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 전역하고 싶습니다.
"전역하고 싶습니다. 정말 나가고 싶습니다." 첫 면담에서, 그것도 나보다 8살이 많았던 부대원 A에게 들었던 말이다. 그의 나이 30대. 그리고 나의 나이 20대 중반. 나보다 사회생활, 군생활도 더 길게 한 인원에게 갓 임관한 내가 뭐라 이야기해줘야 할까 정말 난감했다. 이미 반 이상의 복무를 해왔고, 복무의지가 단 1% 남지 않은 얼굴을 보고 있으면 안타까움과 아쉬움과 동시에 여러 상황을 고려해야만 하는 지휘자로써 답답함이 몰려왔다.
사회초년생이었고, 함께하는 부대원들에 대한 책임감, 애착이 강한 시기였기에 그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밤낮을 그리고 몇 주를 고민했다. 누군가의 인생이 나의 이야기로 바뀔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있었지만 당시에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나와 군생활을 하게 된 A에게 진심을 다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나의 함께하는 부대원은 무조건 건강하게 전역시키자는 것이 내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입대한 이유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작정 내 방식대로 시작했다. 부모님 그리고 주변인 모두가 포기했던 그의 전역의지를 내가 바꿔보겠다는 생각으로. A가 거부감이 생기지 않도록 일상생활의 대화부터 시작하여 그의 성격을 꼼꼼하게 파악하여 잘하고 좋아하는 일부터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하였다. 그리고 가장 신경 썼던 것은 '대화 그리고 진심을 다해 듣기'였다. 일방적인 대화가 아니라 흥미 느끼는 것들, 그리고 더 나아가 그가 고민하는 것들에 진심을 다해 귀 기울였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을까... 아직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A가 준 벚꽃책갈피를 처음 받던 그날, 그리고 전역하던 그날. 내 첫 군생활 가장 어렵고, 힘든 발걸음이었지만 그 결과는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로 감격스러웠다. 누군가에겐 그저 지나가는 에피소드일지 몰라도, 나에겐 나의 그 작은 노력들이 모여 누군가에게 위안이 되고 더 나아가 결정을 바꾸는데 조금이나마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 A의 변하려는 노력은 이로 말할 것도 없다.
서른이 되어 그의 나이가 되어보니 대학 졸업도, 취직도, 그리고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는 현재와 미래, 수많은 스트레스 속에서 방황했을 그의 마음이 조금 더 이해가 간다. 얼마나 지치고, 두려웠을지 그래서 회피하고 싶었던 현실들도. 전역 후에도 건강히 전역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 고맙다며 매년 연락 주던 그의 따뜻한 마음이 고마운 밤이다. 함께 근무했던 모든 부대원들 고맙다! 모두의 이름을 일일이 적을 순 없지만, 너희랑 근무할 수 있었던 게 나의 군생활에 있어 가장 큰 행복이자 추억이다!
나 역시 해보지 않았더라면 못 느껴봤을 감정과 느낌이기에 여전히 나에게 있어 한없이 소중한 추억이다. 애틋한 부대원을 위해 고민하고 오늘도 어김없이 노력하고 있을 모든 군인분들에게 감사하고 존경스럽다고 말하고 싶다. 자신과 가족만을 위해 쓰기도 부족하고 소중한 그 시간들을.. 누군가를 위해 아낌없이 내어주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