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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피셜 지오그래픽 Jan 03. 2022

임진강이 보이는 파주의 숨은 명산

파주 보현산


파주에는 여러 산이 있다. 제일 유명한 것은 아무래도 경기 5악으로 불리는 감악산이다. 이외에도 파평산, 박달산, 고령산 등 300~500m대 산이 곳곳에 있다. 그리고 그 사이로 파주 삼릉, 파주 장릉, 율곡이이묘, 용미리마애불 등 유서 깊은 문화재와 마장호수, 골프장 등 휴양시설이 들어서 있다.      


그런데 같은 파주라 할지라도 위에서 언급한 산들이 소재해 있는 파평·적성·법원·광탄 등 동북부와 보현산(普賢山, 약 130m)이 있는 탄현·교하, 즉 임진강 하류지역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이곳의 산들이 가진 특별함이라 한다면 주변에 높은 산이 없기 때문에 산마루에서 강줄기가 보인다는 점이다.     


물론 이곳이 평야라고 해서 산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탄현의 진산인 월롱산, 통일전망대가 있는 오두산, 출판단지가 내려다보이는 심학산, 한북정맥의 종점인 장명산은 모두 대동여지도에 나와 있는 이름깨나 알려진 산이다. 그러나 보현산만큼은 어떤 고지도에서도 찾아볼 수 없으며 100m 남짓한 높이는 산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하지만 보현산이말로 임진강과 북한땅이 장쾌하게 보이는 파주의 숨은 명산이다.     


「칼의 노래」, 「남한산성」, 「자전거여행」의 저자 김훈 작가가 동행했다.


보현산이 매력적인 이유는 우선 접근성이다. 일산에서 자유로를 타고 30분만 움직이면 산행 들머리인 덕주골식당(파주시 탄현면 새오리로 522) 옆 주차할 수 있는 공터에 닿는다. 그곳에서 능선을 따라 30분만 천천히 걸으면 정상이다. 평범한 동네 야산이라고 하기엔 부드럽게 다져진 등산로 옆으로 군인들이 파놓은 참호와 모래주머니가 심상치 않다.     


사실 보현산은 1978년 무장공비의 침투로 인해 약 2,000발의 지뢰가 매설되어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공포스러운 산이었다. 하지만 2007년 5월부터 11월까지 약 6개월에 걸쳐 매설되어 있던 지뢰를 군부대가 거의 제거했다. 오랫동안 출입이 통제된 까닭인지 다행스럽게도 보현산의 정취는 번잡한 맛 없이 질박하게 남아있다.

      

정상에서는 임진강을 경계로 남과 북이 마주 보면서 일으키는 긴장과 평화를 느낄 수 있다. 듬성듬성 숨어 있는 벙커와 초소, 쌩쌩 달리는 자유로 너머 대동리·만우리·오금리의 누런 들판, 철책 너머 사람 키를 웃자란 갈대숲이 레이어(layer)로서 보인다. 미리 준비해온 망원경을 당기면 공을 차는 국군의 모습과 민둥산에 옹색하게 앉은 북한의 선전마을이 교차되어 보인다. 이곳에선 임진강이 곧 군사분계선이다.      


임징강이 한강과 만나 조강(祖江)으로 흐른다. 조강 너머 북한의 하얀 집들이 보인다.


임진강은 네 번째로 큰 강이다. 함경남도에서 출발한 가느다란 샘물은 연천에서 한탄강과 만나 강화도까지 흐른다. 분단이 되고 졸지에 국토의 변방이 되었지만 임진강은 늘 그렇게 흐르며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남겨주었다. 율곡이이는 화석정에 앉아 시를 지었고 청백리의 표상 황희는 반구정에 올라 갈매기와 함께 놀았다. 호로고루에는 고구려의 기개가 서려 있으며 고랑포와 경순왕릉에는 신라의 쓸쓸함이 짙어 있다.     


임진강 하구 파주땅을 ‘교하(交河)’라고 부른다. 물이 사귄다는 뜻으로, 정말 아름다운 이름이다. 한강과 임진강이 모여 서해로 흘러가는 ‘세 개의 큰 물결’이라 해서 ‘삼도품(三途品)’이라고도 부른다. 벼슬이 내려졌다는 기록은 찾을 수 없지만 파주에서 매년 삼도품 축제를 열만큼 임진강은 지금까지도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다.


교하의 입지가 어느정도였냐면 ‘교하천도론’이란 것이 있을 정도였다. 조선 광해군 때 전라도 해남 출신 이의신이라는 자가 수도를 교하로 옮기자고 하면서 조정을 발칵 뒤집었다. 광해군의 승인까지 받았으나 조정 대신들의 강력한 반대로 끝내 실현되지 않았다. 이것이 당시 임진왜란과 격화된 당쟁 등으로 흉흉했던 사회 분위기에서 기인한 백일몽인지 모르겠으나 교하가 그만큼 중요한 땅이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임진강에는 지정학적인 이유로 하굿둑과 보(洑)가 없다. 그래서 달이 잡아당길 때면 한껏 숨을 부풀리며 바닷물이 역류한다. 임진강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이 구태여 한강에서 물을 끌어다 쓰는 이유는 임진강에 바닷물이 섞였기 때문이다. 임진강은 특히 겨울에 유빙(流氷)이 장관인데,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는 1월께 보현산에 오르면 광물 결정처럼 생긴 무수한 얼음조각이 밀물과 썰물에 부딪히고 부서지기를 되풀이하는 진귀한 장면을 볼 수 있다.


망원경을 당겨 보면 새로운 이미지가 펼쳐진다. 임진강을 경계로 남북한이 마주보고 있다.


파주는 서울과 개성의 길목에 있어 많은 나그네들의 머물렀는데, 광탄원, 혜음원, 분수원, 이천원, 도솔원 등 역원(驛院)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다. 공릉장은 우시장 규모가 워낙 커서 경기 남부 안성장 다음간다는 풍문이 돌았고 상선이 드나들던 임진강변 문산포장은 각종 물화의 집산지였다. 이렇듯 내륙 교통과 수운 교통이 발달해 상업이 성했던 파주는 쌀과 콩이 나고 참게와 민물고기가 잡히는 풍요로운 고장이었다.    

 

특히 임징강의 참게를 최고로 쳤다. 조선시대 지리서인 동국여지승람에는 “강원도를 제외한 7개 도 71개 고을에서 참게가 나는데 임진강이 가장 많이 나고 맛도 좋다”고 나와 있다. 말복을 지나 가을이 되면 임진강의 참게는 경성 시내의 선술집과 요리점은 물론 일반 주민들까지 먹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고 하니, 지금은 꽃게에 밀려난 참게의 대단했던 위상을 매일신보 1935년 10월 3일자에 실린 글에서 실감할 수 있다.


“참게는 동남참게와, 남방참게, 애기참게, 참게 네 종류가 있는데 그중 임진강변에 서식하는 파주 참게를 최고로 친다. 파주 참게는 몸에 털이 없다. 임진강 바닥에 널린 자갈밭을 지나면서 거의 사라지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임진강 참게를 옥돌참게라고 부른다. 파주 월롱면 덕은리 옥석천의 참게는 궁에 진상되는 명품이었다.”  


취재에서는 수리적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북쪽을 바라보며 지도상의 위치와 실제 위치를 대조하고 있다.


사라져가는 경기 민요

보현산 아래에는 금산리민요전수회관이 있다. 탄현면 금산리 토박이인 추교현(82)씨는 2001년부터 파주금산리민요보존회 화장을 맡고 있다. 평안도와 황해도를 일컬어 ‘서도(西道)’라고 하는데, 황해도와 인접한 탄현의 금산리민요에는 서도 소리가 남아있다. 다시 말해 황해도 말과 경기도 말이 섞여 황해도 말도 경기도 말도 아닌 말이 탄생했으니, 이름하여 금산리민요라 하겠다. 2000년 그 희소성과 가치를 인정 받아 경기도 무형문화제 제33호로 지정됐다.     


그러나 1960년대 농업에 기계화 바람이 불면서 생산현장에 노동요가 급격히 감소했다. 금산리민요는 이제 보존의 목적으로서만 전수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마저도 30 남짓의 회원 중에 제대로 태평소 불고 꽹과  아는 사람은 거의 남지 않았다.      


보현산 아래에 헤이리마을이 있다. 헤이리를 찾은 사람들은 으레 ‘헤이리’라는 이름에 궁금증을 갖곤 한다. ''헤이'라는 마을(里)이 아닐까?''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헤이리마을의 법정 행정구역은 법흥리다. 헤이리는 금산리민요인 '헤이리 소리'에서 후렴구를 취한 것이다. 사라져가는 금산리민요는 아름다운 운율로나마 우리 곁에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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