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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저는 행동이 서툴러서 그런 것 같습니다.

by 정훈보

어릴 적에 명절이나 제사를 가면 친지들이 많이 모이곤 했다. 그중에서 내가 불편했던 점은 "이름 외우기"였다. 할머니 이름부터 고모이름까지 나에게 한 번 말해주고 이름이 뭔지 다 맞춰보는 테스트를 했었다. 그래서 나는 몇 년을 반복해서 테스트를 거치니 나는 친가 쪽 4촌의 이름 및 한자를 다 외우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쓸데없는 장기기억에 강한 편이라, 할머니 및 돌아가신 증조할머니의 한자까지 알고 있고 지금까지도 잘 지워지지 않는다. 친구의 이름도 잘 외우는 편이라 친구의 전화를 받으면 친구가 되게 고마워한다. 이런 것까지 기억하냐라는 친구의 핀잔도 있긴 하다.


그분 한자의 뜻을 생각해 본다.


군대에서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이름은 "한터, 샘이나, 홍록, 상공, 노엽"이라는 이름이 가장 인상 깊었다. 알고 왔더니 "홍록"이라는 이름의 "록(祿)"자는 해주 오(吳) 씨 항렬의 돌림자로, 돌림자로 인해 이름이 특이해 보이는 것이었다. 우리 팀장님도 "록"자를 돌림자로 쓰고 있다.


내가 검도를 배울 때 갑상에는 소속과 이름을 한자로 썼는데, 그 사람의 한자를 보면서 그 사람의 이미지를 연상하였다. 가령, 이름에 심을 식(植) 자가 들어가면 조금 강한 이미지를 주는데 성격은 거칠지만 얼굴은 잘생겼다거나 등 한자를 보면서, 혼자 쓸데없는 생각들을 이래저래 해 본다.


처형은 치킨 브랜드와 이름이 같아서 개명을 한 사례도 있다. 이름이라는 것이 한자를 아무리 좋은 거 써도 시대 흐름에 맞아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뜻도 좋지만 발음이 편한 지도 생각해 본다.


대학교 시절 중국철학사의 교수님은 한자 중에 "두터울 후(厚)" 자가 이름으로 좋다고 한 기억이 난다. 대학교 시절 검도를 다녔을 때 어떤 여성의 이름은 "지후"였다. 당시 "지후"의 남자친구의 이름은 "승욱"이었는데 갑상에 한자는 두터울 후(厚) 자를 썼는데, 뜻이 좋다는 교수님의 기억을 되새겼다. 이름에 "욱(煜, 旭)" 자의 한자는 무엇일까 찾아봤더니 "빛나다"라는 뜻이 있어서 뜻은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후"자는 목구멍에서 공기가 빠져나가 발음에 힘이 많이 들어가서 보통 사람들은 "우"자로 발음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이름의 "흔"자도 발음이 어려워 "은"으로 발음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름을 자로 쓸 수 있는지도 생각해 봤다.


이름을 자로 쓸 수 있다는 이야기는 이름에 모음이 없는 이름을 말한다. 보통 이름에 "ㅇ(ㅎ포함)"자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김, 박, 최, 신, 민 씨에 이름이 누리, 남두, 민지, 민재, 민진, 새벽 등 성+이름에 모음이 없는 글자가 많이 없다. 내가 생각해도 조금 어이없는 발상인데 이름 뜻에 대한 연구를 한 게 아닌 그냥 겉핥기의 연구 중 좋게 말하면 유니크하고 나쁘게 말하면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가운데 글자의 이름은 뭘까?를 생각한다.



병원에 가면 대기 순서에 1 진료실 "정○보"처럼 가운데 이름이 비어있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 모 병원에서 대기자 중에 정○리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고 대기하는 동안에, 정우리, 정두리... 를 생각하다가 "정수리?"라는 이름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백화점에 가서 포인트를 쌓을 때 본인확인 용으로 점원이 "정자.. 보자.. 님 맞으십니까?"라고 한다. 어른한테 이름을 높여 부르는 말을 쓸 때 "자"라는 글자가 붙는데 젊은 분이 얼마 되지 않은 포인트 쌓을 때 내 이름을 높여 부르니 친절함이 남다르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저는 어렸을 때 성과 이름으로 놀림을 많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친구 어머니 이름 중에 "南철현"이라는 이름이 있었고, 회계사 이름 중에는 "申사용"이라는 이름도 있고 여자회계사 중에는 "금남"이라는 이름도 인상에 많이 남았다. 나의 성은 "원(元)" 씨이고 이름의 가운데 글자는 "수(守)"로 신체는 남성인데 이름은 여성 및 중성적인 이름이라 어릴 때 정말 놀림을 많이 받았다. 나의 이름은 디폴트로 "원수"로 시작한다. 군대에서는 당시 히트 드라마 중 하나 중 "이웃집 웬수"라는 드라마가 있어서 핀잔 들었고 그러고 훈련병 때 원수가 들어왔다고 구박을 받곤 했다. "원"자가 이름 중간이나 마지막에 들어가면 조금 괜찮은데 앞에서 성씨가 "원"이면 "원"자로 시작하는 단어는 모두 별명의 대상이 된다. 참고로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 중에 미인인 선생님이 계셨었는데 그 선생님 앞 존함의 두자는 "마귀"였다.


우리 아들도 중국 성씨라 그 이미지가 강해서 이름의 중간 글자를 조금 독특하게 지었습니다.


대학교 때 교수님이 이름에 'ㅈ'자가 들어가면 무거운 느낌을 준다고 해서 교수님의 두 아들 이름은 "재민이, 정민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내 이름처럼 작명소에서 대충 지은 듯한 이름으로 놀림받는 게 나는 싫어서 우리 아들 이름은 신중을 기해 조금 거짓말 보태서 중학교 시절부터 애들 이름 지을 때까지 정말 많이 고민하였다. 그래서 나는 원(元) 씨의 이미지를 중화시키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였고 장고 끝에 이름 가운데 "새"자를 넣었다. 그런데 "새"자도 발음이 좋지는 않다. 보통 이름의 한글은 "세"자가 많다. 아이 이름 말할 때 발음이 불편한 단점은 있지만 다행히 학교에서 이름 가지고 놀림은 당하고 있지 않아 다행이다. 공교롭게도 아이 중 한 명의 이름과 동네마을이름이 같으나 지금은 그 마을이름이 잘 안 쓰이고 영어이름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 보면 놀림당하는 건 나의 이름 때문이 아닌 아마도 나의 서툰 행동 때문에 더 많은 놀림을 당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이름은 평범한 이름이 좋은 것 같습니다.


나의 편견 중 하나는 "이름이 튀면 다른 사람에게 각인되는 효과는 좋으나 평범하게 묻힐 것도 더 튀어 보이는 효과를 얻는다"라는 생각이 있다. 이름은 튀는데 그 사람의 개성이 밋밋하면 이름으로 약간은 위축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특이한 이름을 가진 회계사가 자기 이름으로 회계사 안되었으면 뭐 될 뻔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이야기는 생각해 보면 특이한 이름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활동하는 사회 내에서 유일무이한 존재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그만큼 이름이 너무 특별하다 보니 ‘그 사람’으로 불리기보다는 ‘이름이 특이한 사람’으로 인식될 수 있는 것 같다. 이것이 긍정적인 특징이 될 수도 있지만, 일부 사람들에게는 부담이 될 여지도 있다.


개명도 생각해 봤어요?


얼마 전 동생이 나한테 형은 풀리는 게 없어서 개명(改名)을 하라고 적극 추천하는데 이름이 바뀐다고 나의 삶이 그렇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동생이라는 놈은 옆에서 형이 불쌍하게 사는 걸 자기 위안 삼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사실은 아버지의 성이 독특해서 나는 평범한 성씨인 어머니의 성을 따르고 싶다는 생각도 잠깐 했으나, 성을 바꾸기 위해서는 성을 바꾸는 사유는 충분하지만 변호사를 고용해야 한다. 직장에서도 이름 가지고 놀림을 당할 줄은 정말 몰랐는데, 회사 차장님은 나에게 중국 성씨라 "중국인"이라고 놀리는데, 이제 퇴사하니 놀릴 사람은 많이 없다는 게 다행이다.


이제 쓸데없는 생각은 조금 줄이겠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메이저리그나 NBA를 보면 서양은 문화적인 배경을 가지고 이름을 짓는 거 같은데 이 글로 인하여 "저분은 부모님이 어떤 의미로 자녀의 이름을 지어주었을까?"라는 생각은 이제 줄이려고 한다. 한자만 좋다고 그 아이가 그러라는 법은 없어서이고 내가 다른 사람 이름 가지고 놀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만날 수 있는 사람도 한정적이 되어서 이름을 굳이 안 외워도 된다. 내가 이름을 잘 외워서 좋은 점은 친구가 연락올 때 친구에게 애정 어린 진심이 있다는 걸 알리는 그 정도이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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