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서 목소리를 낸다는 것에 대하여
내 역사는 끊임없이 여자들로부터 도전받는 것으로 점철되어 있다
눈에 띈다는 이유로
개성과 주장이 강하다는 이유로
여자가 셋이 넘으면 난 언제나 그들의 적이 되고 그들은 한편을 먹는다
50이 넘어 공익을 위한 일을 벌일 때도 내가 그들의 뜻대로만 움직이지 않자 박힌 돌을 빼내 듯 내 주위 사람을 어떻게 구워삶은 건지 하나 둘 나에게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가관인 것은 마을 일의 회의를 하자해도 시간이 없다던
부대표 부부가 요즘 말로
가스라이팅에 말려든 건지
한 여인네와 같이 있는 것을 동네 제법 큰 마트에서 맞닥트렸는데 이렇게나 어울리지 않은 조합은 난생처음 본 지라 황당무계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얼마 후 이 세명의 조합을 동네 영화관에서 또 마주쳤고 그 충격의 여파는 내 가슴을 옥죄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고군분투 마을을 위해 애쓰고 있는데 왜 저들은 나를 등지고 가버리는 거지?
그것의 해답은 끊임없이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본질과 맞닿아있었다
자고로 공익을 추구함은 결국 모두에게 이로운 것인데도 그들에게 산은 보이지 않고 나무만 보이는 것이었다
그래도 어려서부터 이런 일에 익숙해서인지 나는 꿋꿋하게 마을 일을 추진하였고 하나둘씩 성과를 내고 있었다
마을 대표라는 완장을 차고 나니 내 인생 최초로 공직사회로부터 분에 넘치는 대우를 받았다 그럴 때마다
"이 완장질에 현혹되서는 안돼"라고 나를 다그쳤지만 주민들 마음은 대표가 자기들의 이익을 어떻게 채워줄지에만 몰려있었다
내가 대의를 이루기 위한 포석으로 마을 행사를 제안했을 때 그들이 내 반대편에 서 있는 마을 사람으로 가장하고 뚫고 들어온 업자들 편을 들자 내 설움은 단숨에 복받쳐 오르고 내 눈에 눈물이 고였고 내 말은 울음 반 공기반이 되어 메아리치고 있었다
대표가 왜 저리 감정적인 장면을 보여주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던 보통 사람은 대표님 근데 그때 왜 우신 거예요?
라는 질문으로 아 그들은 내 맘도 일의 효율성도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한 어린애이구나 리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 천진성이 엄청 착하고 순수한 것만은 아니고
자기가 보고 싶은데로
노란 안경을 쓰고 있다면 노랗게 보고 빨간 안경을 쓰고 있다면 빨갛게 보이는 것이다
도대체 얼마만큼의 인간이 나 자신을 얼고 죽을 수 있을까?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관조하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