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없는 소풍도시락

by 송미

할머니를 떠올리면 마음 한편이 따뜻해진다. 작은 손으로 나를 쓰다듬던 기억,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 밤늦도록 들려주시던 옛날이야기까지. 하지만 그 많은 추억 사이로 마치 오래된 앨범 속에서 색이 바랜 사진 한 장이 유달리 눈에 띄듯 유독 선명하게 떠오르는 하나의 상처가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봄날, 교실은 소풍 준비로 들썩였다. 친구들과 나는 며칠 전부터 무엇을 가져갈지 수다를 떨었고, 소풍 전날은 잠이 오지 않을 만큼 가슴이 두근거렸다. 학교 뒷산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신났다. 푸른 하늘 아래 펼쳐진 초록 잔디밭에서 우리는 뛰어다녔다. 보물찾기에서는 숨겨진 쪽지를 찾겠다고 나무 뒤며 돌멩이 밑이며 샅샅이 뒤졌고, 수건돌리기에서는 친구 뒤로 몰래 다가가 수건을 떨어뜨리며 깔깔거렸다.


드디어 점심시간이 왔다. 아이들은 저마다 알록달록한 도시락통을 꺼내며 자랑하기 바빴다. 나도 가방을 열어 소중히 간직했던 보물 같은 간식들을 하나씩 꺼냈다. 평소에는 엄두도 못 내던 과자 봉지가 바스락거렸고, 시원한 음료수가 손끝을 차갑게 만들었다. 할머니께서 새벽부터 삶아주신 달걀도 하얀 껍질을 반짝이며 나를 반겼다.

이제 도시락만 남았다. 기대에 찬 마음으로 뚜껑에 손을 댔다. 찰칵, 소리와 함께 열린 도시락통 안에서 나를 맞이한 건 다른 친구들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순간 세상이 멈춘 것 같았다. 누군가 보기라도 할까 봐 황급히 뚜껑을 닫았지만, 이미 늦었다. 옆자리 친구가 궁금한 듯 고개를 기울이고 있었고, 나는 얼굴이 화끈거리며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날의 햇살은 왜 더 따갑게 느껴졌을까. 친구들의 웃음소리는 왜 크게 느껴졌을까. 할머니의 사랑이 담긴 도시락이었건만, 그 순간만큼은 나를 움츠러들게 만드는 무거운 짐이 되고 말았다. 점심을 굶은 채 소풍의 나머지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속상한 마음만이 가슴 한편에 돌덩이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도시락통을 싱크대에 내던졌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펑펑 울었다. 내가 그토록 기대했던 도시락은 김밥이었다. 그 시절 김밥은 소풍 가는 날에만 누리는 특별한 호사였다. 나는 당연히 소풍에는 김밥 도시락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도, 책에서도, 친구들 이야기에서도 소풍은 곧 김밥이었으니까.

그런데 내 도시락통 안에는 하얀 쌀밥과 볶음김치, 멸치볶음, 달걀 입힌 분홍빛 소시지가 들어있을 뿐이었다.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반찬들이 나를 맞았다. 어린 나는 김밥이 아니라는 사실만으로 창피하고 속상했다.


사실 속상한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지난주 막냇삼촌의 소풍 도시락은 분명 김밥이었기 때문이다. 할머니께서 새벽같이 일어나 김밥을 만드시는 동안, 나는 그 곁에서 김밥 꽁지를 야금야금 주워 먹었으니 틀림없었다. 그 김밥은 얼마나 맛있었던지! 내 소풍에도 김밥을 또 먹을 생각에 더 신났었다.

사실, 도시락이 김밥이 아니라서 창피했던 걸까? 아니다. 어린 나는 김밥 아닌 도시락이 어쩐지 차별처럼 느껴졌다. 내가 할머니의 아들이 아니라서, 내가 손녀라서 김밥 없는 도시락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어린 내 마음에는 그런 서운함이 들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 철없는 생각이었다. 할머니께서 정성껏 만들어주셨을 텐데도 그 어린 날에는 김밥 없는 도시락이 그렇게나 창피하고 속상했다. 마치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가리키며 웃는 것 같았고, 나만 다른 세계에 사는 것 같았다. 내가 차별받는 것 같아 서럽게 여겼다.

최근 인권강의를 하면서 '차별의 경험 이야기 나누기'를 한다. 그때면 나는 김밥 없는 도시락 이야기를 꺼낸다. 차별은 이렇게 오래도록 아프게 기억되고, 속상하게 마음에 남는다고 말한다. 그날의 작은 도시락 하나가 한 아이의 마음에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겼는지, 이야기하면, 듣는이 모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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