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기도

화엄사 템플스테이

by 바람


1박 2일 여행사를 통해 구례 지리산 화엄사템플스테 이틀 갔다. 10년 전에 지리산 둘레길을 당일 여행 이후 두 번째 지리산 여행이다. 10년 전 석가탄신일날 호기롭게 당일로 떠난 지리산 둘레길 여행. 차는 막혔고 컨디션은 엉망이었다. 그러나 그날 지리산을 걸으며 보았던 우아하면서도 부드러운 산세와 그 산세를 차분히 감싼 하늘. 그 엄마의 품 같은 신비하면서도 아늑한 느낌이 잊히지 않았다.


화엄사를 가기 전 첫 번째 목적지는 천은사였는데,

미스터선샤인의 촬영지로 유명하다 한다.

샘이 숨어버린 절. 옛사람들은 이름도 시처럼 짓는다. 그리고 재미있는 옛이야기가 한두 개쯤 있어 장소에 흥미를 더한다. 숙종 때 절 중건과정에서 구렁이를 죽인 이 후 샘이 마르고 화재가 발생하자 이광사로 하여금 현판(지리산 천은사)을 쓰게 했고 물처럼 흐르는 글씨체로 이후 화재 나지 않았다고 한다. 절에 얽힌 옛날이야기. 이야기를 듣고 일주문을 보니 현판의 글씨체가 세련되고 물 흐르는 듯 부드러웠다. 글씨와 글에 힘이 있다는 믿음. 글에는 고유한 혼이 실리는 듯하다. 아무 글이나 쓰는 것은 아무 말이나 내뱉는 것만큼 무익하다. 시끄럽다. 오후 화엄사 입구에서 보게 되는 불언과 이어진다.


극락보전에서는 예불 중이었는데 '백중(百中) 예불' 인듯하였다. 토지에서 월선이가 어미를 위하며, 어미를 원망하며 고통스럽고 외로운 자신의 삶에 서러워하며 백중기도를 올리던 장면이 떠올랐다. 백중기간에 절이라니. 하얀색 연등을 보며 어쩔 수 없이 나는 내 인생에서 월선이 만큼 이번 생의 한으로 남은 죽은 두 사람을 생각했다. 한 분은 생전 받은 것에 대해 갚을 수 없는 미안함에 다른 한분에게서는 왜 나에게 그래야 했는가에 대해 답을 평생 들을 수 없었다는 원망에... 살아있기에 나에게는 아프게 다가오지만, 이미 이 세상에 안 계신 두 분에게는 전생의 인연일 뿐이고 지나간 이야기 같은 것일 것이다. 내가 덜 아프기 위해 하는 것은 그저 여기서의 고통은 잊고 두 분의 극락왕생을 비는 것일 뿐.


극락보전 안에서 스님의 불경소리에 맞춰 땀 흘리며 절하는 사람들의 기도 속에는 누가 있을까. 떠난 분은 살아서 이렇게 열심히 그분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걸 알까? 저 기도는 산자들을 위한 것일까. 죽은 자를 위한 것일까. 아니며 그 경계에서 죽은 자가 될 산자를 위로하는 춤 같은 것일 것일까. 색색의 연등과는 대조적으로 극락왕생이라는 글씨에 소복을 입힌듯한 하얀 백중 연등을 보며... 단정하고 서글퍼 보이는 저등이 차가운 혼뿐만 아닌 뜨겁게 기도하는 산자들에게도 빛을 가져다주기를.


여행사에서 점심은 구례에서 유명하다는 산닭구이였다. 산속에서 닭을 바로 잡아 닭회를 내주고 구워주고, 삶아주고... 나중에는 죽까지 만들어 주었다. 닭을 생으로 먹고, 구워 먹고 삶아 먹고. 극락왕생을 부처님께 비는 백중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을 보고서는 직전까지 살아있었던 생명을 당당히 먹는다는 게... 갑자기 생소하게 느껴졌다. 닭 한 마리가 그려지는 점심. 내가 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생명에 빚을 지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드디어 지리산에 자리 잡은 화엄사에 들어섰다. 일주문 앞 계단에 한 줄로 자리 잡은 세 개의 부처님 석상이 보였다. 동글동글한 얼굴에 곱슬머리, 귀여운 아가 같은 석상이 하나는 눈을 가리고, 또 다른 하나는 입을 가리고 나머지 하나는 귀를 가린 채 웃고 있었다. 귀여운 포즈와는 대조적으로 불상들이 지닌 의미를 무거웠다. 불견, 불언, 불문. 나이가 들수록 챙기기 쉽지 않은 세 가지다. 나이가 들수록 볼거리에 혹하고, 가볍게 떠들어대며, 세상사에 귀를 쫑긋하고 들으려 한다. 자신 안에서도 온갖 것을 보고, 듣고, 말하기에 속이 시끄럽다. 화엄사에 머문 짧은 1박 2일 동안도 못 참고, 과시, 과언, 과문이었던 나였다. 화엄사의 해 질 녘, 밤, 새벽 풍경을 놓칠세라 열심히 눈과 핸드폰에 담고, 풍경을 담지도 못하는 가벼운 감탄사와 표현으로 본 것과 내 감정을 말하고, 나와 비슷한 다른 사람의 수다와 감상을 지나치게 들었다. 그나마 내가 불언과 불문을 지킬 수 있었던 유일한 시간은 화엄상의 새벽이 아닌가 싶다. 인후통과 발열감에 지쳤지만 깊게 잠들지 못했고, 새벽 4시 30분쯤 불전사물 소리와 타종소리에 잠이 깼다.


어제 해 질 녘 들었던 불전사물이 준 감동이 선명해졌다. 10분간 행해지는 불전사물은 연주라기보다는 지리산을 비롯한 세계에 몸으로 바치는 단단한 기도 같았다. 소가죽으로 만들었다는 법고를 치는 것으로 시작해, 철로 만든 구름모양의 운 판, 나무로 만든 물고기 모양의 목어를 연주한다. 마지막으로는 범종을 치며 불전사물이 끝난다. 불전사물의 소리를 들으며 매일 새벽과 해 질 녘 하루의 두 번 어딘가에서 나를 포함해 세상의 생명을 위하는 이 단단한 울림이 퍼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려 한다. 내가 비록 듣지 못하더라도 그 울림을 믿고 느낀다면 내 안의 어둠과 불안이 조금은 물러나지 않을까. 고통스럽고, 슬픈 생명들. 그 생명을 위로하는 몸짓. 화엄사의 스님들이 매일 불전사물을 연주해 준다는 사실은 나를 조금은 안심시켰다. 오랫동안 그 울림을 품고 싶다.


새벽 불전사물 이후, 새벽예불도 이미 시작되었지만, 법당 밖에서라도 새벽예불소리를 듣고 싶어서 방을 나왔다. 밖을 나오자마자 나를 압도했던 건 짙은 푸른 새벽하늘에 촘촘히 박혀 있는 별과 깊이를 알 수 없는 지리산의 산세였다. 불경 외는 스님들의 목소리와 목탁소리를 들으며, 새벽 별과 하늘을 바라보며, 깜깜한 하늘은 샛별이 밝히고, 깜깜한 지상이 기도로 밝혀지며 아침이 오는 듯하였다. 평생 그날 새벽 혼자 경내를 걸었며 들었던 소리, 보았던 풍경을 잊지 못할 것이다. 압도적인 감각 앞에서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는 것. 시간이 지나면서 더 그 감각이 날카로워지면서 몸에 박힌다는 것. 정말 강렬한 경험은 말문을 막히게 하고 어떤 해석이나 감상도 불가능하게 한다


이층으로 보이는 각황전은 층고가 높아 웅장하면서도 세월에 자연스러운 색을 띠는 목조건물의 편안함이 있다. 수령 많은 나무 앞에 서듯... 마음가짐이 경건해지면서 내 시간과 이곳의 시간을 가늠하고 대조해 본다. 이런 곳에서 스님들과 예불을 올린다.


기도를 할 때마다 갈팡질팡 하는 내 마음을 보며, 한 곳을 향해, 간절하게 기도하는 사람들을 신기하게 보며. 나는 무엇을 향해 기도해야 할지 몰라 서글퍼진다. 간절함이 없는 내 마음이 꼭 텅 빈 것만 같다.


세상의 온갖 감정과 지식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그동안 원망, 집착, 의심. 슬픔, 자기 연민과 자기 파괴. 온통 나 중심이었던 두 발 디딘 만큼의 세상밖에 살지 못한 지난날은 훨훨 보내고, 한 발만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가만히 혼자 서서 있었던 그동안의 시간이 의미 있는 시간이 되게 해 주세요. 나를 향한 말들은 침묵하게 하고 나를 벗어난 기도는 쉬워지게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