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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피셜 지오그래픽 Oct 02. 2021

사막에서 비박(bivouac)하기

미어캣과 은하수가 있는 곳


스물한 살, 대학생이 되어 첫 배낭여행으로 아프리카 5개국을 다녀왔다. 정말 훌륭한 선택이었고 어쩌면 내 삶에 큰 이정표 같은 사건이었다. 모든 것은 점이 되어 연결된다는데, 아프리카에서 보낸 60일은 어쩌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시작점일지도 모르겠다. 가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많은 것들이 따라주지 않았지만 가고 싶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굳게 밀고 나갔다.


생각만 많고 실천이 따라주지 않을 때 내가 요긴하게 쓰는 방법이 하나 있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일단 물을 엎지르고 보는 것이다. 고로 나는 티켓(가격이 쌀수록 환불이 안 된다!)부터 끊고 보았다. 그러고 나서 취한 행동은 경험자를 찾아 조언을 구하는 것이었다. 궁금한 점을 종이에 빼곡히 적어서 이미 그곳에 다녀온 선배를 찾아가 입에 침이 마를 때까지 묻고 또 물었다.


사람들은 아프리카가 위험하다고 했다. 그들 말에 따르면 아프리카는 온갖 부정적이고 자극적인 가십쯤에 불과했다. 그런데 막상 "다녀오셨어요?"라고 물으면, "가보지는 않았는데, 그렇다더라"는 답이 돌아왔다.


사람들 인식 속 아프리카는 너무나 멀고 거친 곳 같았다. 가뜩이나 당시는 IS 사태와 맞물려 있었고, 일련의 사건들이 아프리카 대륙 전체 이미지로 일반화돼 근거 없는 루머들을 생산하고 있었다. 경험하지 않은 자들의 조언에 휘둘릴 필요는 없었다. 무엇이든 본인 스스로가 판단하고 볼 일이다.


생각해 보면 내가 유럽도 아시아도 아닌 아프리카를 첫 번째 여행지로 선택한 이유는, 여행자로서의 초심과 맞물려서였다.


거리는 깨끗했고, 사람들은 친절했다. 보츠와나는 아프리카에서 보기 드문 선진국이다.


풀고 싶은 '썰'이 많지만 내 개인적인 이야기는 기억을 되살리는데 상당한 기력이 요구될 것 같고, 굳이 그러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아, 이 지면을 빌어서는 좋았던 여행지에 대한 몇 개의 정보를 추려보고자 한다. 되도록 사라져서는 안되는 것들을 중심으로.


보츠와나의 막가딕가디 소금사막(Magkadikgadi Salt Pan)   번째다. 볼리비아의 우유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이지만, 보츠와나의 막가딕가디는 발음이 입에  달라붙지 않는  만큼이나 세간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이것은 '고급 정보'라는 점을 믿어도 좋다.


보통 남아프리카를 여행하면 오카방코 델타(Okavango Delta)에서 빅토리아 폭포(Victoria Falls)로 또는 그 반대로 이동하게 되는데, 그 사이에 끼어있는 막가딕가디를 놓치고 지나가면 너무나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막가딕가디는 내게 그 둘을 합친 것만큼의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다. 막가딕가디의 하얀 지평선을 달리기 위해 그웨타(Gweta)라는 작은 마을에 멈췄다.



막가딕가디 소금사막은 칼라하리 사막의 영향권에 있다. 아열대고압대와 서쪽의 차가운 해류가 지나가기 때문에, 연중 구름이 발생하지 않아 대기가 안정적이다. 적은 강수량으로 인해 사바나가 펼쳐지는데, 그 관목(bush)에 사는 사람들이라 하여 '부시맨'이다. 부시맨의 정식명칭은 ‘코이족(Khoi)’과 ‘산족(Saan)’을 합친 ‘코이산족(Khoisan)’이다.


코이산족에는 몽골로이드의 특징이 섞여 있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다수 인종인 니그로이드와는 외양적으로 구분된다. 즉, 코이산족은 흑인과 황인의 진화적 갈림길에서 일찍이 갈라져 나온 인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이드는 칼라하리 사막의 원주민인 코이산족이었다. 그가 혀를 차며 들려주는 흡착음(clicksound)은 언어의 경지가 어디까지인지를 보여 주었다.



함께 한 일행은 휴가를 맞아 남아공에서 넘어온 '아프리카너(Afrikaner)'였다. 아프리칸스어를 사용하는 아프리카너란, 초기 네덜란드 이민자를 비롯해 남아프리카에 정착한 백인 집단을 말한다. 아프리칸스어를 듣고 있자면 영어인 듯 아닌 듯, 독일어인 듯 아닌 듯, 남아프리카의 토착 억양이 섞인 듯 아닌 듯, 아리송한 것이 귀를 즐겁게 했다.


공교롭게도 며칠 뒤 보츠와나를 여행하는 네덜란드 부부와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속초 낙산사와 울산바위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는 그들에게 물어보았다. 네덜란드와 아프리카너의 관계는 어떻냐고. 고개를 흔들며 말하기를, 아프리카너들은 이미 떨어져나간 주체로서 본국과의 정서적 유대감이 사라진지 오래라고 했다. 정말 그런 것 같았다. 보츠와나를 여행하면서 남아공에서 휴양차 국경을 넘어온 수많은 아프리카너를 볼 수 있었다.



"아악!"


모닥불을 쬐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망치로 허벅지를 때리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반사적으로 바지를 벗어 털자, 전갈 한 마리가 툭 떨어졌다.


맙소사. 독사에 물리면 피가 응고되는 장면을 다큐에서 봤었는데, 그 장면이 현실이 돼 허벅지가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기 시작했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고 중요한 부위까지 마비증세가 퍼지자, 가장 가까운 곳의 병원은 차로 세 시간 거리에나 있다는 가이드북의 설명이 뇌리를 스쳤다.


전갈을 요리조리 살펴보던 가이드가 말하기를, 다행히 이 전갈에는 치명적인 독이 없으니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허벅지는 금방 괜찮아졌다. 하마터면 객지에서 요절하는 줄 알았다.



어둠이 찾아들고 우주를 가득 메운 별들이 분수처럼 쏟아졌다. 처음 경험하는 남반구의 별자리, 육안으로 목성과 화성이 보였다. 간이 화장실까지 걸어가는 길은 한 편의 꿈이었다.


우린 매트리스를 깔고 얼굴만 쏙 내민 채 나란히 누웠다. 텐트 없이 잠을 자는 비박(bivouac)이다. 얼굴에는 찬바람이 몰아쳤지만 몸통은 따듯하니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쏟아지는 별을 올려다보며 잠을 청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시 하나가 이 상황의 분위기와 찰떡 같이 어울리는 것이 한 구절 읊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아직도 내게는 가고 싶은 곳이 많다. 세상엔 갈 곳 또한 남아프리카 밤하늘의 별처럼 무수하다. 하지만 막가딕가디는 한 번 더 갈 생각이다. 그런데 문득, 가면 안 될 것 같기도 하다. 욕심 내서 다시 가는 순간 그간 간직해 온 꿈이 와장창 깨질 것만 같다.


추억은 추억일 때가 아름다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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