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그렇게 친하지 않은 외삼촌

이제는 삼촌에 대한 잔상이 자연스럽게 소멸되기 바랍니다.

by 정훈보

우리집은 차가 없어 내가 6살 때부터 혼자 집에서 남대문시장으로 버스를 타고 다니게 되면서 버스를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녀 보았다.. 초등학교 때는 방학 때 충청북도의 한 도시에 있는 외가집에 혼자 갔었다. 어머니는 방학 때 나를 억지로 2주 동안 집과 별로 다를 게 없는 재미없는 외가집으로 보냈고 외가집에서도 집으로 혼자 잘 오곤 하였다.


본가는 서울이고 외가는 충청북도라 아버지는 외가집을 잘 가지 않으셨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 어머니, 나, 동생 모두 넷이 시외버스를 타고 외가집을 가게 되었다. 외할머니께서는 어머니 쪽 친척이 있는데 친척의 아들이 사범대를 졸업해서 선생님 자리를 구한다고 하였다. 나는 먼 친척이지만 그를 용혁이 삼촌이라고 말하겠다. 내가 외가집에 도착한 다음 날 용혁이 삼촌은 두유 한 박스를 들고 외가집으로 찾아왔다. 어른 들끼리 그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더니 갑자기 용혁이 삼촌은 우리 집과 가깝게 될 정도로 자주 찾아오게 되었다. 알고 봤더니 사립학교 교직원이었던 아버지는 용혁이 삼촌을 아버지가 다니는 사립학교 강사자리로 앉히는 데 힘을 쏟았다고 한다.


용혁이 삼촌은 아버지 학교 강사가 되고 교직원이 되었다.


용혁이 삼촌은 사립학교 강사생활을 하면서 거주지인 충청북도 생극면에서 경기도로 침대가 하나 들어갈 정도의 자그마한 자취방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당시 용혁이 삼촌네는 생극면에서 참외 농사를 지었으며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었다. 용혁이 삼촌 아버지는 자신의 소유의 포도밭을 팔아 용혁이 삼촌이 교사가 될 수 있도록 도왔다. 용혁이 삼촌은 용혁이 삼촌의 아버지가 포도밭을 팔은 수표를 가지고 우리 집에 왔었다. 용혁이 삼촌은 나에게 문방구에 가서 수표를 복사해 오라고 했는데 나는 그 돈이 사립학교 재단에 교사 자격 명목비로 필요한 돈이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용혁이 삼촌은 2년 간의 강사생활을 마치고 아버지 학교와 같은 곳에 사립학교 교직원이 되었다. 용혁이 삼촌이 사립학교 교직원이 되고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용혁이 삼촌 집에 갔더니 용혁이 삼촌이 교직원 축하의 의미로 마을에서 돼지고기를 잡았는데 나는 그 돼지고기가 안 익었는지 어땠는지 모르지만 그 고기를 먹고 몸에 두드러기가 심하게 나서 고생을 하였다.


결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용혁이 삼촌은 언제 연애를 했는지 면소재에 있는 우체국 아가씨와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아가씨는 국립대학교를 나와서 고향의 면소재 우체국에서 근무를 한다고 하였다. 그 아가씨와 그 아가씨의 오빠까지도 공부를 좋아한다고 하였다. 용혁이 삼촌은 강사생활을 마치고 사립학교 교직원이 되자마자 결혼을 하게 되었다. 우체국은 주거지로 발령이 가능하다 하여 외숙모는 서울로 발령을 받았다. 용혁이 삼촌의 신혼집은 우리와 비슷한 동네이지만 용혁이 삼촌네 신혼집이 우리 집보다 역과 더 가까웠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살던 전세집은 당시에 5,300만 원짜리였는데 당시 용혁이 삼촌의 역세권 단독주택은 3,500만 원짜리 집에 살았다.


용혁이 삼촌은 맞벌이고 우리 집은 외벌이로 살았다.


용혁이 삼촌은 맞벌이를 하면서 열심히 자금을 모았고, 당시 우리 집은 아버지 혼자 외벌이였고 나의 어머니는 무릎을 일찍 다치셔서 자식 둘이 중고등학생이라 돈 들어갈 때가 많아서 일용직으로 백화점에서 오래동안 서 있는 일을 하셨다. 아버지가 생활비 명목으로 매 달 100만 원 남짓 어머니께 주던 월급과 어머니가 벌어온 용역비로 네 식구가 악착같이 살게 되었다.


용혁이 삼촌은 방학 때 우리 집에 자주 왔는데 우리 집이 예를 들어 옷장을 사면 내가 아주 가끔 용혁이 삼촌네 놀러 가면 더 좋은 옷장이 있고 소파를 우리 집이 옆집에서 얻어 왔을 때도 용혁이 삼촌은 우리 집보다 더 좋은 것을 항상 사곤 했다. 용혁이 삼촌은 외형적으로 부부가 돈 열심히 모아서 나름대로 살림살이를 늘려갔다.


나는 용혁이 삼촌을 멀리하고 싶었다.


용혁이 삼촌은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눈썹도 진하고, 키도 커서 티브이에 연예인의 첫사랑으로도 출연한 적이 있었다. 이목구비가 뚜렷하여 인기가 있는 대비 나에게는 그렇게 좋은 삼촌은 아니었다. 용혁이 삼촌은 남을 아래로 보고 약점을 들쑤시는 경향이 있었다.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친척이 한 분 계셨는데 교수되기 어렵다고 아버지와 용혁이 삼촌은 말하였다. 나는 당시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고생해서 박사까지 졸업하였는데 교수가 안된다는 추측을 하니 나는 그런 의견조차 기분이 나빴다.


상의도 없이 내가 다니는 학원에 아버지와 용혁이 삼촌이 내 성적을 보러 급습하였다.


나는 중학교 때 학업성적이 좋지 못하였다. 그래도 어머니는 집에서 없는 살림에 학원을 다니라고 하니 울며 겨자 먹기로 학원을 다녔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시험기간에 밤을 새워서 학원에서 공부를 했지만 그렇게 성과가 있지는 않았다. 학원에서 어느 날 과학수업을 듣는데 갑자기 강의실 유리 너머로 아버지와 용혁이 삼촌이 원장님 방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원래 아버지는 내가 공부를 못하는 거는 알고 있었지만 공부 못하는 거에 대해 답답해하시긴 했어도 나에게 직접적으로 뭐라 한 적은 없었다. 학원에서 한 10분쯤 있다가 아버지와 용혁이 삼촌이 다시 돌아가시기는 했는데 나는 학원 원장선생님께 왜 아버지와 그 다른 분이 오셨는지 물어봤더니 자세히 답은 안 해주셨다. 내 생각에는 갑자기 무례하게 오신 분에게 학원 잘 다니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고 나는 악으로 공부를 잘하게 되기는 어려우니 마음의 짐을 안고 그냥 넘어갔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성적이 거의 다 보통이었는데 작은아버지가 내 성적표를 막무가내로 보고 싶다고 화를 내셔서 나는 성적표를 작은아버지에게 건네었던 상처가 있는데 용혁이 삼촌이 그런 행동을 하니 그 기억이 아직까지 부끄러움으로 남아 있다.


드디어 삼촌은 전근을 가게 되어 우리 집에 오는 빈도가 줄었다.


용혁이 삼촌은 재단의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게 되었고 방학 때 가끔 우리 집에 와서 학구열이 높은 외숙모가 아들을 데리고 1년 동안 어학연수를 간 이야기를 하였다. 그때 나도 어학연수에 대한 로망 같은 게 있었지만 토익공부만 하였다. 용혁이 삼촌은 나한테는 차가웠어도 맞벌이하는 외숙모 대신에 방학 때 애들 밥 차려주고 육아도 하는 등 의외로 자상한 모습을 보이는 좋은 아빠로 거듭나고 있었다. 카메라 총판을 하는 제자가 있어 카메라를 싸게 산 이야기 등 우리 집과는 다르게 용혁이 삼촌네 집은 안정괘도를 걷고 있는 것 같아 전세집을 전전하던 우리 집과는 대조적인 모습이 그려졌다.


삼촌은 개봉동에서 시작하여 목동에 집을 사게 되었다.


용혁이 삼촌의 제자 중 한 학부모가 목동에서 공인중개사일을 하시는데 그 공인중개사 분이 좋은 매물이 나왔다고 하여 선생님인 용혁이 삼촌에게 목동 2단지 신시가지 아파트를 무조건 구매하라고 밀어부쳤다고 한다. 용혁이 삼촌은 아파트 가격의 40% 이상이 대출이라고 하였지만 과감하게 목동 2단지 신시가지의 집을 매도하게 되었다. 처음에 용혁이 삼촌은 원금은 고사하고 이자만이라도 갚는 게 상당한 스트레스였을텐데 다행히 목동 2단지 신시가지는 아무리 호가를 상회한다고 해도 매도당시보다 적어도 7배가 넘게 올랐다.


지금 돌아보면 용혁이 삼촌은 차도 수동을 끌고 다니면서 검소하게 사셨고 부부 공무원의 월급으로 재테크를 잘해서 내 나이보다 어린 나이에 집을 사서 안정적으로 살고 있다. 나는 사실 용혁이 삼촌이 밉기는 하지만 그래도 용혁이 삼촌이 알뜰하게 자금 모아서 운영한 부분은 충분히 본받을 만하고 생각한다.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 날 어떤 일이 있었나요?


그러나 용혁이 삼촌에게 아쉬운 부분은 아버지가 정년퇴직 후 당뇨로 고생을 하셨었다. 나는 독립해서 살게 되어 아버지 곁에 없었다. 용혁이 삼촌은 2019년 겨울방학 때 막걸리를 사 들고 우리 집으로 왔다. 아버지만 막걸리를 드시고 취하셔서 어머니가 아버지를 그날 밤에 발견하시고는 아버지가 약주에 취해서 자는 줄 알았더니 아버지는 다음날 일어나지 못하셨다. 아버지 돌아가시기 그전 주에 우연히 나와 동생이 아버지를 보러 본가에 모이게 되었는데 그 당시에는 아버지 얼굴에 안색이 안 좋았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용혁이 삼촌이 사다준 막걸리를 드신 이후로 다음 날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었다. 용혁이 삼촌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날 아버지와 있었던 일에 대해서 우리 가족에게 일언반구 하지 않았다. 나는 그날 용혁이 삼촌이 술을 마신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있었던 사실을 알려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그 나비효과가 다 나에게 찾아왔고 당시 아버지가 돌아가신 틈을 타 고모들은 집안의 내막을 자세히 모르는 나에게 소송을 걸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어머니와 나는 둘이 만나면 그때의 아쉬움을 아직도 이야기한다. 다 지난 일이니 방도도 없고 용혁이 삼촌을 탓하지 않는다. 이제 이 글로 인해 편도체에 있는 용혁이 삼촌에 대한 기억을 조금씩 지우려고 한다. 아버지는 학교에서 있는 일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서 용혁이 삼촌이 파트너로 좋았을지는 모르지만 나는 용혁이 삼촌이 우리 집에 와서 내 약점 다 쑤시고 가는 것 때문에 오는 걸 반기지는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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