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는 계엄선포
그날은 아들의 군대 제대일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제대를 앞두고 그간 밀렸던 휴가를 사용하려고 온 아들의 모습은 지쳐있었다. 아들은 씩씩한 척하려고 애썼지만 어미의 눈은 속일 수 없음을 아들은 몰랐을 것이다. 전역일을 3일 앞두고 아들은 부대로 복귀했다. 처진 어깨와 터덜거리며 걸어가는 아들의 뒷모습은 애처롭기 짝이 없었다. 맞벌이 부모라는 이유로 아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제대로 못해먹인 것이 못내 아쉬워서 아들의 뒷모습을 보는 어미의 마음은 울컥했다. 아들의 무사 복귀를 확인하고 나서야 직장에 몰두하면서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형편이 넉넉지 못한 부모는 자녀에 대한 자책감 또는 가슴 쓰라린 일이 많을 것이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다. 비록 형편이 넉넉지 못할 망정 아이들이 있어서 행복하다고 느꼈을 때가 더 많았다. 하지만 아이들이 성장할수록 그들의 미래를 위해 투자해 줄 수 없는 무능한 부모라는 것이 마음 아플 뿐이었다. 물론 아이들은 내색하지 않고 현실에 적응하며 살아가려 애를 쓰고 있지만 아이들이 애쓰면 애쓸수록 부모는 더욱 미안해진다. 애쓰는 아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대우를 받아야 할 텐데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못한 모습을 많이 목격하기에 말이다. 대학에 다니면서도 공부에만 몰두하지 못하고 아르바이트와 생활인으로서 살아내야 했던 아들이 홀쭉하게 마른 모습으로 군에 입대하였는데 오히려 군에 가서 아들은 살이 쪘다고 했다. 규칙적인 식사와 안정적인 주거시설이 자신에겐 최상이었단다. 군생활이 예전처럼 열악하지 않다고, 지금은 지낼만하다고, 부모를 안심시킬 만큼 성숙한 아들이 1년 6개월의 군생활을 잘 마치고 이제 내일이면 민간인으로 돌아온다니 전역 전야의 시간은 한 시간 한 시간이 부모에게도 긴장된 시간이었다. 남편과 나는 밤 10시가 넘도록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아들의 심경은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왠지 잠을 잘 수 없어서 TV앞에 앉아 아들의 어릴 적 추억담을 나누고 있었다. 아들이 초등학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종플루"라는 감염병으로 휴교령이 떨어지는 일이 일어났었다. 중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되어선 "메르스"라는 감염병이 돌았고 그가 고등학생 때는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렸다. 아들이 군입대하던 해에 "채상병 사건"이 일어났고 연이어 군대에서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전해졌다. 군에 보낸 부모들의 심경이 어떠했겠는가, 1년 6개월, 하루하루가 가슴을 졸이던 시간이다. 이제 군전역만큼은 무난하게 이루어지길 그날밤에 소원하고 기도했다.
우리 부부는 소파에 앉아 아들에 관한 추억담을 나누다 TV자막에 뜬 문장을 보고 눈을 비볐다. 순간 드라마 자막인 줄 알았다. 나는 남편의 수다를 중지시키고 TV 속보에 집중했다. 대통령의 담화가 흘러나왔는데 그건 담화가 아니라 "계엄을 선포합니다!"라는 '아닌 밤에 홍두깨라고' "계엄포고령"이었다.
순간 우리 부부는 "뭐야? 그럼 우리의 아들은 내일 전역할 수 있는 거야?"라는 말이 튀어나갔다.
TV는 우리의 말을 들은 것처럼 모든 병사들의 전역일이 연기될 수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게 지금 우리가 꿈꾸고 있는 거 아냐? 현실 맞아? 그 순간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일 출근하는 일도 잊은 채, TV에 시선을 고정하고 모든 과정을 시청하면서 여의도로 올라가야 하나? 생각했다. 판단이 잘 서질 않았다. 안절부절못하다 그저 행동하지 못하고 TV시청에만 집중했다. 다행히도 어디선가 민간인들이 삼삼오오 국회의사당 앞으로 집결하고 계엄군을 막아서는 장면과 국회의원들이 모여드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텔레비전으로만 보아도 그 광경은 살벌하게 느껴졌고 위험천만하게 보였다. 무장한 계엄군과 밀치락뒤차락 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계엄군은 냉철했고 이성적인 모습으로 임했던 것 같다. 저 무리 속에 혹여 우리 아들의 친구들이 속해있는 건 아닐까, 아니 우리 아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가슴이 조여 오는 느낌과 답답함으로 쓰러질 것만 같았다. 아들에게 문자를 보내도 읽지 않았고 전화를 해도 지금은 받을 수 없다는 멘트만 전해졌다. 아들 때문에 숨이 멎을 것 같은 순간은 이번이 두 번째다. 22년 여름, 아들은 월세를 줄이려고 반지하 빌라에서 지냈는데 그해에 폭우가 쏟아져 대학가 주변 반지하 주택들이 큰 재해를 입었다는 속보에 우리 부부는 번갈아서 아들에게 문자와 전화를 몇 통이나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아들은 감감무소식이었다. 부모의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간 후, 1박 2일이 되어서야 아들에게서 짤막한 문자가 왔다.
"저는 괜찮으니 걱정 마세요!"
이번에도 아들은 정확히 12월 4일, 1박 2일 만에 짤막한 문자가 왔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저는 오늘 예정대로 전역하게 되었어요. 지금 출발하려고 해요!"라고.
전역한 아들은 비교적 말을 아꼈다. 하지만 명백한 것은 "계엄령이라니 믿기지가 않아요. 12월 2일, 하루 전날까지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는데 말이에요." 아들도 적잖이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전역이 연기될지 모른다는 말이 실감 나질 않았다고 했다. 다행히도 신속한 계엄해제에 의해 아들은 무사히 전역할 수 있었다고 하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