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여행에 대한 소망을 잠시 접어두겠습니다.

너무 많은 곳을 생각했나 봐요

by 정훈보

나는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께서 열심히 가르쳐주셨던 공부의 기억은 별로 없지만 여행 이야기를 해 주셨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한문선생님께서는 "우리나라 관광지 중 안 가본 곳이 없다"라고 말씀하셨고, 생물선생님은 방학 때면 "해외여행을 가신다"고 해서 당시 갔다 오셨던 인도네시아 보르네오 섬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많은 곳을 여행하게 되었다.


나는 10대와 20대 때 서울의 무슨 동이면 관할 구가 어디인지 알 정도로 지리에 밝은 측면이 있었고, 2호선 순환선의 역은 성수역과 뚝섬역을 헷갈리는 거 이외에 다 꿸 정도로 서울의 대중교통의 구조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당시에는 영등포역 및 청량리역에서 부산역과 강릉역을 오가는 열차로 왕복여행을 다녀봤고, 동서울터미널과 상봉터미널도 이용하면서 대중교통으로 여행을 많이 다녔다. 한 번은 지리산 백무동에 갔을 때인데 남부버스터미널에서 야간 버스를 타고 등산을 해서 천왕봉을 찍고 내려왔으며 지리산에서 하산한 뒤 사상터미널로 이동해서 부산을 둘러보았다.


나는 환승에 민감하다


내가 해외 여행 한 곳 중 한 곳은 했을 때 환승역의 대기시간에 맞추어서 열차가 운행되는 것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서울에서 지하철을 탈 때는 다른 노선으로 환승을 하게 되면 환승시간에 맞춰서 운행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열차가 연착되었을 때 지각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면서 억지로 환승시간에 맞춰서 환승통로를 뛰었던 기억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고속버스나 시외버스 및 철도를 타고 여행을 해 보려 했지만, 시외버스나 고속버스를 내리고 나서 목적지로 도달하기 위해서 인터넷으로 정보검색을 아무리 해 보아도 버스터미널에서 관광지까지의 시내 및 시외버스 배차간격 때문에 시간이 맞지 않아 여행을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많았다. 관광지에서 하루 정도 더 머물 수는 있으나 그렇게 되면 길가에 버리는 시간도 많을뿐더러 목적지 하나 때문에 숙박을 해야 하는 고충이 나는 부담스러웠다.


그렇다고 수요도 별로 없는 목적지로 향하는 버스를 늘려 관광객은 고정되어 있는데 텅텅 빈 버스를 운행하는 것도 지자체의 예산 낭비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어느 정도 인프라가 갖춰진 부산여행을 좋아했었고 교통이 불편한 명소는 나중에 가는 걸로 미루곤 했다.


나는 본격적으로 국내여행을 아이들과 다니게 되었다. 아내는 아이들과 가는 장거리 여행을 극구 반대했지만 나는 기회가 많지 않아 무조건 멀리 가고 보았다. 아이들 6살 때는 진도에 다녀왔으며, 8살 때는 새벽 4시에 일어나서 해남여행을 할 정도로 애들을 혹사시켰다. 어렵게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는 성취감은 있었지만 나는 책에서 봤던 여행지의 감흥을 그렇게 느끼지 못했었다. 저번주 토요일에는 서울에서 비교적 가까운 수안보 온천을 다녀왔는데 집에서 목적지까지의 거리가 2시간 이상 소요되면 아이들은 여행을 부담스러워한다.



나는 이동할 때 탈 것에 관심이 많다.


내가 가보고 싶은 해외 여행지는 휴양지가 아니라 배낭여행지들이다. 히말라야 산맥, 델리, 바라나시, 피라미드, 앙코르와트, 마추픽추 등 고대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에 여행지를 가고 싶었으나, 마침 유튜브가 활성화되어 여행 유튜버들이 내가 가고 싶었던 많은 곳을 다녀와 주었다. 현재는 내가 즐겨보는 여행채널에서 중점적으로 보는 부분은 나라와 나라사이를 이동할 때와 지역과 지역을 이동할 때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하는가?"이다. 결국에는 환승이다. 예를 들어 유튜버들이 바라나시를 갈 때 델리에서 기차를 타고 가거나 비행기를 타고 가는 방법 등을 나는 간접체험하곤 한다. 어릴 때야 델리에서 바라나시까지 기차를 고집했겠지만 지금은 기꺼이 비용이 더 들더라도 비행기를 타는 편이 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생각했던 목적지를 잠시 접어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아름다운 곳이 많이 있어 내가 아이들과 여행을 많이 갔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아직 가보지 못한 여행지가 많이 있다. 최근에는 개발이 많이 되지 않은 도시를 선호한다. 최근에 부석사에 갔다가 풍기시내에서 점심을 먹고 산책하면서 외가집과 같은 옛날 건축물을 보고 잊혀졌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가보고 싶은 관광지는 섬진강 쪽이고 지리산은 예전에 가봤지만 다시 한번 가려고 하고 백록담 등반도 하고 싶기는 하다. 그러나 지금 그렇게 다니기에는 시간이 여의치 않다. 아직 일도 열심히 해야 하고 공부도 될 때까지 해야 한다. 지금은 예전보다 여행은 많이 가지 않지만 그래도 내 머릿속에서 고등학교 때 꿈꿔왔던 그리고 여행 유튜브를 보면서 가졌던 생각들을 접어두려고 한다. 대신 수년 뒤에는 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건강을 잘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이 그렇게 녹록치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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