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바라고 있었어요
2026년 1월 중순부터 2026년 3월 말까지 정신없이 보냈다.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주에 한 번 하는데 그 프로를 못 보고 잘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평일이 지나고 고대하던 주말이 다가왔다.
내 머리는 곱슬기 때문인지 머리결 탓인지는 몰라도 어느새 머리카락이 덥수룩해져 있었다. 토요일 오후에 미용실을 예약해 놓고 그날 아침부터 점심까지 집안 일로 바쁘다가 빨래를 하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래서 부랴부랴 빨래를 돌리고 나는 집안 곳곳을 청소하고 있었다. 미용실 가기 10분 전에 빨래가 다 되었다. 나는 빨래를 널지 않고 그냥 미용실에 갈까도 생각했지만 빨래양이 많아서 조금이라도 빨리 널어서 말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초미세 먼지가 최악이지만 그래도 나는 미용실까지 뛰어가면 5분 정도 걸리니 부랴부랴 빨래를 널었다. 아내에게 미용실에 가야 하니 빨래 좀 같이 널어 달라고 미리 도움을 요청하였으나 아내는 내가 빨래를 널 때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화가 났지만 애써 참았다. 왜냐하면 내가 주중에는 집에 일찍 와서 빨래를 못 널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내에게 더 바라면 조금 이상해지는 그런 그림이 문득 그려졌다.
아내가 저번 주말에 건강검진이라고 해서 그 시간에 나는 아이들과 미술학원에 가야 했다. 집에서 조금은 떨어져 있는 미술학원에 아이들을 바래다주고 나는 내가 이사 가기 전 혼자 가서 멍 때렸던 카페에서 카페라떼를 시켰다. 나는 내가 따듯한 카페라떼를 주문한 줄 알았으나 아이스 카페라떼가 나와서 "내가 정신이 많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페에서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으로 주변소음을 완화시키고 책을 폈다. 조금 있다가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으로 전화벨 소리가 울린다. 갑자기 세무조정 대리인이 연락이 와서 소명하라고 한다. 내가 해당 세목을 담당하지 않아서 당황했다. 세무대리인에게 그래도 성의는 보여야 해서, 여기저기 수소문하느라 쉬지도 못하였다.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진다. 편안함의 습격을 완독 하려고 카페로 책을 가져왔으나 마음의 안정이 되지 않는다. 아내가 같이 왔더라면 지금 회사를 갈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러나 건강검진하러 간 사람에게 오라고 할 수도 없고 이따가 회사에 가서 업무를 처리해야 했다.
악순환이 반복된다. 주중에는 회사에서 혼자 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졌고 주말에는 쉴 줄 알았으나 그게 아니었다. 주말에도 500개가 훨씬 넘는 메시지의 단톡방 대응을 할 정도로 회계사는 숫자에 대한 검증을 확실하게 하였다. 이것조차 눈치보며 내가 최대한 대응을 다 하였다. 회계사는 감사 도중 다른 일로 갑자기 기분이 상했나 보다. 시기상 감사가 끝나가는 말미였고 재무제표가 확정이 되려고 하는데 회계사는 나에게 주말에 전화해서 사실을 밝혀내라고 한다.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회사에 가서 새벽 1시까지 자료 만들어서 회계사에게 자료 주고 집으로 왔다. 팀에서는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갑자기 회식을 잡아서 집에 늦게 들어간 적도 많다. 결혼하기 전에는 온전히 쉴 수 있었으나 결혼 후에는 표정관리하면서 쉬어야 하고 집안의 일도 많다. 내가 아내에게 집안일을 안 도와주냐고 따져봤자 나만 이상한 놈이 되어 있을 것이다.
이제 나도 티 내지 않고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다소 연출이 가미된 모습을 취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나 보다. 문득 내가 나를 잃어버리는 기분이 들지만, 감정에 매몰되다 보면 왜곡된 시각이 나를 더 힘들게 할 수 있고 나만의 순간적인 즉흥성이 꼭 옳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사실 내가 집안일에 기여하는 바가 그리 크지는 않으나, 이제는 내 역량을 발휘해 집에서 뭐라도 하는 시늉이라도 내며 노력해 보려 한다.
다음의 시처럼 나를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차라리 죽은 듯이 지내고 싶은데, 자연의 섭리는 억지로 뿌리를 흔들어 깨워 다시 삶을 마주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에게도 봄은 희망이 아니라 '잔인한 깨움' 이 시작되었다. 2026년 1분기 결산이 시작되었다...
T.S. Eliot <황무지(The Waste Land)>
April is the cruel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