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 전투화는 내 운명
본투비 군인인가. “그만 닦아! 너 무좀 걸린다!“ 딸이 무좀 걸릴까 봐 진심 어린 아빠의 걱정이었다. 매일 아침 부녀의 귀여운 실랑이었다. 5살때 부터 매일 새벽 5시가 되면 현관앞에 자리잡고 앉아 아버지의 전투화를윤기가 날 때까지 닦았다. 유치원 가서도 낮잠은 꼭 자야하는 잠도 많은 내가 유일하게 말똥말똥한 시간.
으악! 유치원생 일과시작이 아빠의 전투화 닦기라니. 글을 쓰며 스스로가 웃기고 왜그랬나 싶다. 콩 심은데 콩 난다고 군인아빠를 닮아 나는 유독 전투화를 좋아했다.
아빠가 퇴근하면 맞지도 않는 전투화를 신고 홀랑 나가버렸다. 그걸 신고있노라면 유명했던 세일러문 구두를 내팽겨칠만큼 좋았다.아빠는 예쁜 신발 놔두고 왜 자꾸 본인의 오래된 전투화를 신냐며 걱정하였다. 그렇게 유년시절을 보낸던 중 오래된 관사를 리모델링하다 시멘트감염으로 피부염이 생겼다. 전투화를 못 신을 정도로 발은 심각해졌고,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유명한 피부과부터 전국을 다녔지만 극심한 통증에 10년넘게 피부과약을 먹어야 했다.
결국 슬프게도 그렇게 난 전투화를 신지 못하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애틋한 관계가 되었다. 대학생이 되었지만 여전히 낫지 않는 발. 간지러움과 이후에 동반되는 통증, 피부의 상처들 잠 못 드는 밤의 연속이었다. 독하디독한 피부약을 다 먹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목초액도 사보고 민간요법도 의지해봤지만 잠시뿐이었다. 직업상 이사를 다녀야하는 본인 때문에 피부염이 생겨 고생하는 것 같다며 슬퍼하는 부모님을 볼때면 10년간 나아질 기미가 없는 내 발이 미웠다. 밉다!
아프지 않았더라면 미안해하지 않았을 텐데. 부모님 잘못이 아닌데. 하지만 운명이라는게 있는 걸까. 우연히 대학교모집 요강에 뜬 군인의 모습을 보며 지원서를 덜컥 내버렸다. 어린 시절부터 군인이 존경스럽고 가장 멋진 직업이라며 온동네방네 전투화를 신고 돌아다닌 그때의 내가, 진짜 군인이 되어보면 어떨까 싶었다. 발이 아픈건 참을 수 있을 듯 하였다. 그저 멋져보여서가 아닌, 자신과 가정을 지키기도 어려운 일인데 부대원을 알뜰살뜰 챙기고 자신의 젊음을 헌신하는 나의 아버지를 닮고 싶었다.
그렇게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며 군인의 딸로 태어나 2녀 중 막내인 나는 그렇게 군대에 갔다. 믿지 못할만큼 10년 넘게 괴롭히던 피부염은 전투화를 신기 시작하며 더 이상 아프지도, 약을 먹지 않아도 되었다. 이제와 가족들이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지만 “너가 전투화를 못 신어서 아팠나 봐-!!신기하네 그거!” 군생활을 했던 나의 첫 이야기는 이렇게시작되었다. 첫사랑도 아니고 전투화는 내 운명이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