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과 악의 스토리텔링에 갇혀 있는 것 같다.

어려운 회사는 얼른 손절하세요.. 몸만 망가집니다.

by 정훈보

나는 초등학교 때 드라마를 너무 좋아해서 월화, 수목드라마, 특집드라마 및 주말드라마까지 꿰고 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통쾌했던 부분은 아마도 복수극이었던 것 같다. 가난한 집의 자식으로 태어나 자신에게 박대하던 사람들을 복수하고 스스로 일어나는 광경들이 나에게는 아직도 잔상으로 많이 남아 있다. 아이들이 크면서 아이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의외로 선과 악에 대한 부분을 명확하게 하고 있는 부분이 눈에 띄었다.


사필귀정 : 모든 일은 반드시 바르게 돌아갈 것

사필귀정 외에도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천망회회 소이불루 "하늘이 친 그물은 하도 커서 얼른 보기에는 엉성해 보이지만 이 그물에서 빠져나가지 못한다"라고 생각해서 청소년기 이후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선의를 베풀어 타인과의 관계에서 이득을 취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중 고등학교 때 나는 상대방에게 최선의 친절을 다 해서 대했는데도 그 사람은 나한테 왜 그런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상대방으로부터 피드백이 좋지는 않았다. 비굴해 보이겠지만 그래도 마음은 편안하게 학교생활을 위해서 나 자신을 무수히 낮춰가면서까지 학창 시절을 보냈다. 중 고등학교 시절 내 말의 빈도수 1위는 "미안해"였다.


내가 내 나름대로의 선(善)이라는 프레임에 갇혀서 나의 실수나 결점도 선의를 위한 희생이거나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정당화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다. 그 당시에 나는 나 자신의 인간적인 서투름을 만회하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인관계의 리스크를 줄이기에 앞서, 내가 상대에게 얼마나 서툴렀는지를 스스로 인정하고 설득하는 데에만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전화위복 : 재앙이 바뀌어 오히려 좋은 일이 생김.


당시에는 쓰라린 아픔이었지만 오히려 돌아보면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지난날을 돌이켜보곤 한다. 쌍둥이 아들이 어렸을 때는 내 몸과 마음이 온전치 않았지만 지금은 그래도 둘이 의지하면서 잘 지낸다. 그래서 나는 타인의 시선에 민감한 편이고 별의별 이야기를 들었어도 그거에 대해서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는 편이다. 나에게 별의별 이야기를 한 사람의 상처의 잔재는 불쑥불쑥 튀어 오르지만 이제는 잘 흘려보낸다.



저렇게 착한 사람이 젊은 나이에 많이 아프네...


내가 신장이 좋지 않았을 때 아무래도 몸에서 필터 부분이 잘 작동되지 않아 우려가 되어 환우모임카페에 가입하게 되었다. 그런데 의외로 나보다 어린 나이에 신장이 안 좋은 분이 많았다. 질환을 선악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스토리텔링의 글을 우연히 목격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의 질환뿐 아니라 다른 질환도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관점이 아니라 관찰하고 관심을 가져야 하는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질환과 싸우고 있을 경우 멘탈케어 잘하면서 그 질환을 받아들이고 식습관을 개선하고 스트레스를 줄이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함을 느꼈다. 사람이 착해서 주변 환경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무래도 인체에 무리가 가는 것도 일리가 없지는 않지만 그러기에는 몸과 마음이 같이 지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도 선과 악을 나누고 있었다.


법인은 법에서 사람처럼 권리나 의무를 인정해 준 존재로 정의된다.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라는 곳은 이익을 위해서 모인 곳이다. 무의식 중에 나는 선이고 경영진은 그 반대와 가깝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2025년 매출 및 매출원가를 뽑아냈는데, 회사에서 매출보다 매출원가가 더 많이 나와 경영진은 나에게 분석자료를 5개 이상 만들라고 해서 나에게는 이런 경영진의 무분별한 자료요청은 선과는 멀다고 느껴졌다. 나는 이 분석자료를 만들기 위해 2주 동안 씨름하면서 만들었고 기존 자료에 추가에 추가를 더하여 내 본연의 업무는 이 보고자료로 인하여 밀리기 시작하였다. 나의 무의식 중에 오랫동안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으며 이해관계가 상충될 때 나는 선이라는 카드를 집어드는 것 같다.



긴 터널을 지나 회사의 손익은 대표이사에게 보고를 마쳤지만 자료를 만드는 과정은 나에게는 괴로운 시간들이었다. 그래도 나는 회사의 머슴이라서 무리한 경영진의 자료요청을 악으로 치부하기보다는 회사의 체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넓은 마음을 가지고 회사생활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는 먹고 사는 문제라 쉽지 않은 게 아니라 어렵겠지만 말이다.



※ 덧붙임 : 여러 차례 보고를 하면서 느낀 점은 사장님은 추가 수주를 받아 회사가 당장 유지되는지 그리고 자신의 안위에만 혈안이 되어 있고 회사의 원가투입 등을 고안하여 시스템을 구축해서 실시간으로 분석자료를 낼 수 있는 내실을 다질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그러나 회사가 당장 먹고사는데 급급하면 시스템 구축은 답답한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점은 나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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