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편한 세상은?
내가 대학교에 입학할 무렵이었다. 할머니와 엄마의 옥신각신한 대화가 방문 너머 거실에 앉은 나에게 까지 들린다.
“엄마. 이게 아이고 번호 누르고 초록색 이거 눌러야 전화가 되는기라.”
“야야 뭣이 이래 어렵노”
“엄마 할 수 있다. 자, 한 번만 더 해보자.”
“차라 안 할 끼다.”
“엄마 혼자 있는데 연락 안 되면 자식들 얼마나 놀래는지 아나? 밖에 있을 때도 연락되고 엄마도 송미랑 영기랑 손주들 전화도 하고 그라믄 좋다 아이가. 한 번만 더 해보자.”
“그래? 그런 기가? 그럼 한 번만 더 해 보까? 천천히 알키도.”
연신 어렵다고 하시는 할머니에게 휴대전화 사용법을 알려주던 엄마 모습이 생각났다. 휴대전화가 할머니에게는 신문물이었다. 많이 어려워하셨지만 할머니는 잘 배우셔서 혼자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할머니는 노인요양원 들어가실 때까지 매주 일요일 저녁에 전화를 걸어오셨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잔소리도 하시고, 손주들에게 세상사는 걱정과 함께 따뜻한 위로를 전해주셨다. 휴대전화 너머에서 들리던 손주들을 향한 기도소리가 바로 어제같이 생생하다. 할머니는 신문물을 배우셔서 신문물답게 사용하셨다.
지난주 토요일이었다. 남편과 엄마가 리모컨을 사이에 두고 한참을 진지하게 대화 중이다.
“장모님 하얀 칸을 요기 세모버튼을 눌러서 옮겨보세요.”
“응? 이래 하면 되는 기가?”
“아이고 잘하셨어요. 다음에는 음성검색을 해볼게요. 파란 버튼 누르고 유튜브 김호중 노래, 이렇게 이야기해보세요.”
“이거 누르고, 김. 호. 중 야야 벌써 꺼져 뿌따.”
“버튼을 중간에 떼지 말고 꼭 눌러보세요.”
“가만히 있어 보자. 이래 누르고 김호중 노래 틀어줘.”
스마트텔레비전 검색이 성공했다. 텔레비전에 엄마가 좋아하는 트로트 가수가 나와서 노래한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노래에 엄마가 소녀처럼 배시시 웃으며 기분 좋아하신다. 약 30분간 스마트텔레비전 사용을 배우느라 진땀을 뺐다. 그리고 엄청나게 발전하셨다. 오늘 하루 배우느라 애쓰게 한 이 스마트텔레비전은 엄마 생신을 맞이하여 우리 부부가 선물로 사 드렸다. 유튜브를 큰 화면으로 볼 수 있다며 무척 기뻐하셨다. 그런데 사용법을 배우시는데 예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금방 배우실 줄 알았는데, 엄마에게 스마트텔레비전의 입문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오래전 휴대전화 처음 배우시던 우리 할머니 나이가 되어버린 엄마. 나한테는 너무 쉬운 일인데, 엄마는 리모컨 버튼 몇 번 누르는 방법도 신경을 곤두세워서 외우고 공부하셔야 한다.
사람들은 세상이 쉬워졌다고 말한다. 편리해졌다고도 말한다. 그런데 편리한 세상을 누리려면 오히려 뭔가를 또 열심히 배워야 한다. 천천히 익히고 배우는 발달장애인과 어르신에게는 오히려 불편한 세상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배우는 우리 엄마를 보니. 딱 이십 년 전 할머니가 생각난다. 엄마도 할머니처럼 신문물을 잘 배우셨으니 이제는 즐겁게 누리시면 좋겠다. 발달장애인도, 어르신도 골머리 썩히면서 배우지 않아도 되는 진짜 편리한 세상은 언제 오려나. 어서 빨리 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