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도, 헤집어 본다.
남보다 내가 먼저 건드리는 편이
덜 아플 것 같아서.
맞고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인정하기까지,
나 또한 오랜 시간이 걸렸듯
상대 역시 그러하겠지.
부딪히고 따지기보다
참고, 기다려 보기로 했다.
여사님이 그러셨다.
“좋은 게 좋은 거야.”
그 말을 믿어 보기로 했다.
익숙한 나만의 체면을 걸고
누르고, 또 누르며 버텼다.
그러기를 14년.
좋은 날은커녕
화려한 배신이 돌아왔다.
배척의 이유를 물었을 때,
나는 말문을 잃었다.
회계 담당자인 내가
편법을 쓰지 않고
원리 원칙대로 일한 것,
탈세를 돕지 않은 것,
그게 잘못이라고 했다.
심지어
"당신을 일에서 배제하는 건
우리가 더 큰 기업으로 가기 위한 수순일 뿐"이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너무 어이없고 황당해서
같은 한국어가 맞는지 의심했고,
내가 잘못 질문한 건 아닐까
스스로를 먼저 의심했다.
사람들은 흔히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말한다.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대화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대신
치열한 두뇌 싸움이 시작되었다.
내 몸속 모든 세포가
일제히 깨어난 것처럼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다.
나는 미련 없이 움직였다.
빠르고, 조용하게.
짐을 정리하고
카메라에 나를 지킬 서류들을 담고
모든 대화를 녹취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저 사람,
어떻게 대하든 회사에 남겠지.”
그들의 기대를 비웃듯
나는 모든 것을 뒤로하고
기나긴 직장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잔인한 끝이었다.
일 년처럼 길게 느껴진 한 달이었다.
가족 기업 안에서
유일한 타인이었던 나는
좋을 때는 ‘같은 편’이었고,
버려진 후에는
공간 전체가 공포로 느껴졌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었고,
억지로 버틴 자리도 아니었다.
스스로 선택했고
스스로 지켜 온
오랜 시간의 끝이
자의도 타의도 아닌
운석 같은 충격에 무너졌을 때
나의 멈춤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몇 해가 지난 지금.
화면과 자판에 둘러싸인 세상 속에서
나는 조금 느리게 간다.
연필을 깎고
슥슥, 글씨의 촉감을 느끼며
이렇게 지난날을 되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