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머리는 바삐 움직이지만 효율적이지 못하나 봅니다.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정문에서 역까지 1km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나는 평균 20분 간격으로 오는 열차시간을 맞추기 위해 정말 빨리 걸었다. 그런데 친구가 나의 이런 모습을 보더니 나에게 “이거 너무 비효율적이지 않냐?”는 것이었다. 나는 역까지 15분 걸릴 거리를 12분으로 단축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했으나 지금 돌아보면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일찍 교문을 나서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당시 10대여서 내 체력적으로는 빨리 걸어 시간을 단축할 수는 있어도 시간에 쫓겨 지하철역으로 가면서 맘 졸였던 과정이 정신적으로는 훨씬 피로했기 때문이다.
대학원시절에 논문자격시험을 보기 위해 안간힘을 써서 공부를 하였지만 결과는 좋지 못하였다. 같이 조교를 했던 타분과 후배가 “선배처럼 공부 열심히 하는 사람을 못 봤다.” “석사인데 박사처럼 공부한다”라고 말했다. 그 후배는 평소에 해맑고 발랄하게 학교생활하다가 시험기간이 되면 학부 때 가정교육과를 전공하고 타과 석사과정을 밟았는데도 표정이 심각해지면서 결국에는 모든 과목을 합격하는 시험의 요정이었다. 나는 몰입을 잘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남들이 귀찮아하는 자료수집에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았고 정말 많은 책과 논문을 보았지만 머리에 남는 게 많이 없었다. 몰입해서 입력하고 쏟아내지를 못하니 어디서부터 잘 못 되었는지 하나씩 개념을 되짚어 보는 데만 1년 정도 걸려서 겨우 논문자격시험을 합격할 수 있었다. 그래도 나는 논문자격시험에 합격할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험에 합격을 못하면 한 학기를 날려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모습을 본 지도교수님도 조금은 답답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번 회계감사에는 동료차장님이 다시 돌아오기는 했지만 내가 맡은 회계 쪽에는 별로 도움을 받지 못했다. 동료차장님이 없는 부담 때문에 나는 회사 업무를 미리미리 준비하여 회계처리는 다 해 놓아서 회사의 재무제표를 만드는 데 나 혼자 정말 많은 시간을 들였다. 이번 감사는 나 혼자 회계사 3명을 상대하는 기염을 토하였다. 내가 처음 겪어 보는 일에 대해서 별로 큰일이 아닌데 회계사들이 겁을 많이 주어서 나는 회사에 피해 갈까 봐 머리를 붙잡아 가며 혼자 몸으로 방어를 하였다. 올해 재무제표는 그래도 많이 틀린 게 없어 다행이다. 이제 감사가 마무리될 때 즈음에 회계사는 나에게 내가 열심히 한 거는 알겠는데 전환사채와 상환전환우선주의 회계처리는 자산과 부채에 대한 정리를 안 하고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수익과 비용을 한꺼번에 넣으면 어떻게 하냐고 하였다.
집에서도 아내는 효율성에 되게 민감하다. 아내는 경영학과를 나와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매일 돌 하나하나씩 쌓아서 탑 만드는 성격이라 뭘 해도 서툴다. 나는 자급자족을 추구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집에서 피자를 시켜 먹을 때도 나는 방문포장 30%를 선호하는 편이라 직접 매장을 가서 음식물을 픽업해 온다. 나는 배달을 시켜가면서 내가 가져올 수 있는 음식을 타인의 손을 빌려서까지 먹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사는 동네는 주차가 좋지 못하다. 그래서 연말 선물로 배달음식 상품권 준다고 해서 나는 극구 사양 할 정도로 배달음식을 잘 시켜 먹으려고 하지는 않지만, 가끔 배달음식을 시켜 먹을 때는 배달료를 지불하는 게 내 정신건강에 좋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파트 주차장에서 배달음식을 기다린다. 배달아저씨가 얼른 다른 곳을 가실 수 있도록..
내 뇌에는 효율적으로 생각하는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아 아직도 고전하지만 효율성은 후순위더라도 실수를 줄여나가는 게 1순위라 생각이 든다. 나이 들어서도 핀잔을 받아 부끄럽지만 지식의 체계가 잡혀 흔들리지 않을 때까지 그래도 시간을 많이 들여야 하나보다. 나는 포기할 때도 됐는데 전직을 해서 포기를 할 수 없는 내 애매한 위치가 지속되고 있다. 만약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했다면 너는 민폐를 끼치고 있다고 하고,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박수칠 때 떠나라라는 프레임에는 벗어나기 힘들 것 같다. 어머니의 나이가 70이 되셨는데도 일용직하면서 포기하지 않고 지금도 일하시는 모습을 보며 나는 되는데까지 하다가 내려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