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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날

장애인 가족 이야기

by 오리냥

참 좋은 날


어제는 종일 비가 내렸지.

네가 그토록 좋아하는 복지관의 보호자 간담회에 가야 하는데 말이야.

버스 타고 먼저 가겠다는 너를 굳이 붙들고 나와 함께 가자며 외출 준비하느라 바빴던 아침.

도착하자마자 넌 너의 세계 속으로 서둘러 들어가고 나니 한 시간 남짓 여유롭게 차 마시며 책 읽을 시간이 주어지더구나.

어수선한 주변 속에서 글에 집중한다는 게 쉽진 않아 두리번거리기도 하고 창에 매달린 빗방울에 카메라를 들이대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지. 누군가 내 모습을 봤다면 참 한가한 아줌마라며 혀를 찼을지도 모를 일.

너와 나의 함께 또는 각자의 빼곡한 하루의 삶 사이사이에 지나가는 이야기들은 그렇게 채워지고 흩어지곤 하지.

너의 공간으로 들어가야 할 시간이 되어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들고 너 있는 곳으로 이동했지.

내겐 낯선 공간이지만 너에겐 익숙한 장소이며 그토록 좋아하는 그곳에서 넌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며 너의 시간을 만들고 있었잖아. 너 있는 곳으로 가는 동안 왠지 들뜬 기분도 들었어. 너희가 준비했다는 연극은 어떤 무대일까 궁금했지. 그런데 전혀 뜻밖의 이벤트를 준비했던 거야.

여덟 명의 아이들이 아니 거뭇한 수염 자국이 있는 청년들이 엄마를 그리고 엄마에게 선물할 쿠키와 손거울을 만들어 놓았더라. 그리고 하트 모양의 붉은 천을 빙 둘러 촛불이 켜져 있고 그 위에 여덟 개의 편지 봉투라니. 무대 주변은 온통 하트 천지였지.

앤서니 브라운의 ‘우리 엄마’ 책을 읽고 난 후 아이들이 느끼는 엄마를 적었다는 편지가 그 봉투 안에 들어 있다는 선생님의 힌트. 편지는 어떤 내용일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울렁이는 감정을 추슬러야만 했어.

몇몇 엄마는 눈가가 촉촉해지고 어떤 엄마는 아예 휴지를 꺼내 눈가를 훔치고 있었지. 난 말이지 뭐랄까 그냥 담담해지려고 애썼어. 담담해지려는 노력.

드디어 네가 불려 나왔지. 흰색 티에 청바지를 입고 붉은 리본을 가슴에 달고 긴장한 표정으로 말이야. 풋, 웃음이 나왔어. 넌 너의 편지를 찾아내더니 천천히 읽어 내려갔지.

엄마 아들 김종호입니다.

엄마는 아름다운 분이세요.

엄마는 저에게 마치 북극곰처럼 안아주시죠.

항상 엄마는 저에게 슈퍼맨 같은 분이세요.

엄마 사랑해요.

엄마 고생했어요.

김종호 올림

편지를 읽으며 떨리는지 잠시 잦아드는 목소리. 그래도 끝까지 또박또박 읽더구나.

난 너의 편지글 마지막 문장에 꽂혔단다. 엄마, 고생했어요…….

고생이란 단어 안에 들어있는 너와 나의 긴 시간.

그건 고생이 아니었어. 그냥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인생을 배워가는 시간이었단다. 아픈 시간을 통과하고 그 안에서 어떻게든 행복을 찾아보겠다는 애씀이었다고나 할까.

그냥 먹먹하더구나. 떨리는 너를 안아주며 난 많이 행복했어. 우린 이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거야. 수만 갈래의 인생길에서 우리가 선택한 삶은 이거였어. 잔잔하고 소소한 행복.

너로 인해 돌아오는 빗길이 마치 축복의 길처럼 느껴졌어. 그만큼 난 행복했단다. 넌 이후 다시 너만의 시간을 내닫고 있었겠지. 난 하루 내내 너로 인해 들떴었는데 넌 어땠는지 모르겠다. 활동 끝났다며 전화하는 목소리 너머의 그 활기가 무엇을 뜻하는지 정도로 네 감정을 알아챘지. 너도 행복했구나.

어젠, 너로 인해 참 좋은 날이었어. 고맙고 또 감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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