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한 번도 나를 제대로 바라봐준 적이 없었다.
오히려 나만 노려보는 것처럼 느껴졌고,
누구에게 버려진 적도 없는데 늘 버려진 사람처럼 오래도록 살았다.
해야 할 일을 하면서도 마음은 늘 한참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고,
남들이 보기엔 멀쩡해도
정작 나는 하나도 괜찮지 않은 날들이 길게 이어졌다.
어떤 날은 단순한 피로였을 것이고,
어떤 날은 이유조차 설명할 수 없는 상실감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의 공통점은 하나였다.
나는 나를 전혀 돌보지 않고 있었다는 것.
감정은 미뤄두고, 마음은 모른 척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고
그 습관은 조용히 나를 잠식했다.
그러다 결국, 10년 넘게 몸담았던 직장에서의 배신이
결정타가 되어 마음의 병이 찾아왔다.
남들이 먼저 알아차릴 만큼
나는 이미 나를 잃어버리고 있었다.
책상 위에 놓인 검사 결과지는 내 삶 전체를 한순간에 되돌려보게 만들었다.
“왜 이렇게까지 버티며 살아왔을까.”
현실을 인정하는 순간, 오히려 내가 나에게 너무 안쓰러웠다.
멈출 수도, 쉴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가장 최악의 순간에서야 배웠다.
정신적 요양이 필요해 내려간 집에서 뜻밖에도 80대 노모의 간병을 맡게 되었다.
먹고 자고, 또 자는 하루.
책임도, 의무도 거의 없는 일상.
누군가에게는 지루해 보였을 시간 속에서
나는 이상하리만큼 빠른 시간과 묘한 평안을 느꼈다.
엄마를 살리겠다는 마음은 강했지만
정작 나는 나를 놓아버렸고,
그렇게 놓여 있는 상태에 너무 쉽게 적응하는 나를 보며 놀랐다.
반백 살이 된 나에게 남은 시간이 갑자기 길고 지루해 보였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버려진 게 아니라, 내가 나를 먼저 버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 깨달음은 신선했지만
하루, 열흘, 한 달이 지나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엄마의 시간이 끝나는 순간, 나는 어떻게 살아갈까.”
나만의 삶을 버리기엔 아까웠고, 누구도 관심 두지 않는 삶이지만
그래도 나 하나쯤은 나를 지켜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버티기로 했다.
예전처럼 무너져가는 버팀이 아니라,
나를 잃지 않기 위한 버팀이었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잊는다.
외상은 아물지만 정신의 상처는 그렇게 낫지 않는다.
사람들은 의사보다 먼저 내게 ‘괜찮다’고 말했고
이제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괜찮아야만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나는 많이 지쳐 있었고 정말 쉬어야 했다는 것을.
그럼에도 ‘쉴 수 없다’는 마음이 여전히 나를 붙잡는다.
너무 오랫동안 흘려보낸 시간이 많아서,
멍하니 누워 있는 것이 이렇게 편안한 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멈추면 다시 무너질 것을 알기에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다시 움직여 보기로 했다.
들숨, 날숨. 숨쉬기 운동부터 시작하고,
보지도 않을 TV를 틀어 집 안에 작은 소음을 만들고,
문 밖에 나서는 횟수를 하루에 한 번씩 늘려가고 있다.
여전히 낯선 사람을 만나면 몸은 굳고 호흡은 흐트러지지만
그럼에도 나는 괜찮다.
이제의 ‘괜찮다’는 억지로 짜낸 괜찮음이 아니라, 나를 보호하며 지켜내는 괜찮음이다.
명예롭지도, 거창하지도 않은 삶이지만
그래도 이 조용한 삶을 나는 더 이상 버리지 않기로 했다.
그러니 살아가고,
살아가다 보면,
다시 살아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