가진 절대적인 힘과 냉혹한 현실을 더욱 부각시킵니다.


음악적으로도 이 작품은 주제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넘버들을 통해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특히 세 곡이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모두의 세상'은 그윈플렌이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를 가장 직접적으로 표출하는 곡입니다. 가사와 멜로디는 희망과 열정을 담고 있으며, 그윈플렌이 사회적 불평등과 부조리에 맞서고자 하는 마음을 강렬하게 드러냅니다.





이 노래는 그저 바람이 아니라, 그가 가진 신념을 명확히 하는 순간으로 작용하며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이어지는 '그 눈을 떠'는 이러한 의지를 바탕으로 귀족과 여왕을 설득하는 넘버입니다.


그윈플렌은 연설이 아니라, 자신이 겪어온 삶의 모든 경험과 고통을 토해내듯 노래합니다. 하지만 결국 그의 외침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현실의 벽 앞에서 좌절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는 그윈플렌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맞서려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뮤지컬 웃는 남자는 무대와 음악이 결합해 단순한 서사를 넘어,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강력한 작품으로 자리합니다. 연출과 넘버가 어우러지며, 작품의 핵심적인 질문, '과연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를 더욱 선명하게 전달합니다.




진정한 정의와 평등은 가능할까


뮤지컬 웃는 남자는 일반적인 영웅 서사가 아니라, 우리가 꿈꾸는 정의와 평등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작품입니다. 작품 속에서 그윈플렌은 최하층의 삶에서 벗어나 귀족의 세계로 들어가지만, 결국 그곳에서도 진정한 평등을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가 원했던 '모두의 세상'은 공작이 된 그에게조차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의회에서의 태도 변화는 계급의 이동이 아니라, 권력을 가진 자들이 어떻게 약자를 대하는지, 그리고 사회 구조가 얼마나 단단히 굳어져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윈플렌이 의회에서 그 눈을 떠를 부르며 평등과 자유를 외쳤을 때, 그의 목소리는 조롱 속에 묻혔습니다. 그를 바라보는 귀족들의 표정에는 경멸과 무관심이 서려 있었고, 여왕 또한 그의 외침을 허공에 스쳐 지나가는 말처럼 흘려보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의 외침이 전혀 의미 없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조시아나 여공작은 그의 외침을 듣고 처음으로 흔들렸고, 우리 관객 또한 그의 절규를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이는 변화가 항상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작은 균열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우리는 흔히 정의와 평등을 실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체념하지만, 웃는 남자는 포기하지 않고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야기합니다.


사회의 구조적 모순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지만, 누군가의 외침이 다른 이의 마음을 흔들고, 작은 움직임이 모이면 결국 거대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작품은 그저 현실을 비관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용기가 어떻게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더 나아가, 이 이야기는 현대 사회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정의를 외치는 이들은 많지만, 그들의 목소리가 즉각적으로 사회를 바꾸는 경우는 드뭅니다.


하지만 그 목소리들이 계속해서 이어질 때, 결국 세상의 방향은 조금씩 변하게 됩니다. 그윈플렌의 외침은 당장 귀족 사회를 무너뜨리지 못했지만, 그는 침묵하지 않았고, 그 침묵하지 않은 순간이 바로 변화의 시작이었습니다.


웃는 남자는 우리가 이상을 추구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작은 움직임이 거대한 흐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어디로부터 나오는가


뮤지컬 웃는 남자는 인간의 존엄성이 어디에서 비롯되며, 그것이 사회적 환경 속에서 어떻게 위협받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그윈플렌은 태어나면서부터 그의 의지와 무관하게 비극적인 운명을 짊어졌습니다.


그는 얼굴이 콤프라치코스에 의해 기형적으로 찢어진 채 버려졌고, 그의 외형은 세상으로부터 끊임없는 조롱과 공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윈플렌은 외적으로는 희화화되었을지언정, 누구보다도 깊은 감성을 지닌 인간이었습니다. 작품은 이를 통해 우리 사회가 인간의 가치를 어디에서 판단하는지를 되묻습니다.


그윈플렌은 신분이 바뀌어 귀족이 되었을 때조차도 존엄한 존재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만약 인간의 존엄이 신분과 권력에서 비롯된다면, 귀족이 된 그는 마땅히 존엄한 존재가 되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습니다. 귀족 사회에서조차 그는 여전히 기이한 존재로 취급되었고, 그의 말은 조롱받았습니다. 이는 인간의 존엄이 사회적 지위나 권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인간관계와 사회 속에서 발견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윈플렌이 가장 인간다운 존엄을 지킬 수 있었던 순간은 데아와 우르수스와 함께했을 때였습니다. 그들은 그윈플렌을 외적인 모습이 아니라 그의 내면을 보고 사랑했으며, 그가 가진 진정성을 이해해 주었습니다.


이는 인간의 존엄성이 사회가 정해 놓은 기준이 아니라, 타인의 존중과 사랑 속에서 형성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권력과 지위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존엄을 인정받을 때 비로소 진정한 가치를 가지게 됩니다.


결국 웃는 남자는 인간의 존엄성이 어디에서 비롯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권력과 신분이 인간의 가치를 보장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인간을 평가해야 할까요.


그리고 우리는 얼마나 자주 타인의 가치를 외적인 기준으로 재단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작품은 이러한 질문을 통해, 인간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다시금 점검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타인의 비극을 어떻게 소비하는가


그윈플렌의 인생은 비극적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의 고통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입니다. 처음에는 그저 사회가 그의 불행을 소비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대중과 귀족이 그를 소비하는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서커스에서 대중들은 ‘웃는 남자’인 그윈플렌을 보며 환호합니다. 그들이 그의 얼굴을 보고 웃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단순한 조롱이었을까요?


어쩌면 그들은 잠시나마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의 무대를 찾았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대중은 고된 삶 속에서 작은 위안을 얻고, 그의 공연을 통해 희망을 꿈꿨을 것입니다. 서커스는 그저 유희가 아니라, 현실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웃음을 통해 삶을 견디게 해주는 공간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윈플렌 역시 무대 위에서 존재감을 느끼고, 자신이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귀족들에게 그윈플렌은 전혀 다른 존재였습니다. 조시아나 공작과 데이비드 경을 비롯한 상류층 인물들은 그를 진정한 인간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윈플렌이 귀족으로 신분이 상승한 이후에도, 그들은 그를 조롱하고 하나의 ‘기이한 존재’로 소비했을 뿐입니다.


그들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그의 외모와 배경을 오히려 더 흥미로운 볼거리로 여겼습니다. 여기서 귀족들의 태도는 오락을 넘어선 냉소적 착취에 가깝습니다.


서커스에서 대중들이 그윈플렌을 보며 위안을 얻었다면, 귀족들은 그를 이용해 자신의 권력과 특권을 재확인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차이를 보면, 웃는 남자가 그저 ‘사회가 비극을 소비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누가 어떻게 그 비극을 소비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대중은 현실의 고단함을 잠시 잊기 위해 그의 공연을 찾았지만, 귀족들은 자신의 우월함을 확인하기 위해 그의 존재를 이용했습니다. 문제는 소비 그 자체가 아니라, 소비의 태도와 맥락이었던 것이죠.




그윈플렌은 대중과 함께할 때는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귀족 사회에 들어가면서 그는 더 이상 누구에게도 위안을 줄 수 없었고, 자신의 자리도 잃어버렸습니다.


그는 데아와 우르수스를 떠올리며 다시 그가 마주한 대중(귀족) 앞에서 서기를 선택하지만, 이번에는 그를 향한 조롱과 야유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의 외침이 허공에 흩어지는 순간, 작품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그저 구경거리로 소비할 것인가, 아니면 그의 목소리에 진정으로 귀를 기울일 것인가를 말이죠.



잔인한 세상, 그럼에도 살아나가야 해


뮤지컬 웃는 남자를 보고 나면, 세상은 참으로 잔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귀족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윈플렌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었고, 오히려 더 깊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이미 힘겹게 살아가던 그윈플렌과 우르수스, 그리고 데아에게는 더욱 가혹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데아는 심장이 약한 상태에서 그윈플렌이 죽었다는 잘못된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아 세상을 떠납니다. 자신의 유일한 사랑을 잃어버린 그윈플렌은 더 이상 삶을 지속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결국 그녀를 따라 떠나게 됩니다.


우르수스는 사랑하는 아들과 딸을 잃고 남겨지게 됩니다. 그렇게 그들에게 세상은 끝내 가혹했고, 불공평했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단지 절망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웃는 남자는 오히려 이렇게 잔혹한 세상 속에서도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말하는 작품입니다.


처음 그윈플렌과 데아가 만났을 때를 떠올려 봅시다. 데아는 차가운 환경에서 죽어갈 위기에 처했지만, 그윈플렌의 손에 의해 삶을 되찾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지쳐 쓰러질 듯한 그윈플렌 역시 데아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습니다.


서로를 발견하며 생명을 나누었던 두 사람이, 결국 서로를 잃고 떠나게 되는 모습은 가슴 아프지만, 동시에 그들의 삶이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세상이 얼마나 가혹한지 다시금 깨닫지만, 동시에 그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함을 배웁니다. 세상이 언제나 우리에게 우호적이지는 않지만, 결국 인간은 서로를 통해 살아갈 힘을 얻고,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윈플렌과 데아의 사랑이 잠시나마 그들에게 따뜻한 안식처가 되어주었듯이, 우리 또한 삶 속에서 서로에게 위로와 힘이 되는 존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결국 웃는 남자는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묻고 있습니다. 세상이 부조리하고 잔혹하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그 속에서도 살아갈 의미를 찾을 것인가.


우리는 그윈플렌처럼 세상을 향해 외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그 자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부디, 이 잔인한 세상 속에서도 당신만의 의미를 찾고, 희망을 놓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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