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음악 읽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옵니언 Nov 04. 2023

빌 에반스라는 암류

빌 에반스 - undercurrent

  작품을 이해하는 데 있어, 아티스트의 배면의 삶을 동반하게 되는 것은 감상의 측면에서 당연한 순서처럼 여겨진다. 아티스트의 의도를 좀 더 심층적으로 파고들어 그것과 매개하는 결과물로 영향력을 치밀하게 감각하기 위함이기도 하거니와, 때때로 그 둘의 관계가 쉽게 분리되지 않을뿐더러 서로가 서로에게 긴밀한 상호관계를 발생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엘제 라스커 쉴러의 시편들을 떠올려보자. 표면적으로 그녀의 일생을 세세히 알지 못하더라도 그녀가 시적인 언어를 빌려 말해온 표현들을 받아들이는 데 그리 어려움을 가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쉴러의 시편들이 본격적인 힘을 발휘하게 되는 데에 필수적이진 않더라도, 그녀의 굴곡진 삶이 시집의 깊은 층위로 다가서는데 도움 주었다는 걸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밤과 화해하기 원한다』를 번역한 배수아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는 "전복되는" 감흥일 테다. 시대적인 감수성이 보편적 언어를 통해 역설되는 경험으로 우리는 한 층 작품에 대해 깊이 복기해 볼 수 있는 틀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   


  

  빌 에반스를 수식하고 있던 수많은 표현에 대해 집중해 보아도 그렇다. 서정적 피아니즘이라거나, 재즈계의 쇼팽이라거나. 서정이라는 단어 자체가 함의하고 있는 부드럽고도 유약한 감정선이 그에게로 고스란히 투영된 건 무릇 그의 연주 스타일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일생 그를 괴롭혀 온 고독과 슬픔에 대해 접하게 된다면, 빌 에반스의 연주를 들으며 느끼는 서정성은 훨씬 설득력을 얻게 된다. 무엇보다 빌 에반스의 서정성은 분위기에 맞춰 적절히 조응하는 힘에 있다. 과하지도 혹은 부족하지도 않게 모습을 드러내고 감춰져야 할 때를 조율하는 무대 조명처럼 타건 속에서도 높낮이를 달리해 풍성하게 연주한다. 가령, 「Everything happens to me」에서의 조심스럽게 누르던 건반이 음을 덧붙이며 조금씩 영역을 넓혀가는 전개 방식이라던가, 「Peace Piece」에서 잔잔하게 키를 잡아주던 왼손의 연주와 달리 순간적인 불협화음 같은 뒤틀림으로 연주되던 오른손의 연주가 마지막에 가닿아 다시 하나의 종착점으로 수렴되는 과정은 피아노 한 대와 홀로 연주하는 아티스트의 몫이 얼마나 경건하고도 수려할 수 있을지에 대한 명백한 흔적이다. 「Alice In Wonderland」에서의 연주는 또 어떤가. 개인적으로 『Sunday at The Village Vanguard』에 실린 Take 2 버전은 여타 녹음 중에서도 가장 선호하는 버전이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도 있을 『Waltz for Debby』, 『Portrait in Jazz』 혹은 트리오 완전체의 연주가 담긴 『Sunday at The Village Vanguard』 보다도 이런 정감을 확연히 느낄 수 있던 건 『Undercurrent』이었다. 재즈 기타리스트 짐 홀과의 교류로 탄생한 『Undercurrent』는 구성에서부터 단출함이 드러난다. 음반에는 그 흔한 드럼도 없고 극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지도 않는다. 손에 들려 있는 악기들이 곧 체득하는 언어가 되듯 짐 홀과 빌 에반스의 섬세한 연주들이 연속될 따름이다. 때문에 『Undercurrent』는 들을수록 일관된 리듬이거나 속박 없이 자유롭게 주고받는 대화의 한 구성을 떠올리게 만든다. 대화가 편안하게 흐르기 위해선 관계에서의 동등함이 기반이 되어야 하듯, 짐 홀과 빌 에반스의 연주에는 그중 하나가 대두되어 곡을 이끌어 갈 것 없이 적절히 서로에게 동조하고 또 수행한다. 음반 커버로 쓰인 토니 프리셀의 이미지 또한 『Undercurrent』의 느리고 정적이며 몽환적인 색채에 적극 힘을 실어준다.          

  사전적 정의에서 '암류'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잦다. 『Undercurrent』 곳곳에도 단어의 의미를 함유하는 듯한 인상을 풍기는 트랙들이 있다. 이를테면 「My Funny Valentine」의 첫 시작은 다소 짙고 어두운 피아노 선율이 적극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그 이면을 기타가 받친다. 일정한 테마 또는 주제라 할 것도 없이 각 파트가 생동감 있게 이어진다.「Dream Gypsy」에서 특정한 계절감을 연상케 만드는 정취거나 「Romain」에서의 장단조를 넘나들며 선보이는 입체적인 활용은 불안감을 엄습하고「Skating In Central Park」를 위한 적정한 발돋움처럼 자리한다. 『Undercurrent』에서의 백미는 바로 이 부분이다. 「Romain」에서의 불안한 마무리를 산뜻하게 감싸내며 시작하는「Skating In Central Park」는 제목 그대로 유연하고 부드러운 스케이팅을 떠올리는 감미로운 조합을 선보인다. 왈츠 풍 리듬으로 기타가 연주되면 피아노가 얼어붙은 수면 위를 거닐면서「Skating In Central Park」에 이르러 따스함을 간직한 쿨한 아이러니가 『Undercurrent』에 서려 있다고 느끼곤 한다. 위에서의 표현을 다시 한번 빌리자면 말 그대로 "전복되는" 경험이 이때 발휘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Skating In Central Park」을 지나오면 음반은 보다 정적인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Darn That Dream」과 「Stairway To The Stars」에 도달하면 암류가 종용하는 침잠된 분위기에 더욱 익숙해지고 힘을 빼는 듯 서서히 묻혀가는 식으로 감정적인 동요 없이 바닥을 향해간다. 물에 가라앉을 때, 급류에 휩쓸려 순식간에 침몰하는 것이 아닌 천천히 가라앉듯 잔잔한 울림으로, 철저히 소리를 절제하는 방식으로 각 곡은 연주되어 간다. 그러나 곡들이 소멸을 지향하며 어둡고 깊숙한 지점에서 풀어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지는 않다. 움직임이 둔해 보일지라도 암류가 하나의 흐름을 의미하는 것처럼 그저 조용하게 흐르고 있을 뿐이다. 흐름은 「I'm Gettin' Sentimental Over You」을 통과하며 다시 명확해진다. 경쾌하면서도 전반적인 색감을 종합하는 음들로 『Undercurrent』는 정갈하게 마무리 지어진다.               

  

  『Undercurrent』는 많은 말을 필요로 하는 앨범이 아니다. 무릇 앨범이 주도하는 소리의 쓰임새거나 편성, 질감 때문만이 아니다. 그것은 많은 말을 할 수 없었던 당시 빌 에반스의 상황에 기인한다. 스콧 라파로의 죽음이라는 거대한 구멍을 목도한 뒤, 섣불리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그가 유일하게 해낼 수 있던 일이라면 내부에 침잠된 "암류" 적인 무언가를 견디는 일이었을 거라 짐작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돌출되어 구체화된 것이 곧 이 음반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다. 여전히 그의 일생이 "역사상 가장 오래 걸린 자살"이라고 함축되는 일에 탐탁지 않다.「Skating In Central Park」를 들을 때면, 겨울의 계절감과 더불어 낭만적인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바, 빌 에반스의 음악은 서정적이지만 마냥 피상적이지 않은, 우울함을 담보하지만 매몰되지 않는 감동을 선사한다는 것을 함께 일러두고 싶다.     



by. filmstone

매거진의 이전글 끊임없이 생동하는 록의 현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