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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물 Jun 13. 2022

면접을 준비하며…

- 새로운 왕국의 병사가 되기위해 귀화 시험을 치루다.

 기회가 왔다. 그리고 이제 임원면접 한 번만 넘으면 다시 매월 꼬박꼬박 월급이 나오는 회사원이 될 수 있다. 면접을 위해서는 힘겨웠던 과거의 기억은 반드시 마주해야 한다. 잊어버리고 싶은 끔찍했던 예전 회사에서의 기억들을 미화하는 위선적인 과정도 필수이다. 왜냐하면 임원 면접에서의 충성 맹세를 위해 지난 날 섬겼던 왕에 대해서 상세히 이야기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야기를 잘 꾸미는 사람이라도 자신의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인위적인 아드레날린을 투입하여  자신감있고 진취적인 영웅이야기로 꾸미는 작업은 결코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 같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하루, 한달, 일년, 그리고 몇 년을 예전 직장에서 무엇을 했는지 소상히 밝히는 일은  또 다른 회사라는 왕국의 노예로 팔리기 위한 심사에 필수 조건이기 때문에 마음을 다시 다 잡고 그 때 그 곳으로 나를 끌고 데려간다.  


 진취적이고 성공적인 성장 소설을 위해 나는 초라하고 비참했던 예전 회사의 면접부터 회상한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을 검증하는 청문회에서 처럼 대한민국의 회사원은 온갖 질문 공격을 방어해야 한다.결혼 유무, 출산계획, 잡일 가능 여부, 그리고 왜이렇게 늙었냐 등등 온갖 수모와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을 강요 받는 공격을 받는다. 이 공격을 넘기기 위해서는 표정관리라는 방어태세가 필수이다. 미세한 역겨움이나 분노의 표정은 절대로 드러내면 안된다. “네! 할 수 있습니다!” 는 아니더라도 능글맞게 웃어 넘기며, 앞으로도 이렇게 웃어넘길 거라는 신호를 보내야 한다. 그래야 다시 미세한 미소로 공격태세가 누그러진다.   


입성한 회사에서는 밑바닥부터 천천히 올라왔다. 온갖 시험과 탐색에서도 역겨움, 분노의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된다. 회사 문앞, 아니 지하철 역 앞에서 부터 미소는 필수 장착하고, 유통기한이 지날대로 지나, 썩어버린 체력이라도 회사에서는 신선한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월요일 아침에는 주말에 뭐 했는지 정리해야 한다. 대본을 만들고, 표정과 제스처를 구상한다. 가벼운 질문리스트를 머리에 입력해 놓는다. “사회생활”이라는 실제 무대에서는 자연스럽게 연기해 본다. 인맥을 하나씩 만들어 나갔다.  


그렇게 예전 회사라는 왕국에서 인적 네트워크, 나의 판로를 점 점 넓히고 있을 무렵 열어서는 안될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말았다. 바로 내 또래의 연봉리스트!! 그 판도라의 상자를 연 순간 나는 굽신거리며 판로를 넓혀가는 아직 힘은 없지만 열심히 사는 소상공인에서 “나의 연봉”이라는 정의를 실현시키기 위해 칼을 들고 싸우는 잔다르크가 되어버렸다.


어처구니 없게도,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잔다르크가 아니라 세상 물정 모르는 정신나간 철없는 바보였다. 그동안 실무진으로서 다른 부서사람들과의 평판 관리와 팀내 언니들과의 관계만을 생각하고 충성맹세를 하며 온갖 일을 다른 불평없이 자진해서 수행해 왔었다. 하지만 정작 내 연봉을 올려주 수 있는 최고 인사권자인 임원에게는 거침없이 문을 열고 들어가 돈을 더 달라고 숫자를 들이대고 협박했던 것이다.  


아… 인생 최악의 실수 였다. 이 일은 정말 내 인생에서 두고두고 최악의 에피소드로 나를 쭈구리로 만들어 아무말도 못하게 하거나, 얼굴을 빨갛게 만들고 싶을 때 재생하면 가장 효과적인 장면일 것이다. 나는 그 당시 팀내 언니들과 타부서 사람들과의 뒷담화를 통해 결속을 다지는 식의 동맹대회를 통해 서로를 보호하고 있었다. 그 대상은 바로 그 임원.. 우리의 생명줄과도 같은 그에 대한 뒷담화는 우리의 결속을 위해 필수적인 연대의 기본소양과도 같았다.   


순진한 아줌마.. 그 결속에 너무 심취해 있었나보다.  

연봉을 올려달라고 그의 문을 두드리고 자료를 들이미며 협박한 자여, 그 결과는 참혹하도다..

그렇다. 나는 내가 굉장히 객관적이고, 유능하고 멋진 커리어 우먼으로서 나의 이 비참한 연봉의 현실을 타개하기위해 협상에 임하는 자기주도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일을 계기로 나는 조작된 인사평가에서 꼴등이 됐고, 유일한 연봉동결 대상이 되어버렸다. 나의 실력에 대한 객관적인 데이터는 너무 쉽게 조작되어 휴지조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를 보호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미 바보가 되어버린 나를 제외하고는...  

그나는 울면서 회사를 떠났다.  


다시 새로운 왕국의 시민으로서 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지금 나는 과연 어떠한 자세로 면접에 임해야 할 것인가…  

대자연의 인간으로서 그리고 19세기 산업혁명을 필두로한 현대문명사회 중 지금, 21세기에 살고 있는 대한민국 38세의 여성으로서 나의 주변을 돌아본다.  


나는 내 자신을 깨끗하게 버리기로 했다.  


나만의 문제해결능력보다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문제해결방식에 기초하여 면접에 임하고, 회사생활을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그것이 전쟁에서 적군이 아니라 아군이라는 신호탄을 쏘아올려 결속을 시작하는 것이고, 전투실력보다는 충성맹세가 우선인 전쟁의 생존 방식이기 때문이다.


 

소녀에서 철없는 아줌마, 이제는 자진해서 유능한 병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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