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을 잘 헤쳐나가 봐야겠다
나의 어릴 적의 2월은 설날이 있어서 그런지 미처 받지 못했던 용돈을 받을 수 있는 날이었다. 아버지는 정규직 선생님이 아니셔서 방학 때는 수당을 제외한 기본급만 들어온다고 하셨다. 생활비 명목으로 돈을 타서 쓰시던 어머니께서는 명절상여가 있기 전의 겨울방학의 삶은 고단했을 것 같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월급통장을 보여준 적이 없고 어머니는 매 달 생활비를 받아서 살아와서 생긴 명절상여도 의미가 없었던 것 같다. 생활비 명목으로 받은 금액으로 설날에 들어가는 비용도 있겠지만, 친가 쪽 식구들의 생일이 다 설 다음에 몰려있어서 챙겨야 할 부분도 있었다.
어린 시절 2월은 집안 행사가 많이 있었다.
작은아버지는 설날 다음 날이 생신이며, 아버지는 정월대보름 전 날이 생신이고, 할머니는 아버지 생일과 불과 6일 후이었기 때문에 어머니와 나는 제사도 지내야 하고 나는 설날에 받은 얼마 되지 않은 용돈으로 작은아버지 생일선물도 샀으며, 할머니 생일에는 며느리가 할머니 생신상을 차려야 한다.
내가 중 고등학교 때에도 어머니는 음식을 손수 집에서 하셔서 설날이 며칠 지나지 않았음에도 할머니 생신이 되면 어머니는 음식을 차리느라 고생을 하셨고 어머니가 만든 음식들로 아버지는 손님과 술판이 벌어진다. 내 정서에는 낮에 술을 먹고 친척들이 만취하는 명절의 문화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또한, 손님이 많이 오다 보니 내가 집에서 앉을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고 나 어릴 때는 술심부름도 되었기 때문에 술을 많이 사 오곤 했다. 어른들이 흥에 겨워 노래를 할 때 젓가락으로 상을 두드리면서 리듬에 맞추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나도 집에서 재미삼아 내 리듬을 넣어서 젓가락으로 상을 비트를 쪼개다가 아버지에게 핀잔을 들었다. 또한, 그 당시에는 집안 대소사 행사 시, 음식을 만드는 아침부터 손님이 가시고 뒷정리를 마친 밤까지 내게 그 시간들을 때우기에는 너무나 지루한 시간들이었다.
이제 드디어 집으로 간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일을 마치고 돌아와 심신이 고단한 어머니에게 말도 걸지 못했다. 아버지는 만취되기 일쑤였고, 나와 어머니는 양손에 아버지가 나중에 집에서 술안주를 하신다고 음식을 싸 가자고 하셔서, 두 손 가득 검은 봉지에 음식을 싸들고 피곤한 눈을 비비며 밤늦게 지하철을 탔고, 당시에는 환승할인이 되지 않아 도착역부터 집까지 20여 분을 걸어서 집에 왔다. 나에게 제사와 명절이 그렇게 좋은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나는 어머니에게 명절에 제사 및 음식을 하지 말자고 제안하였다.
그러나 어머니의 의견은 "제사는 간소하게 지내되 명절에 같이 식사할 음식은 두 아들네 집에서 각각 음식을 해와서 먹자"라고 하신다. 취지는 좋으나 내게 2월은 정말 바쁜 달 중의 하나이다. 보통 설날 연휴 직후에 회계감사가 잡혀 있어 나는 설날 전날까지도 집에 일찍 들어가 본 적이 없다. 설날 전날에 설날 가족끼리 먹을 음식준비를 위해 장을 봐야 하는데 이것마저도 나에게는 버겁다. 설날 전에는 내가 하도 일을 많이 해서 정신이 몽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설날 때는 아침 일찍 본가에 들렀다가 3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바로 처가로 간다. 처갓집에서도 점심만 먹고 집으로 바로 와서 나는 모자란 잠만 잔다.
회사 업무도 잔인하긴 마찬가지다
그런데 올해는 영업이익은커녕 매출보다 원가가 10억 가량 높아 경영진이 난리가 났으며 경영진은 토요일 나를 나오게 하면서까지 나에게 추가적으로 상세한 분석을 지시해서 나는 지금까지도 손익분석자료를 만들고 있다. 이번에도 원가 10억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 한다. 설상가상으로 회사는 세무조사까지 겹쳤으며 회사의 클라우드 서버가 날아가서 현재 공용디스크를 쓸 수 없다.
나는 이번에 처음으로 세무조사를 받아보는데 6명의 조사관들은 회사에 대한 질문지와 대응되는 자료를 요구한다. 회사는 조사관의 질문지를 받아보면 조사관들은 세무조사 과정에서 회사의 취약한 부분만 날카롭게 파고든다. 경영진에서 한 일들에 대해서 조사관들의 질문지를 받아보면 나는 위에서 지시했다고 이야기할 수가 없다. 어떻게든 설득자료를 만들어서 대응을 해야 한다. 우리가 지원해 준 외주인원의 식대도 한도가 있는 접대비로 돌리겠다고 한다. 조곤조곤 물어보면서 타겟팅을 잡는 조사관을 보니 회사도 몸으로 막는 건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올해도 무사히 터널을 지나길...
나에게 2월은 언제나 긴 터널을 걷는 것과 같았다. 설날의 용돈 뒤에 숨겨진 어머니의 한숨을 알게 된 지금, 나는 비로소 고단한 의미의 2월을 또 살고 있다. 차가운 조사관의 시선과 매서운 경영 실적 속에서도 계절은 흐를 것이고, 이 고단한 달이 지나면 1분기 결산이 끝나는 5월까지 바쁠 것 같다. 비록 몸으로 막아내는 이 현실이 버겁고 외로울지라도, 끝내 집으로 돌아가 잠을 청했던 어머니처럼 나 또한 이 고단한 계절을 묵묵히 견뎌내야 할 것이다. 또한, 퇴근 후 아들이 자고 있는 쓸쓸한 집에서 어머니에게 끝내 건네지 못했던 그 위로를 이제는 거울 속의 나 자신에게 조용히 건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