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운이 완연한 5월의 오후, 마지막 슬라이드를 넘기고 수업을 마무리하자, 학생들은 하나둘 자리를 정리하며 일어섰다. 20년간의 사회복지사 경험을 바탕으로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한 지 일 년, 나는 아직도 '교수님'이라는 호칭이 어색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교실 뒤편에서 누군가 머뭇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 수업에서 가장 연세가 많은 김선미(가명) 할머니였다. 69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항상 앞자리에 앉아 꼼꼼히 필기를 하며, 때로는 젊은 학생들보다 더 열정적으로 수업을 참여했다.
"선상님..."
선미 할머니가 쭈뼛쭈뼛 내게 다가왔다. 목소리는 작았지만 눈빛에는 무언가 전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수줍게 웃으며 내게 하얀 봉지를 내밀었다.
"선상님. 이걸 좋아하실랑가 몰라."
"선미님, 이거 뭘까요?" 나는 궁금함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할머니는 거친 손으로 머리카락을 정돈하며 더욱 수줍어하셨다. 그 손등에는 세월의 흔적이 깊게 패여 있었다. 농사일과 가사노동으로 굳은살이 박힌 손마디마디는 마치 오랜 세월의 연대기처럼 보였다.
"나가, 별 재주는 없는디. 두부는 맛나게 하요. 나가 만든 두부 맛보면 다른건 밍숭하다고 하데요. 선상님 너무너무 친절하시고 잘가르켜주시니께 내 마음을 담아 만들어 봐쏘."
봉지를 열자 뽀얀 두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정성과 사랑이 담긴 수제 두부의 윤기가 인상적이었다. 선미 할머니의 검고 거친 손과 대비되는 뽀얀하고 부드러운 두부를 바라보며, 나는 감동에 목이 메었다.
"직접 만드신 거예요? 와, 정말 대단하세요."
"아이고, 뭐가 대단혀요. 평생 해온 일인디." 할머니는 손사래를 치셨지만, 그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묻어났다.
사실 김영란법 때문에 학생으로부터 선물을 받는 일이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이 두부 한 모에 담긴 정성과 감사의 마음은 어떤 법조문보다 더 무게가 있었다. 거절한다면 오히려 그 진심을 무시하는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선미님. 오늘 저녁에 정말 맛있게 먹을게요."
할머니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깊게 패인 주름 사이로 스미는 그 웃음에는 평생 살아온 시간의 지혜와 따스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강의실을 나서는 선미 할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교육의 본질에 대해 생각했다.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서로의 삶에 작은 변화와 감동을 주고받는 것. 그것이야말로 교육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봉지 속 두부를 들고 연구실로 돌아가는 내 발걸음은 유난히 가벼웠다. 69세의 나이에도 배움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은 선미 할머니의 모습과 그 거친 손으로 정성껏 빚은 두부는, 올해 스승의 날 중 가장 값진 선물이 되었다. 그 어떤 화려한 선물도 이 소박한 두부에 담긴 진심을 대신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