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너머 AI전환(AX): 직무 정의와 현업 주도

기술 도입에 앞서 사람의 변화가 먼저 되어야 한다

by 허경필


세계 최대 IT 박람회인 CES는 올해의 핵심 키워드로 혁신가들의 등장(Innovators Show Up)을 선정했다. 이는 AI의 잠재력을 탐색하던 시기를 지나 기술을 현장에 몰입시켜 구체적인 성과를 증명해야 하는 실행기에 접어들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변화의 물결은 전 산업과 직무로 확산되고 있으며, HR의 핵심 과업도 AI 전환(AX)이라는 커다란 범주 안에서 일하는 방식의 재설계와 구성원의 역량 재편으로 구체화되는 추세다.


그러나 거대한 흐름과는 대조적으로 실질적인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MIT 미디어랩 Project NANDA에서 2025년 8월 18일 발간한 <The GenAI Divide: State of AI in Business 2025>에 따르면 기업들은 300~400억 달러(약 50~60조 원) 규모의 천문학적 투자를 집행하고도 95%는 뚜렷한 성과를 얻지 못했다. 실패의 핵심 원인은 AI 모델의 품질이 아닌 도구와 조직 간의 학습격차(The learning Gap)에 있다. 범용 도구인 Chat GPT는 개인에게는 유효할 수 있으나 기업 고유의 워크플로우에는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 AI 교육 자문 현장에서도 많은 HRD 담당자들은 기술 교육을 활발히 진행했음에도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고충을 자주 말한다. 2023년부터 생성형 AI를 활용한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나 업무 자동화 교육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나, 대부분 단발성 교육에 그치며 실제 업무 현장에는 스며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는 AI 전환을 단순한 기술 학습의 관점으로만 바라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기존의 DX 또는 IT 팀 주도의 전환은 전사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대형 프로젝트 중심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진정한 AI 전환은 구성원들이 스스로 혁신 의지를 갖고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이루어내며, 지속적으로 생산성을 높이고 성과를 도출해 내는 혁신 문화를 구축하는 데 있다. 따라서 HR은 이러한 변화를 이끄는 방향을 제시하고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결국 지속 가능한 변화와 조직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두 가지 차원의 접근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직무기술서에 기반하여 일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 그 첫 번째이며, 구성원이 주도적으로 혁신을 이어가는 문화적 토양을 구축하는 것이 두 번째다. 이번 글에서는 그중 직무기술서 기반으로 일하는 방식의 근본적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1. AI와 함께하는 일하는 방식의 변화

1-1. 기술 학습이 아닌 문제 정의가 먼저다

조직 내부의 실질적인 변화를 견인하기 위해서는 수행 중인 과업이 무엇인지 명확히 규정하는 직무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도구의 사용법을 익히는 것보다 어떤 과업에 기술을 적용할지 판단하는 안목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실제 업무 현장에서 체감하는 효율화는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수준과 같은 기술적 숙련도 단계에서 결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직무기술서에 기반하여 전체 과업을 정밀하게 검토하고, 그중 효율화가 시급한 과업과 AI로 대체 가능한 영역을 식별하는 작업이 기술 학습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기술 도입 이전에 과업의 성격을 규정하고 문제를 정의하는 과정이 혁신의 시작점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1-2. 사례 I: 포스코의 HR Intelligent 체계 구축

포스코는 2026년까지 일하는 방식의 파괴적 혁신을 달성하기 위해 인사 조직이 주도하는 두 가지 트랙의 전략을 가동하고 있다. 본부는 전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과제를, 현업 부서는 업무 방식 개선을 위한 개별 과제를 추진한다.


첫 번째 트랙은 본부 단위의 전용 에이전트 개발이다. 인사 부서는 전사적 파급력이 높은 과제를 선정하고 시스템을 구축하기에 앞서 외부 컨설팅사와 협업하여 직무 분석 및 재설계 과정을 거친다. 직무의 본질과 과업의 구조를 새롭게 정의한 이후 포스코-DX와 협업하여 에이전트를 개발하고 사내 시스템에 적용하는 방식이다.


두 번째 트랙은 현업 주도의 소규모 AI 개발이다. 인재창조원이 주도하여 현업 부서가 업무 방식 개선을 위한 중점 추진 과제를 선정하고 업무를 재정의하는 워크숍을 선행한다. 기술적 구현 가능성을 따지기 전에 해당 업무가 왜 필요한지, 어떻게 재구조화할 것인지를 논의함으로써 혁신의 명분을 확보한다. 구성원은 현장에서 직접 과제를 발굴하고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성과를 창출하는 과정을 경험한다. 이 과정을 통해 조직 내부에는 성공 경험에 기반한 자신감이 형성된다. 이는 외부 컨설팅이나 일회성 교육으로는 확보하기 어려운 내재화된 혁신 역량을 조직 안에 정착시키는 지속적인 동력이 된다.


1-3. 사례 II: 화승코퍼레이션의 조직 재설계 4단계

산업용 고무 제품을 제조하는 화승코퍼레이션은 부서 및 기능별 과업 분석을 통한 업무 효율화와 기능 R&R 정립을 인사 부문의 2026년 핵심 과제로 설정했다. 업무 표준화부터 역량 진단, 적정 인력 도출, 조직 재설계에 이르는 장기적 변화의 기점으로 직무 분석과 업무 재설계를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직무 분석을 통해 기존 12,000개의 전체 과업을 정제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분석 결과 표준 과업은 194개로 압축되었으며, 과업의 성격과 기능적 특성을 고려하여 가치사슬 기반의 114개 직렬 및 56개 직무 수준이 도출되었다. 정제된 업무 데이터를 바탕으로 계열사 간 중복 업무와 본원적 기능에 무관한 비핵심 업무, 그리고 AI 대체가 가능한 단순 정형 업무를 명확히 구분했다.

image.png


2. AI 도입 전 문제 정의를 위한 프레임워크

앞선 포스코와 화승코퍼레이션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술 도입이라는 화두 이전에 직무 분석이라는 기초 공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직무에 대한 정교한 정의 없이 도입된 기술은 업무의 파편화만을 초래할 뿐이지만, 분석을 거친 직무는 AI가 안착하여 실질적인 효율을 낼 수 있는 명확한 자리를 제공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AI 도입을 통한 문제 정의는 조직 내 역할에 따라 이원화된 접근이 필요하다. 팀장 이상의 리더 레벨과 실무진 레벨에서 각각 다른 관점으로 과업을 조망하고 문제를 진단할 때 비로소 공백 없는 업무 혁신이 가능해진다.


2-1. 리더 레벨: 가치사슬(Value Chain) 중심의 시각 확보

리더 레벨에서는 부서나 팀 전체의 가치사슬을 중심으로 문제를 진단하는 과정이 요구된다. 업무 프로세스의 전 과정을 시각화하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병목 현상과 해결 방안으로서의 기술 도입 필요성을 검토한다.


특히 AX를 시작하는 단계의 조직에서 이러한 리더의 참여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실무진이 현업에서 주도적으로 일하는 방식을 개편하고 AI 기술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리더의 강력한 스폰서십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리더 스스로가 가치사슬 분석을 통해 AI 도입의 필요성과 지속적인 혁신 활동의 중요성을 체득할 때 비로소 조직 차원의 변화 동력이 확보된다.

image.png (리더) 문제정의 프레임워크 예시

2-2. 실무 레벨: 직무기술서 기반의 과업 평가와 전략 수립

실무진 레벨에서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변화를 위해 직무기술서에 명시된 개별 과업을 세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나열된 세부 과업을 다음의 세 가지 지표를 기준으로 평가하고, 그 결과에 따라 네 가지 대응 전략을 수립한다.


핵심 평가 지표

지표 1. 전략적 중요도 (Strategic Value) : 해당 과업이 조직의 목표 달성이나 성과 창출에 얼마나 직접적으로 기여하는지 측정한다. 핵심 성과와 직결될수록 높은 점수를 부여하며, 단순 지원이나 유지 업무는 낮게 평가한다.

지표 2. 업무의 정형성 및 반복성 (Standardization & Frequency) : 업무 프로세스가 명확한 매뉴얼에 따라 반복되는지, 데이터화가 가능한지를 확인한다. 규칙 기반의 반복 업무일수록 AI 적합도가 높다고 판단한다.

지표 3. 대인 상호작용 및 판단 필요성 (Human Touch & Judgment) : 공감, 설득, 윤리적 판단, 혹은 고도의 창의적 의사결정이 필요한 영역인지를 평가한다. 대인 접점이 많고 주관적 판단이 필수적인 업무는 사람의 역할이 강조되는 영역이다.


과업 분류에 따른 4대 대응 전략

Type A: 자동화(Automate). 정형성이 높고 대인 접점이 낮은 업무로 AI 및 자동화 도입의 최우선 대상이다. 단순 반복 업무에서 인력을 해방하여 효율성을 극대화한다.

Type B: 제거/통합(Eliminate). 전략적 가치가 낮고 정형성도 낮은 업무다. 불필요한 행정 절차를 제거하고 프로세스를 간소화한다.

Type C: 조정(Delegate). 중요도는 낮으나 사람이 수행해야 하는 업무다. 지원 인력이나 외부 자원을 활용하여 역할과 책임을 재배치한다.

Type D: 핵심 역량(Focus). 중요도가 높고 판단이 필요한 영역이다. 사람이 최종 결정을 내리는 과정을 보조하는 AI를 개발하여 인적 역량을 강화한다.


image.png (실무진) 문제정의 프레임워크 예시


3. AX는 기술이 아닌 사람의 변화

AI 전환의 성패는 어떤 기술을 선택하느냐가 아니라, 그 기술이 들어앉을 자리를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 직무기술서를 바탕으로 과업의 성격을 분류하는 작업은 지루해 보일 수 있으나, 이것이 생략된 기술 도입은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과 같다.


과업의 정리는 기술이 해결할 수 있는 영역과 인간이 반드시 지켜내야 할 핵심 가치를 구분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직무 정의라는 기초 공사가 완료되었을 때 비로소 조직은 기술을 도구가 아닌 동료로 맞이할 준비를 마치게 된다.

작가의 이전글[보상] 공정한 보상제도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