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날

-단편선 <Sümpfe der Verzweiflung> -3-

by 김태광수


2011년 무렵, 작전역 사거리 인근. 효성고등학교로 이어지는 길목에 낡은 주거단지가 있었다. 그곳은 곧 허물어지고, 8년 뒤 다시 ‘부활’할 예정이었다. 재개발. 이 빌어먹을 단어. 우리는 재개발 때문에 쫓겨와 살았고, 또다시 재개발 때문에 쫓겨날 팔자였다.


낮에는 아무렇지 않은 골목 같았지만, 밤이 되면 전봇대 위 전선들이 마치 검은 뱀떼처럼 꿈틀거리며 하늘을 가득 메웠다. 전력공사 기사조차 어디가 어디로 이어지는지 모른다는 그 얽힘 속에서, 나는 불현듯 어떤 목숨들이 매달려 있는 듯한 환영을 보곤 했다.


가로등 불빛은 누렇게 바래 어둠을 밀어내지도 못한 채, 쇠락한 단층 주택들의 그림자를 벽에 붙여 세워 두었다. 도시가스조차 들어오지 않는 집들, 벽마다 얼룩처럼 번지는 곰팡이와 핏자국 같은 그늘들. 거리는 숨을 쉬는 듯 고요했으나, 그 고요는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죽은 자의 침묵 같았다.


재개발을 앞둔 동네가 늘 그렇듯, 사람들은 떠나고 도둑고양이들이 남았다. 골목마다 싸움질하는 소리, 울부짖는 소리, 그 소리가 마치 사람의 통곡으로 들리던 밤도 있었다. 현관 앞에는 매일같이 고양이가 잡아놓은 쥐의 시체가 널려 있었고, 그 피와 내장이 마르며 낡은 벽돌 틈새에 스며들었다. 그걸 아무도 치우지 않았다. 사람들은 고개를 숙인 채, 땅만 보고 걸었다. 땅 위엔 똥, 뼈, 털, 그리고 어제 죽은 것들의 흔적이 늘 굳어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사거리 한복판에 고양이 한 구가 죽은 채 누워 있었다. 처음엔 잠든 듯 보였지만 가까이 다가가자 코를 찌르는 썩은 냄새가 뿜어져 나왔다. 나는 봉지를 사서 치우려 했으나, 누군가 내 팔을 잡아 막았다.

“그냥 두세요. 그건… 곧 사라집니다.”

그 목소리는 냉담했지만, 어딘가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이 묻어 있었다. 나는 차마 다시 묻지 못했다.

그 뒤로 고양이 시체는 이상했다. 낮에는 분명 그대로였는데, 밤이 되면 위치가 달라져 있었다. 어제는 도로변에, 오늘은 가로등 밑에, 또다시 며칠 후에는 골목 어귀에. 사람들은 누구도 보지 못했다고 했지만, 모두 알고 있었다. 그 시체가 스스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그러나 누구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몰락한 상가 근처에선 개 짖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비명 같았다. 언젠가 봉고차 한 대가 동네를 지나다니던 걸 보았다. 좁은 케이지 속에 갇힌 개들의 흰자위가 들썩였고, 앞좌석에는 정체 모를 시뻘건 고기가 담긴 고무대야가 놓여 있었다. 그 고기는 이미 썩어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파리들이 붙지 않았다. 마치 그것이 살아 있는 살덩이처럼 꿈틀거리며 숨을 쉬는 것 같았다.


얼마 뒤 새벽녘, 경찰차들이 몰려왔다. 동물 사체가 썩어가는 냄새가 동네를 덮었다. 번식장이었다고 했다. 좁은 철창 속에서 눈만 반짝이던 개들은,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주민들 속삭임 속에 ‘저건 개가 아니라, 오래전에 죽은 사람들이 돌아온 것’이라는 이야기가 떠돌았다. 나는 웃어넘겼지만, 그 웃음은 오래 가지 못했다.


세 달이 지났다.

사거리의 고양이 시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이제는 뼈만 앙상하게 남았는데도, 이상하게도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날이 갈수록 더욱 선명해졌다. 길바닥에 붙어 풍경의 일부가 되었고, 사람들은 마치 그것이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조각상인 양 무심히 지나쳤다.


나는 알았다. 그것은 단순한 시체가 아니었다.

이 동네 자체의 모습, 부패와 방치와 무관심이 모여 만들어낸 ‘부활의 형상’이었다.


우리는 매일 그 시체 곁을 걸어 다녔다.

누구도 치우지 않았고, 누구도 모른 체했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어쩌면 이미, 우리 자신이 그 시체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숨 쉬는 채로 썩어가며, 죽은 채로 부활해 있는 존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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