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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냥 Feb 02. 2024

엄마 고향은 나주

살아가는 이야기

  “이모, 몸은 좀 괜찮아? 병원엔 가봤고?” 

  “어, 잘 지내고 있응께, 걱정마라. 넌 어뜨냐?” 

  오랜만에 이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 전해지는 이모 말투는 전라도 사투리와 섞여 투박하면서도 정겹다. 특별한 이유 없는 안부 전화이기에 용건은 늘 간단하다. 잘 지내고 있는지, 요즘 사는 건 좀 어떤지.

  엄마 고향은 전라남도 나주다. 지금은 도로가 좋아 당일로 다녀올 수 있는 곳이지만, 60년대엔 굽이굽이 외진 산골이라 타지로 나가기 쉽지 않았단다. 나주에 살던 엄마가 삼팔선 근방 철원에 살던 아버지와 어떻게 만났을까. 나중에 들은 얘기로, 고모할머니가 나주로 피난 갔다가 만난 엄마를 중매 서준다며 데리고 올라왔단다. 아버지의 사진만 보고 혼인할 생각을 하셨다니. 그렇게 아버지를 만나 자식을 줄줄이 다섯을 낳으셨다.

  우리 다섯 남매는 외가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자랐다. 외할아버지는 우리가 어릴 때 돌아가셨고 외할머니는 살던 집을 떠나 타지에서 막내 외삼촌과 지낸다고 했다. 엄마는 둘째 딸이었으나 맏이처럼 동생들을 챙겼다. 그래서 그랬는지 이모와 삼촌이 휴가 때가 되면 자주 놀러 왔다. 애인이 생기면 애인을 데리고 인사 오고, 아이가 생기면 아이와 함께 왔다. 우리는 그것을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로 여겼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건 내가 결혼한 뒤였다. 장례식에 모인 친인척들이 둘러앉아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던 중, 화제는 돌아가신 할머니를 이어 할아버지로 넘어가고 엄마가 말을 이었다.

  고모님 따라 고향 집을 떠나던 날, 친정아버지께 마지막 인사를 건네자 벌컥 화를 내며 가지 말라고 호통을 치셨단다. 그래도 가겠다고 고집을 피우자 한참을 노여운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대뜸 지금 가면 다시는 내 집에 발 들일 생각을 말라며, 당신이 죽은 후에 와서 울면 관 속에 누웠다가도 일어나 내쫓겠다고 불같이 화를 내더란다. 그 말이 어찌나 무섭고 서럽던지 발길을 떼어놓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몇 년 뒤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친정에 갔지만, 생전에 하신 그 말이 떠올라 울음을 목으로 삼키며 넙죽넙죽 절만 했단다. 그땐 동생들이 많아 엄마라도 먹는 입을 줄여야만 했었다며. 


  그 긴 세월을 말 한마디 없이 견뎌내더니, 할머니 돌아가신 뒤에야 푸념처럼 꺼내는 옛이야기는 가슴 절절한 엄마의 한이었다. 그날 이후로 외할아버지 이야기를 두 번 다시 입 밖에 내지 않고 가슴에 묻고 사셨다.

  엄마가 다시 고향 이야기를 꺼낸 건 췌장암 4기 판정을 받은 몇 달 후였다. 집에서 요양하며 통원 치료를 받던 중 불쑥 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다. 어디로 가고 싶냐 물으니 나주에 한 번 가봤으면 좋겠는데 갈 수 있겠냐며 말끝을 흐렸다. 남동생과 의논 끝에 엄마와 친한 친구 두 분을 함께 모시고 가기로 했다.


  나주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먼 곳이었다. 몇 시간을 달려가는 동안 엄마는 수시로 찾아오는 통증에 차에서 내려 잠깐씩 쉬며 이동을 해야만 했다. 아침 일찍 출발했건만 저녁이 다 되어 겨우 도착했다. 옛 집터를 찾는 게 쉽진 않아 주변을 서성이는데 때마침 동네 어르신이 지나가다 아는 체를 한다.

“누굴 찾소?”

“예전 여기 살던 성씨 집 둘째 딸인디요.”

“긍가? 근디 무슨 일로 왔소?”

“여행 가다가 근처 지나면서 들렸어라. 이쯤에 집이 있던 거 같은디 당최 어딘지 모르겄는디요”

“여기가 맞긴 헌디, 워낙 예전에 헐려서 이젠 흔적도 없당께”

  동네 어르신과 어린 시절 이야기를 나누며 모처럼 환하게 웃는 모습엔 애잔함이 서려 있었다.


  외갓집을 찾아간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몇 달 뒤 엄마는 고단한 삶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가듯 그렇게 떠나셨다. 이생의 모든 시름 접고 오매불망 그리웠던 부모님과 남편을 만났을 엄마. 그곳에선 어디든 가고 싶은 곳으로 훨훨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계실까.

  가끔 소풍처럼 나주에 가서 집터를 기웃거리며 서성이기도 하고, 하늘이 유난히 청명한 날이면 우리 다섯 남매 키워냈던 집 마루 끝에 앉아 푸른 들녘 내다보며 환하게 웃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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