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더 라이더, 경계 위를 달리는 삶

[제1장: 낯선 땅에 딥다이브, 나만의 궤적을 그리다]

<타지키스탄의 시골학교 아동권리 축구대회 지원 행사 참석>

1-1. 궤도를 이탈해 도달한 온도 : 도움을 주는 손에서 받는 손으로

반복되는 일상의 궤도 위를 무심히 달리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회사의 인트라넷 게시판에 뜬 ‘해외파견 직원 모집’ 공고가 내 시선을 붙들었다. 지금 돌아보면 무엇에 홀린 듯한 순간이었지만, 당시의 나는 그저 새로운 공기가 간절했을 뿐이다. 대단한 야망이나 거창한 인류애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저 내 인생의 한 조각, 딱 1년 정도를 낯선 땅에서 개발협력이라는 가치 있는 일에 써보고 싶다는 막연한 동경이었다. 그것이 내 삶의 귀한 자산이 되고, 좁았던 시야를 넓혀줄 단단한 이정표가 되리라는 예감뿐이었다.


치열한 서류 심사와 면접, 그리고 긴장된 기다림 끝에 내게 처음 제안된 행선지는 이집트였다. 피라미드와 나일강, 누구나 머릿속에 선명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문명의 발상지. 나는 흔쾌히 그 제안에 동의했고, 익숙한 일상 속에서 나일강의 노을을 상상하며 마음의 갈피를 잡아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운명은 정해진 항로를 무심하게 틀어버렸다. 출국 준비가 한창이던 어느 오후, 인사팀에서 걸려 온 한 통의 전화가 정적을 깼다. “타지키스탄으로 파견국를 변경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그곳에 사람이 너무나 급히 필요해서요.”


타지키스탄(Tajikistan). 생소했다.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조차 낯설어 몇 번을 되뇌어야 했다. 중앙아시아 어딘가라는 짐작만 있을 뿐, 그 땅의 형상도, 그곳 사람들이 내뱉는 언어의 질감도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든 나라는 존재가 필요하다면 가겠다는 젊은 날의 무모한 의욕이었을까, 아니면 예정에 없던 부름에 응답하고 싶었던 묘한 본능이었을까.


그날 이후, 나의 밤은 검색창과의 처절한 씨름으로 채워졌다. 하지만 정보의 바다라 불리는 인터넷조차 타지키스탄 앞에서는 자꾸만 말라붙었다. 검색 결과는 처참할 정도로 빈약했다. 단편적인 통계 수치나 90년대 내전의 상흔이 담긴 빛바랜 사진 몇 장, 그리고 '세계의 지붕 파미르'라는 추상적인 수식어가 전부였다. 주변에 소식을 전하자 돌아오는 건 축하보다 당혹감이 섞인 질문들이었다. “거기 파키스탄 오타 아니야? 이슬람 국가면 지금 위험한 거 아냐?” “이름도 못 들어본 나라에 왜 굳이 사서 고생을 하러 가? 이집트는 어쩌고?”


무지와 편견이 뒤섞인 주변의 걱정들은 내 안의 초조함을 자꾸만 부추겼다. 등대 하나 없는 망망대해로 조그만 뗏목을 밀어 넣는 기분이었다. 나는 실낱같은 희망을 잡듯, 현지에서 2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오신 지부장님께 이메일을 보냈다. 내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어떤 비상약과 물건들을 챙겨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 낯선 땅을 밟아야 하는지... 떨리는 마음을 담아 질문들을 빼곡히 적어 내려갔다.

며칠 뒤 도착한 답장은 허무할 정도로 짧고 명쾌했다.


“그냥 편하게 오세요.”


그 한 문장이 화면에 띄워진 순간, 나는 안도하기보다 오히려 묘한 압박감을 느꼈다. 20년의 세월을 그 땅에서 버텨낸 노병의 여유였을까.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신참에게 ‘편하게 오라’는 말은, 세상에서 가장 풀기 어려운 숙제처럼 다가왔다. 그 짧은 문장이 품고 있을 수많은 행간—척박한 환경, 언어의 장벽, 그리고 예측 불가능한 현장의 돌발 상황들—을 나는 도저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밤새 지도를 확대하고 축소하기를 반복하며, 나는 갈색으로 뒤덮인 타지키스탄의 산맥들을 응시했다. 그때는 정말 몰랐다. 그 1년의 파견이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넘어, 나의 삶 전체를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을 줄은. 지도 위에서조차 잘 보이지 않던 그 작은 나라가, 나의 30대와 40대를 통째로 삼켜버릴 운명의 장소가 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나는 그렇게 안개 자욱한 항로의 출발선에서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