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이중주, 그 비극적 분리에 대하여
하나의 문화 혁명이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뮤지컬 '멤피스'는 이 질문에 대해 열정적인 음악과 애절한 사랑 이야기로 답하는 듯 보이지만, 그 화려한 막을 한 겹 걷어내면 우리는 보다 복잡하고도 냉정한 역사의 작동 방식을 마주하게 된다.
작품은 1950년대 인종차별이 만연한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로큰롤이라는 새로운 음악이 어떻게 사회의 벽을 허물었는지를 그린다. 그러나 이 작품의 진정한 가치는 단순히 통합의 메시지를 찬양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멤피스'는 하나의 사회적 변혁이 성공에 이르기까지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두 가지 역할, 즉 모든 것을 시작하게 만들지만 스스로는 불꽃처럼 소모되어 버리는 '촉매제(Catalyst)'와, 그 흐름을 타고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떠오르는 '아이콘(Icon)'의 동행과 그 비극적 분리를 정교하게 해부하는 연대기이다.
이 비평은 주인공 휴이 칼훈과 펠리샤 패럴을 각각 촉매제와 아이콘으로 규정하고, 이들의 엇갈린 운명을 통해 작품이 던지는 묵직한 질문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1막의 서사는 혁명이 품은 이상주의적 열망을 눈부시게 압축한다. 백인 사회의 규범에 섞이지 못하는 이단아 휴이는 순수하게 ‘좋은 음악’을 알리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흑인들의 언더그라운드 클럽 문을 두드린다.
그에게 흑인 음악은 금기의 대상이 아닌, 자신의 영혼을 뒤흔드는 ‘진짜 음악’일 뿐이다. 백화점 라디오 부스를 무단으로 점거하고 흑인 음악을 송출하는 그의 행동은, ‘있는 그대로의 것(Authenticity)’이 그 자체로 사회의 위선적인 질서를 무너뜨리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1막의 이상주의적 믿음을 상징한다.
이 시기의 휴이는 거침없다. 그의 무모한 열정은 델레이의 경계를 허물고, 굳게 닫혔던 방송국의 문을 열며, 마침내 도시의 흑백 청소년들을 하나의 주파수 아래 춤추게 만든다.
펠리샤와의 사랑 역시 사회적 금기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며 모든 장벽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환상을 심어준다.
1막의 성공 서사는 이처럼 거대하고 짜릿해서, 관객마저도 혁명이란 이토록 뜨거운 진심만으로도 가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져들게 만든다.
하지만 2막은 1막이 쌓아 올린 이상주의의 성채를 무너뜨리며 시작된다. 폭행 사건이라는 물리적 충격과 함께, 혁명의 에너지는 이제 주류 시스템의 논리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 과정을 가장 첨예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뉴욕 방송계의 접근이다.
그들은 휴이가 가진 혁명의 ‘에너지’는 원하지만, 그 에너지의 원천인 ‘날것 그대로의 모습’은 거부한다. 휴이에게 말끔한 양복을 입히려 하고, 그의 분신과도 같은 흑인 댄서들을 뉴욕의 전문 댄서로 교체하려는 시도는, 순수한 문화 운동이 어떻게 거대 자본과 시스템 안에서 ‘상품화’되고 ‘길들여지는지’에 대한 냉정한 묘사다.
시스템은 혁명의 과실은 취하되, 그 위험한 불씨는 통제하려 한다. 이러한 외부적 압력은 곧바로 휴이와 펠리샤의 내적 갈등으로 이어지며, 두 사람은 이제 단순히 사랑을 지키는 것을 넘어, 혁명의 다음 단계, 즉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에 대한 각자의 답을 찾아야만 하는 현실주의의 시험대 위에 놓이게 된다.
이 시험대 위에서 두 주인공의 성장 서사는 비극적으로 엇갈린다. 휴이는 ‘촉매제’로 남고 펠리샤는 ‘아이콘’으로 떠오른다. 휴이의 성장은 역설적이게도 ‘성장하지 않음’으로써 완성된다.
그의 정체성은 ‘멤피스’ 그 자체이며, 그는 자신이 일으킨 변화의 물결이 멤피스를 넘어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을 본능적으로 거부한다.
그에게 뉴욕은 자신의 음악과 사랑을 상품화하려는 시스템일 뿐이다. 타협을 거부하고 생방송에서 펠리샤와 키스하는 장면은, 그의 순수함이 시대의 변화 속에서 어떻게 자기 파괴적인 고집으로 변질되는지를 보여주는 비극의 절정이다.
그는 변화의 문을 연 위대한 인물이지만, 정작 그 문을 통과하는 방법은 알지 못했거나 원하지 않았다. 그의 마지막 노래 ‘Memphis Lives in Me’는 그래서 더없이 뭉클하면서도 슬프다.
그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낸 자의 자랑스러운 선언인 동시에, 변화된 세상에 합류하지 못하고 과거의 영광 속에 남겨진 자의 쓸쓸한 독백이기 때문이다.
반면 펠리샤는 촉매제가 열어준 기회를 바탕으로 스스로를 시대의 아이콘으로 빚어낸다. 그녀의 성장은 휴이의 이상주의만으로는 자신과 그의 안전조차 지킬 수 없다는 현실을 직시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녀가 뉴욕행을 선택하는 것은 사랑을 저버린 배신이 아니라, 휴이가 만들어준 기회를 완성시키기 위한,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주체적인 결단이다.
성공하기 위해 때로는 타협하고, 자신의 재능을 더 큰 시스템 안에서 증명하는 그녀의 길은, 흑인 여성이 겪어야 했던 시대의 한계를 온몸으로 돌파해나가는 생존 투쟁의 과정 그 자체다.
"너는 영웅이고, 나는 영혼을 파는 바보인 것처럼 말하지 마" 라는 그녀의 항변은, 생존을 위해 현실과 싸우는 자신만의 방식을 이해받지 못하는 깊은 고독을 드러낸다. 그녀는 멤피스라는 지역적 상징을 넘어, 흑인 음악의 성공 그 자체를 상징하는 전국적인 아이콘으로 거듭난다.
결론적으로 '멤피스'는 성공한 혁명과 실패한 혁명가라는 씁쓸한 역설을 통해 관객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로큰롤은 인종의 벽을 넘어 미국의 주류 문화가 되었으니 ‘혁명’은 성공했다. 하지만 그 혁명을 점화했던 ‘혁명가’ 휴이는 개인적으로 모든 것을 잃었다.
작품은 이 아이러니를 통해 사회 변화의 복잡한 속성을 드러낸다. 변화를 시작하는 사람과 그 변화의 과실을 누리는 사람은 다를 수 있으며, 한 시대의 영웅은 다음 시대에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것. '멤피스'는 진보의 과정에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희생과 대가, 그리고 역사 속에서 진정한 ‘승리’란 무엇인지에 대해 첨예하게 묻는다.
스타가 되어 돌아온 펠리샤와 라디오 부스에 남은 휴이가 마지막으로 함께 부르는 노래는 그래서 단순한 재회가 아니라,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촉매제와 아이콘이 서로의 역사를 조용히 인정하고 작별을 고하는 의식처럼 보인다.
휴이가 남긴 유산은 그의 이름이 아니라, 그가 바꾼 도시 ‘멤피스’와 그곳에서 더 큰 세상으로 뻗어 나간 펠리샤의 목소리 그 자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