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경험했던 마음 따듯했던 동호회

이 자리를 빌려 많은 가르침에 감사합니다.

by 정훈보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수능시험을 보고 공부한 대비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아서 낙담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공부를 다시 시작해 보라고 하셔서 1월부터 바로 재수학원을 등록해 주셨지만 나는 바로 공부를 다시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처음으로 학원을 빼먹을 정도로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학원을 안 다니는 대신 조금 쉬면서 온라인으로 불교동호회를 들게 되었고, 온라인 모임을 조금 하다가 오프라인 활동한다는 점이 나에게는 매우 부담스러웠으나 온라인에서 만난 누님의 권유로 절에 가 보았다.


집중이라는 키워드가 와닿았다.


동호회 구성원의 연령은 내가 20대 였을 때 30-40대였고 결국에는 내가 막내였다. 당시 동호회에서 뜻이 맞는 구성원끼리 큰스님 법회를 갔고 법회 참석 구성원 중 한 분이 녹음된 파일을 손수 워드로 받아 적어서 그 자료를 동호회 알림방에 업로드하였다. 지금이었으면 적확도 있게 AI가 대신 받아 적어 주었지만 그 분은 직접 한 소절씩 받아 적어서 맞춤법도 딱 맞게 글로 남겨 주셨다. 나는 그 문서를 읽어보다가 큰스님이 수행을 하는 데 있어 집중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셔서 나는 그 키워드가 가장 와닿았다. 내가 수험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나는 집중력이 부족한 것 같아 우선 화두를 들기 전에 명상법을 동호회에서 배우게 되었다. 다행히 스님을 하신 분이 환속을 하셔서 매주 점검을 받으면서 도움을 받았다.


건강검진도 하고 등산도 같이 갔다.


동호회 활동을 하시는 분 중에 종합병원 간호사가 계셔서 나는 건강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할 때 도움을 많이 주셨다. 수험생활을 하다가 리프레시가 필요할 때는 동호회 벙개 때 꼽사리로 참여해 관악산에 가서 형님과 누나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해 주셨다.




기본서와 오답노트 정리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수험생활 마지막에는 동호회 형님 중에 한 분이 친히 집에까지 초대를 해 주셔서 점심식사를 하고 공부의 방법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셨다. 그 당시에 그 형님은 명문대를 졸업하신 분이었는데 지금도 다음의 3가지는 기억에 남는다.


독서실에서는 단기적으로 공부를 해야 하고 도서관은 장기적으로 공부가 효율적이다.

무조건 기본서가 있어야 한다.

오답노트를 만들어서 단권화해라


지금은 위의 3가지가 공부의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나는 위와 같은 이야기를 20대 때 처음 들었고 그 당시에는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 주신 분이 한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형님께 그런 이야기만 들어도 마음이 든든했었고 케어받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수능까지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오답노트는 만들지 못하였고 기본서도 정해지지 않아서 실현하지 못했으나 현재 회계를 공부할 때는 기본서를 하나 파서 단권화로 공부를 하고 있다.


같은 전공의 선배님


한 선배 중 한 분은 지금 귀농을 하고 계신데 그 선배는 저에게 "눈뜨면 공부하고 눈감으면 잔다"라는 이야기를 해 주셨었고 나에게 공부할 때 아웃풋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던 것 같다.


대학 합격 후 그 선배를 봉사방에서 만났고 내 전공을 알자마자 그 선배는 진로가 많지 않다면서 조금 우려 섞인 말을 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나도 과거로 돌아가서 그 전공을 택하라면 택하지 않을 정도로 시대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고 사실은 취업이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선배는 서울 명문대를 나와서 취업을 하였으나 수명이 짧은 광고계로 취업을 하신 분이었다.





대학교 이후에는 동호회활동을 하지 못했다.


대학교 시절에는 무슨 마음가짐이었는지는 모르지만 혼자 있고 싶었다. 나는 혼자 있는 것이 한적하기도 하고 집과 떨어져 생활을 하니 당시에 주위 환경도 조용하여 번잡스러운 삶보다는 나는 당시에 조용함이 되게 좋았다. 그래서 대학교시절에는 집에 거의 있지 않았고 도서관에서 공부는 별로 안 했지만 그냥 도서관에 앉아 있었다.






종로에 취업을 했을 때 퇴근 후 모임에 방문하였다.

학교 졸업을 하고 종로에서 일용직으로 근무했을 때 퇴근 후 모임에 나가서 다시 불교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모임에서는 매월 셋째 주 토요일 철야참선 법회를 해서 저녁 9시부터 새벽 3시까지 철야참선을 갔었고 나는 큰스님에게 화두를 받을 줄 알았는데 수행의 부족으로 당시에는 화두를 받지 못하였다. 그 당시 큰스님께 화두를 받았어도 지금도 그 화두를 들지도 못했을 것이다. 현실살이를 늦게 해서 고군분투하고 있기 때문이다.


취업을 하고 예전에 많은 도움을 주셨던 누님 및 형님들에게 다시 연락을 드려 그 당시에 고마움을 말로 전하였으나, 아무래도 서로 나이차도 있고 공감대가 형성되는 부분이 별로 없어서 만남을 지속하지는 못하였다.



심지어 취업자리까지 알아 봐 주셨다.


동호회에서 나를 가장 예뻐해주셨던 처사님은 동호회 모임 중 정기봉사에서 만나게 되었다. 나의 어려운 사정을 처사님은 잘 알고 계셨고 그 이후 나는 종로에서 취업을 할 때 다시 처사님과 재회하였다. 그 처사님은 전 여자친구 분의 아버지와 직장생활을 같이 한 인연이 있어 신기해하셨고 당시 솔로였던 나에게 처사님은 소개팅을 시켜주셨다.


소개팅 당시에 나의 장기적인 미취업상태로 인하여 처사과 만남을 지속하지는 못하였다. 1년 후에 처사님에게 다시 연락이 와서는 나에게 자료를 주시면서 이번에 신설된 공공기관에 지원을 하라고 하셨으나 그 공공기관에 면접을 보지는 못하였다. 내 인생에서 그만큼 나를 많이 생각해주는 사람이 지금에서도 그렇게 많지 않지만 그 중에 한 분이라는 것에 나는 처사님께 지금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 자리를 빌려서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 동호회에서 선배님들은 저를 기억하실지는 모르지만 저는 한 분 한 분 다 기억을 하고 있고 제가 치기어려 무례할 때도 이를 다 받아주셨습니다. 때로는 아픈 말도 들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가르침이 사회생활하는 디폴드 값이었다는 게 너무 신기했습니다.


역량이 부족하여 아직 염불은 많이 외우지 못하였고, 부처님 말씀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그 인연에 감사드리고 아직까지도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 꼭 드리고 싶습니다. 아직도 알을 깨지 못한 저 자신을 보면서 되는데까지 더욱 정진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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