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더 라이더, 경계 위를 달리는 삶

[제1장: 낯선 땅에 딥다이브, 나만의 궤적을 그리다]


<2011년 2월 타지키스탄 수도 돔베차 사거리 버스 정류장, 초짜 개발협력 활동가>


1-2. 도움을 받는 용기 : 주는 손보다 어려운 받는 손의 겸손


대학 졸업과 동시에 시작된 NGO 활동가로서의 삶은 늘 ‘주는 입장’에 서는 법을 가르쳤다. 한국에서의 4년은 매끄럽게 돌아가는 시스템 안에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유능하게 사업을 관리하며 수혜자들에게 최선의 결과물을 전달하는 ‘전문성’을 증명해내야 했던 시간이었다. 나는 당연하게도 내가 타지키스탄에 가는 이유가 그들에게 무언가 선진적인 시스템을 전수하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내 지식과 에너지를 나누어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두샨베에 발을 내디딘 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아, 나의 그 오만한 전제는 바닥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타지키스탄의 거칠고 투박한 현실 앞에서 나는 대학을 갓 졸업한 사회초년생보다도 무력한 존재였다. 도움을 주러 왔다는 당당한 포부는 간데없고, 당장 오늘 저녁을 해결할 장을 보는 일부터 현지 기사에게 목적지를 설명하는 일까지 어느 것 하나 스스로 해낼 수 없었다. 나는 그제야 생경하지만 묵직한 사실 하나를 마주했다. 누군가를 ‘돕는 일’을 업으로 삼아왔던 나에게, 정작 타인의 ‘도움을 받는 일’은 그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유연함과 용기를 요구한다는 점이었다.


사실 우리는 누군가를 도울 때 묘한 우월감을 동반하곤 한다. 그것이 의도된 것이 아닐지라도, '줄 것이 있는 자'가 '필요한 자'에게 베푸는 행위에는 보이지 않는 위계가 작동한다. 하지만 현지에 던져진 나는 그 위계의 가장 밑바닥으로 수직 낙하했다. 시장에서 감자 1kg을 사기 위해 상인의 표정을 살피고, 길을 잃어 낯선 이의 소매를 붙잡고 간절한 눈빛을 보내야 했던 순간들. 그 과정에서 내가 느낀 것은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나의 존재가 타인의 호의 없이는 한시도 유지될 수 없다는 처절한 ‘의존성’에 대한 자각이었다.


사무실 밖으로 나가는 순간, 나는 모든 권위를 박탈당한 채 거대한 미로에 던져진 아이가 되었다. 집을 구하는 복잡한 계약 과정에서 사기를 당하지 않도록 곁을 지켜준 현지 직원, 시장의 들쑥날쑥한 물가 속에서 내 바구니에 슬쩍 사과 몇 알을 더 얹어주던 아주머니, 도무지 해독 불가능한 러시아어 사이에서 내 서툰 손짓을 끝까지 기다려준 이웃들. 그들의 세밀한 도움이 없었다면 나의 하루는 매번 좌절로 끝났을 것이다.


나는 그제야 도움을 받는 이의 서툰 마음을, 주는 사람의 시혜적인 태도가 아닌 받는 사람의 절실한 겸손함으로 배우고 있었다. "내가 이만큼을 해줬으니 너희는 고마워해야 해"라는 생각은 얼마나 위험하고 얕은 오만이었던가. 오히려 이 땅의 공기가 나를 받아주고, 이 땅의 사람들이 나에게 길을 내어주지 않았다면 나의 활동은 시작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돕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역설적인 진리를 나는 매일 아침 문 밖을 나서며 깨달았다.


퇴근 후의 풍경도 나를 낮추는 훈련의 연장이었다. 한국 직장인의 훈장 같았던 야근이 사라진 두샨베의 사무실은 오후 5시 30분이면 투명한 정적이 흘렀다. 한국의 속도감에 길들여진 내게 갑자기 주어진 이 ‘어마어마한 자유’는 축복이라기보다 오히려 감당하기 힘든 무게였다. 사무실 옆 작은 주택으로 돌아가는 길, 밤마다 경비원이 풀어놓은 사나운 개 한 마리에 가슴 졸이며 현지인 경비원에게 길을 터달라고 간곡히 부탁해야 했던 그 길 위에서, 나는 내가 알던 세계의 자부심과 서서히 작별하고 있었다.


시내를 걸을 때면 어김없이 들려오던 "니하오"라는 인사와 이방인을 향한 경계 섞인 시선들. 그 낯선 시선들 사이에서 나는 비로소 ‘진짜 현장’에 딥다이브(Deep-dive)했음을 실감했다. 나의 유능함이 아니라 나의 부족함을 인정할 때 비로소 타지키스탄 사람들의 진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도움을 주는 손보다 도움을 받는 손이 더 따뜻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겸손한 연결이 활동가의 진짜 시작임을 나는 그해 겨울, 두샨베의 차가운 흙먼지 속에서 온몸으로 배우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이 땅에 준 것보다, 이 땅이 나에게 준 가르침이 훨씬 컸음을 인정하는 고백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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