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고되게 보낸 날 꿈에 불쑥 나오는 그녀

지금은 그녀를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by 정훈보

나는 대학원 시절 한 학기 후배를 좋아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안 사실은, 내가 후배를 좋아하는 건 자유이지만 대학원 내에서 조금 신중하지 못한 부분이 아쉬움이 남는 그런 짝사랑이었다. 나는 걸으면서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나와 그녀는 단 둘이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학교 내 육상 트랙을 걷기도 하였다.


일촌신청 먼저 하였다.


당시 싸이월드가 인기여서 또 다른 여자 후배가 그녀에게 얼른 일촌신청을 하라고 했다. 그런데 내가 일촌명은 정말 모르겠다고 해서 또 다른 여자후배가 일촌명을 지어줬다. 내가 그녀에게 문자를 보내면 한참뒤에 답장이 오는 스타일이라 싸이월드의 일촌수락도 늦었으나 그래도 그녀와 어렵게 싸이월드 1촌을 맺게 되었다. 그녀의 미니홈피 사진첩을 보니 그녀는 나와는 너무도 달랐다. 그녀는 대학교 휴학하고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갔으며 영국의 자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그녀를 보니 왠지 모를 여유가 느껴졌다. 내가 지금 상황으로는 미래에 우리 두 아들 어학연수를 보내려면 무리한 욕심을 내야 한다.


그 이후에 둘과의 캐미는 그렇게 없었지만 그래도 당시에 그녀와 잠깐잠깐 이야기했다는 자체가 기쁨이었다. 지금까지 기억에 많이 남는 부분은 단 둘이 영화를 봤다는 것이었다. 나는 혜화동 데이트 장소에 미리 도착하여 동선을 다 짜놓고 그녀가 오기를 기다렸다. 미리 예매한 영화를 보고, 그녀가 좋아하는 홍차카페를 미리 섭외해 두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내가 그날 마음의 확신이 없어서인지 어땠는지 애매한 감정이 이쁘게 차려입고 온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주지 못한 게 후회로 남는다.


고백을 하고 차인 순간 아쉬웠으나, 기억에 남는 것은 차이고 다음날 아침에 눈을 떴는데 눈물이 찔끔 흘렀다는 것이다. 내가 뭐 그녀에게 욕을 먹은 것도 아니었는데 나 자신도 내 몸의 반응에 되게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 후 여자친구를 만나서 헤어져도 울어본 적이 없는 내가 그때 왜 눈물 한 방울이 흘렀을까?



늦게 군대에 갔을 때, 선임은 그녀의 동생과 같은 학과였다.


그녀는 7살 어린 동생이 있었다. 그녀도 공부를 잘했지만 그녀의 동생도 공부를 잘해서 내가 가고 싶었던 대학교에 수시전형으로 입학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에게 차이고 나서 그 다다음 해에 나는 군대에 입대했다. 군대에서 선임과 이런저런 이야기하다가 그녀의 동생과 같은 학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XX이병님 아무개 아십니까?" 했더니 안다고 해서 선임은 바로 그녀의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고, 언니인 그녀는 "세상 참 좁다"고 이야기했단다. 그래서 그녀는 나의 부대주소를 알게 되었고 군인인 나에게 손수 편지를 써 주었다. 그런데 편지봉투에는 이름만 있을 뿐 답장할 주소는 없었다.


석사 예비발표 때 그녀가 사회를 봤다.


그녀는 나 군생활 때 석사 졸업을 하여 박사과정이었고 나는 석사논문 발표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 입대를 해서, 빠르게 나는 전역 후 바로 복학했고 석사논문을 써야 했다. 그런데 석사논문 발표할 때 박사 선배가 보통 사회를 보는데 공교롭게도 그녀는 나의 석사논문 발표 때 박사선배 자격으로 사회를 보았다. 나의 석사 논문 발표회 날 동료들과 점심을 같이 먹은 것이 그녀를 본 게 마지막이었다.


그녀는 결혼을 했고 그다음 해 나도 결혼을 했다.


나는 대학원 졸업 후 그녀에 대해서 생각이 거의 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취업준비 했을 때 나의 친한 대학원 후배가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결혼식 날, 나는 식장 근처에서 양복 입고 토익시험을 봤고 식장으로 갔다. 그런데 그날 결혼한 후배와 그녀가 동기라 그녀는 결혼식에 올 줄 알았고 나는 오기를 바랐는데 그녀는 동기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선배들의 소식으로는 나와 같은 해에 첫째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그녀는 나보다 1년 전인 2013년 10월 3일에 결혼을 먼저 하였고 공교롭게도 나는 그 후 1년 후인 2014년 10월 3일에 결혼하게 되었다. 그녀의 결혼식에 갔다 온 후배의 이야기로는 그녀는 인기녀여서 그런지 결혼식에 축하하러 온 사람이 많았지만 나 같은 경우는 집안의 불화가 있어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였다. 위에 10월 3일은 아내와 내가 처음 같이 산 날을 결혼기념일로 지정한 것이었다. 그 후 나의 첫째 아들과 그녀의 첫째 아들이 동갑이라는 이야기를 주위에서 듣게 됨으로 알게 되었다. 나는 그 바닥에서 떠나기도 했고, 교수님이 된 선후배도 있는데 왠지 예전처럼 선후배처럼 편하게 통화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내가 회사 앞에서 선배님을 본 적이 있었는데 아는 체하지 않고 지나간 적도 있었다.


회사생활이 고될 때 대학원 때 좋았던 생각이 나나보다.


내가 취업 준비 시절에 만난 전 여자친구와는 나와 헤어진 계기가 "나의 능력부족"이었는데 반면에 전 여자친구 어머니는 나와 전 여자친구 어머니와 같이 국수가게라도 해서 같이 돈을 벌자면서 나를 많이 좋아해 주셨다. 결혼 후에 꿈을 꾸게 되면 전 여자친구는 안 나왔지만 "제가 이렇게 일 열심히 하고 있어요"라고 애원하듯이 그 여자친구의 어머니가 꿈에 정말 많이 나왔다. 이 이유는 아무래도 남자쌍둥이를 양가 도움 없이 맞벌이하면서 키우는 힘듦이 꿈에서 투사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꿈은 잘은 모르지만 꿈은 나의 현재 심리적인 상황을 어느 정도 반영해 준다고 생각해서 꿈 깬 후에 마음을 잘 살피려고 한다.


생존을 위한 심리적 수혈


그녀의 집이 오래전부터 낙지집을 운영한다고 들은 기억이 있어 나는 서울 강북에 갈 일이 거의 없지만 4년 전에 하루 간 적이 있어서 혼자 점심을 먹으러 낙지집으로 갔다. 낙지볶음은 보통 2인분이 기본인데 그녀의 아버지는 혼자 방문한 나를 보고 1인분을 해 주신다고 해서 1인분을 시켜서 먹었다. 내가 평소에 먹던 일반 낙지와는 다르게 낙지가 많이 신선해서 손님들이 많이 찾는 것 같았다. 낙지볶음 레시피는 영업비밀이라고 쳐도 맑은 콩나물국하고 백김치 레시피를 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지금의 직장 생활은 인문계에서 상경계로 전직을 하여 지극히 세속적이고 계산적인 것들로 가득하여 20년 전의 짝사랑은 비록 결과는 아팠을지언정, 돌아보면 계산 없는 '순수함' 그 자체였던 것 같다. 조금 조미료 보태면 굳이 그 꿈에 대한 의미는 내 무의식이 삭막한 현실을 버텨내기 위해, 가장 순수했던 시절의 기억을 위로의 선물로 보내준다고 생각한다. 그 꿈은 낮 동안 세상에 깎여 나간 마음의 조각들을 밤사이 꿈이 부지런히 가져다 붙여주고 있는 것 같다.


콜레라시대의 사랑과 같은 꿈을 꾸는 건 아닙니다.


현실에서는 차였지만, 꿈속에서나마 가끔 그리고 불쑥 그녀를 다시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나의 마음은 '완성되지 못한 이야기'를 다시 쓰는 것 같다. 그것이 심리적으로 안도감을 주고 또, 꿈꾸었던 다음 날을 살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줌에 감사함을 느낀다. 내가 읽었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콜레라시대의 사랑』과 같이 가난한 전신국 직원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부유한 상인의 딸 페르미나 다사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그러나 50여 년 후에 페르미나 다사의 남편이 우르비노 박사가 사고로 세상을 떠나 이 둘의 사랑은 50여 년 만에 다시 이루어지지만 나의 경우 이런 사랑은 불편하고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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