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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비상계엄은 무엇인가요?

경제인문학

by 염상규

지난 2024년 12월 3일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요즘 젊은사람들은 계엄선포가 뭔지는 알지만 겪어본적은 없을 것이다.
비록 2시간 30분만에 해제 되었지만 생각할수록 아찔한 순간이다.
비상계엄이란 것은 해당 국가의 안보가 심각한 상황일 때 가동하는 것이다.
국가의 모든 시스템이 멈추고 계엄군의 통제에 들어가는 것이다.
내란, 테러, 적국의 침공등 1급에 달하는 국가위기에 발동하는 일반계엄령이 있고, 가벼운 치안 유지만 하는 경비계엄령이 있다.
이러한 비상계엄은 한번 선포되면 행정권, 사법권 등이 군법으로 대체되며 군대의 권한이 강력해지는 조치를 말한다.
대한민국의 비상계엄 최초는 1948년 여수, 순천에서 좌익 우익이 대립하며 내란으로 발전하게 되고 그에 대한 통제와 진압이 필요해서 첫 비상계엄이 선포된다.
당시 대한민국은 광복 후에 친일파 청산을 마무리 하지 않은 상황헤서 많은 혼란이 있었다.
여기서 잠시 친일파에 대해 짚고 넘어가자.
2차세계대전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에 패한 일본은 원자폭탄 두방 맞고 무조건적인 항복을 선언한다.
그리고 동아시아에 주둔하던 일본군들은 본국으로 돌아가는데 우리나라 전역에서 행정업무를 하는 모든 관공서의 공무원들이 친일이었기 때문에 사실 친일파 숙청이라는게 쉽지는 않았다.
친일파들이 국민을 상대로 탄압하고 핍박한 이들도 있었지만, 그와 상관없이 국가운영을 위해 단순한 행정업무를 보며 국민을 돌보는 일을 하는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무조건 그들과 그의 가족들을 다 끄집어 내서 죽창으로 처벌할 수는 없는 일이다.
확실하게 나쁜짓을 한 친일들을 골라내서 죄값을 치르게 해야는데 친일청산이 이루어지지 않고 그들을 다시 불러내서 아무렇지 않게 일제강점기와 똑같이 일을 시키니 좌익들이 들고 일어나는 것이 당연하다.
이 일이 원인으로 좌익세력들의 반란으로 내정이 어지러워지니 10월 21일 첫 비상계엄이 선포되어 도시를 통제 하게 된다.
그리고 두 번째는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전국에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국가는 전시체제로 들어간다.
전쟁이 발발해서 국가의 존폐가 위협받으면 비상계엄체제가 되어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고 적대세력과 자국 군대가 맞서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1960년 이승만 전 대통령이 3.15 부정선거를 치르고 이에 분노한 국민들이 시위를 하자 비상계엄을 선포하는데 국민들이 끝까지 저항하고 인정하지 않자 이승만 전 대통령은 대통령직에서 하야한다.
이후 1961년 박정희 소장이 5.16 쿠데타를 일으켰고 다시 전국에 비상계엄이 선포되며 군부독재의 군사정권이 시작되어 18년간 이어진다.
1972년 유신체제를 만들면서 다시한번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독재 정치가로서 장기집권 체제를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 계엄을 이용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발전없이 계속해서 머물러 있고, 독재가 이어지면서 한 사건이 벌어지는데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의 김재규에게 저격당하고 다음날 비상계엄이 선포된다.
이후 민주화의 바람이 부는가 했지만 전두환을 중심으로 신군부 세력이 득세하며 이들은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한다.
광주에서 일어난 민주화항쟁을 강력하게 진압하는 명분이 되었으며, 이때 계엄군의 무시무시한 권한이 일반 시민들에게 보여진다.
학생 어린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무자비한 폭력과 학살, 시민을 대상으로한 계엄군의 발포 등이 있었으며 대한민국 역사에 큰 비극으로 기록된다.
그 이후 44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에서 민주화를 가장 발전시켰고, 동아시아에서 GDP 3만2천불 의 일본보다 훨씬 앞선 GDP 3만6천불의 대한민국이 정치적 대립상황을 타개하지 못하고 비상계엄이 선포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동안 역사적으로 대한민국의 비상계엄은 국가를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이 아닌 정치적으로 군부를 이용한 독재 또는 정권탈환과 국민을 탄압하고 민주화를 후퇴시키는 아주 비 인간적인 형태로 이용되어 왔다.
계엄군은 국가를 수호하고 국민을 지키는게 아니라 국민들을 진압하고 통제하는 아주 무시무시한 군대로 탈바꿈 퇴는 것이다.
국민의 권리와 자유는 계엄군에 의해 모든게 통제되고 무고한 시민들의 희생으로 이어지기까지 했다.
비상계엄령은 누가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아주 위험한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드러나 있다.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언론의 자유가 통제되고, 집회와 시위 그리고 모임등이 금지되며, 영장없이 군법에 따라 누구던 체포가 가능해진다.
모든 법령은 군법에 의해 군사재판으로 행해지며 국민의 기본권과 자유가 사라지는 것이다.
비상계엄이란 이처럼 어떤 국가적 조취가 아닌 상당히 상징적인 것이다.
계엄선포 하나만으로 그 국가는 이미 독재, 반란, 쿠데타, 테러, 전쟁위험 등의 모든 안보가 위협당했다는 메시지가 전세계에 알려지는 것이다.
탄핵당한 윤석열 대통령은 왜 그런 악수를 뒀을까?
야당의 의석수가 절대적으로 많은 국회에서 2025년 예산을 4조1천억 삭감 시켰는데 대통령이 일할수 없도록 만들어 놓고 국회 본회의를 통과시켰다.
야당의 단독 감액예산안이 사상 처음으로 국회에서 통과된 것이다.
대통령 비서실, 국가 안보실, 경찰.검찰.감사원 의 특수활동비와 특정업무 경비를 전액 삭감시켰으며 R&D(기술개발) 비용도 삭감시켰다.
물론 야당이 봤을 때 불필요한 비용을 삭감시켰다 하더라도 대통령 입장에서는 일하기 힘들어 졌으니 상황이나 심리적으로 상당히 코너에 몰렸을 수도 있다.
미국은 공화당 의원들이 예산통과를 안시켜줘서 셧다운 위기까지 갔었지만 하루 전날까지 바이든 대통령과 공화당 의원들간의 기싸움을 하다 극적으로 합의를 본 일화도 있다.
정치란 그런 것이다.
서로가 의견이 안맞으면 앞에서 의자도 집어던지며 싸울수도 있고 또는 뒤로 은근슬쩍 딜을 보며 끌고 나가는 것이 정치이다.
내가 뭔가 하나를 얻어내려면 뭔가 하나를 내줘야 하고, 뭔가 하나를 내주면 상대로부터 뭔가 하나를 얻어오는 것이다.
나의 의견에 정면으로 치고 들어오면 맞서 싸우던 적당한 합의롤 보던 정치적으로 해결해야지 무슨 5공시절도 아니고 군대를 동원한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이번 계엄선포는 3일 천하도 아니고 2시간 30분 천하로 어설프게 끝났다.
참 좋은 선례로 남게 된 것이다.
앞으로 정권을 쥐게 되는 미래의 국가통수권자는 이번일을 계기로 쉽게 비상계엄령 이라는 카드를 만지작 거리기 힘들 것이다.
전두환도 1979년 12월 12일 군사반란을 일으키는데도 목숨을 걸고 자신의 인맥과 가용할수 있는 군대를 총동원 해서 간신히 성공시켰다.
이번 비상계엄은 어설프게 해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지만 이번일을 계기로 교훈삼아 악의를 품은자가 치밀하게 계획해서 치고 들어오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남는다.
한국의 정치상황의 후폭풍으로 갈등이 장기화 되면 무디스는 국가 신용등급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수 있다고 우려했으나 다행히 내부적으로 안정을 찾아가며 빠르게 수숩하고 국민들이 동요하지 않고 단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참 다행이다.
정치인들이여.
잘좀 하자.
제발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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