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더 간소화되길 바랍니다.
연휴 전 날 승진발표를 하였다. 우리 팀원 4명 중 3명이 승진되었고 나만 승진이 안되었다. 거기에 대한 아쉬움은 별로 없다. 나보다 이번에 타 팀에서 상무에서 부사장으로의 승진이 취소되었고 그 팀에서 부사장으로 올라가면서 팀장을 임원으로 승진시키려는 이야기가 들렸는데 돌연 취소되었다. 아무래도 내가 보고한 재무제표를 보고 대표이사는 적지 않게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휴 전 날에도 온 힘을 끌어모아 다들 집에 일찍 갔지만 나는 저녁 7시에 집으로 출발해서 일찍 잠을 잤다. 과도한 업무로 인하여 연휴기간에는 좀 쉴 필요가 있었는데 본가와 처가집을 한 번에 간다는 건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 당일에 본가와 가까운 처가를 동시에 가는 건 나에게 부담이라 생각이 되어 일요일에 처가를 갔다.
처가에서는 장모님의 정이 넘쳐난다.
내가 처기집에 가기 부담스러운 이유는 장모님은 손이 크시다. 그래서 처가집에 가면 애들 밥을 해 주는 것은 좋은데 양이 너무 많다. 그리고 장모님은 우리 가정에서 쓸 만한 물건을 나와 아내의 의사와 상관없이 미리 챙겨 놓으시는데, 나는 그 물건을 안 가져가려고 갖은 애를 쓴다. 왜냐하면 나는 미니멀리스트를 추구하기 때문에 맥시멈을 추구하는 장모님과는 결이 잘 맞지 않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장모님은 내가 물건을 가져가지 않는다고 하면 자신이 섭섭하다며 그래도 물건을 밀어 넣으신다. 그런 실랑이가 명절 때마다 계속되니 나는 피곤해져서 차라리 설날 당일에 본가를 가고 미리 예방주사를 맞으러 처가에 다녀왔다. 나는 장모님과 실랑이 끝에 트렁크는 기본이고 뒷자석까지 짐을 쌓고 집으로 돌아왔다.
새벽에 본가를 갔더니 어머니는 만두를 빚고 계셨다.
나는 동생과 상의를 하여 동생은 갈비찜을 하고 나는 전을 부치기로 해서 명절 전 날에 재료를 사다가 나 혼자 전을 부쳤다. 명절 당일에 어머니는 만두를 혼자 빚고 계셔서 나는 만두피를 동글동글하게 만들었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어머니는 직접 반죽해서 만두피를 만들었고 뿐만아니라 만두의 속까지도 만들어서 만두를 빚었는데 거기에는 내가 동원이 되었다. 갓 만든 떡국을 먹고 나서 나는 바로 설거지를 했고 동생 딸내미 재롱을 보면서 집안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동생이 어릴 때도 나와 다르게 조금 엄격했는데 3살도 안된 딸에게 정리정돈을 시키니 나는 조금 의아했고 동생 딸내미는 그런 동생의 말을 금방 알아 들었다.
다행히 차가 많이 밀리지 않았고 집으로 여유 있게 왔다.
어릴 적에는 명절이 다가오면 어머니가 조금 예민해지셨는데 며느리가 명절에 대한 부담감은 아무래도 좋은 기억은 예기불안으로 이어질 만큼 무서움으로 다가왔을 것 같다. 나는 며느리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 설날이 되어도 눈치를 봐 가면서 내가 많이 움직이는 편이다. 올해는 다행히 아무일도 없이 조용히 지나갔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내 몸은 조금 힘들었어도 마음은 편안했다.
조금만 더 명절을 편하게 보내고 싶기는 하다.
야마모토 유조(山本有三)의 《파도(波)》라는 소설에는 등장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뒤에서 점점 밀려오다가 부서지는 파도를 앞에 두고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부모가 지겨울 만큼 힘들었으니 우리 아이들은 더 이상 이런 일을 겪지 않기를 바란다 해도, 아이들은 부모가 평생 겪은 일을 경멸하며 밀려오는 파도처럼 과거와 거의 변하는 일 없이 똑같은 실수를 " 반복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