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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미 Apr 21. 2024

온 우주가 빌어준 기운으로, 파이팅!


아침부터 비가 오락가락했다. 이런 날은  꿉꿉함과 낮은 기압으로 내가 일하는 장애인 복지시설 사랑누리는 유난히 어렵다. 발달장애와 뇌전증 장애를 중복으로 가진 5명의 이용장애인은 이런 날씨에 뇌전증 발작이 있을 가능성이 매우 커진다. 그래서 지켜보느라 온종일 살얼음판이다.      


원내가 소란하다. 민은 씨가 엄마가 보고 싶어 “엄마” 외친다. 목소리도 우렁차고, 비가 오는 날이라 소리가 안으로 울려서, 청각 자극이 있는 재운 씨가 괴로워한다. 어제 효과를 보았던 방법, 좋아하는 ‘천 개의 바람이 되어’를 틀어 내 핸드폰을 재운 씨 손에 쥐여 주니 조금씩 안정된다.     


어제 직원들이 모두 쉬는 법정공휴일이어서, 혼자서 낮 근무와 밤 근무를 24시간 연속으로 했다. 퇴근해야 하는데, 원내 상황이 어려우니 쉬이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는다. 연속 근무 때문에 체력이 떨어져 오늘 너무 힘들다고 생각했다.    

 

“엄마 엄마” 외치던 민은 씨가 점심 밥상을 엎었다. 날아오르는 반찬 그릇을 보는데, 꼭 슬로모션 같았다. 와장창 그릇들이 깨지는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연속근무에 수면 부족이라 나도 정신이 멍한가 보다. 어찌어찌 치우고 핸드폰 캘린더 일정을 살핀다. 뭔가 이상하다. 그런데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오래 생각할 겨를이 없다. 당장은 엄마가 너무 보고 싶은 민은 씨를 토닥인다. 민은 씨가 잠이 오나 보다. 함께 누워서 토닥토닥하였다. 방 밖 소란스러운 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들리지 않았다.      


따르릉 핸드폰 벨 소리에 퍼뜩 눈떠졌다. 자다 받는 것이 들킬세라 큼 큼 소리 내어 목소리를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네. 강사님 주차는 하셨나요?. 주차할 곳이 많지 않아서 헤매실 것 같아서요.”

순간 머릿속이 벼락 맞은 듯했다. 가만가만 오늘이 며칠이지? 캘린더에 일정이 없었는데…. 어제와 오늘 재운 씨에게 핸드폰을 맡기던 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헉. 어쩌지? 어쩌지? 아 출발부터 해야겠다.’ 

“제가 아직 가고 있어요. 도착해서 다시 전화하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가방만 들고 달려 차에 도착했다.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거는데,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대전지역 5개 복지관이 모여서 하는 연합교육인데, 어쩌면 좋으냐 심정은 그냥 딱 울고 싶었다. 

‘점심 먹고 알아차렸다면 좋았을 텐데, 아니, 아니 핸드폰을 재운 씨에게 건네지 말걸. ’

점심 후 순간 잠이 들었던 내가, 일정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내가, 너무나 한심스럽고 후회가 되었다. 

교육하는 곳까지 30분, 남은 시간 29분. 정말 최선을 다해서 운전했다. 적색신호가 걸려서 내비게이션 안내에서 1분이 늘었다 줄었다 할 때마다 내 심박수도 빨라졌다 안정되었다.      


교육장 앞. 

“기관 앞에 주차하시면 안 돼요. 교육받으러 오셨어요?” 

인사를 건네는 선생님께 다짜고짜 차 열쇠를 쥐여 주었다. 

“선생님. 인권교육 강사입니다. 시간이 다 되어 죄송하지만, 이동 주차 부탁드리겠습니다.”

전력을 다해 3층으로 뛰었다.      

다행이다. 관장님 인사 말씀이 길다. 사진 촬영도 해야 한다고 한다. 아싸! 화장실 다녀올 시간이 있겠구나.      

강의 끝나고 내게 전화해 주신 선생님께 고맙다고 인사 전화했다.

수화기 너머 선생님이 껄껄 웃으며, 말씀하셨다. 

“온 우주가 권송미 선생님을 도왔네요. 내가 오늘 못 가게 되어서, 선생님께 오늘 못 뵈어 아쉽다고 인사하려고 전화한 거였는데…. 강의 잘하셨지요? 다음에 또 만나요. ”     

그렇다 온 우주가 도왔다. 그 순간 전화가 온 것도, 신호가 딱딱 맞아서 30분 걸리는 길을 27분 만에 주파한 것도. 도착한 순간, 이동 주차로 도와준 선생님도. 마지막으로 평소보다 조금 더 길었다고 하는 관장님의 당부 말씀까지도, 온 우주가 나를 도운 날이다.


다시 생각하는 그것만으로도 아찔하다.      

길고 긴 하루가 끝난다. 온 우주가 나를 도와주었으니 힘내서 더 열심히 살아가야겠다. 아자 아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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