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인 어머니를 대신하여 외할머니가 나를 키우셨다. 할머니 품에서 맡았던 비누 냄새, 거친 손으로 쓸어주시던 내 머리카락, 잠들기 전 들려주시던 옛날이야기. 모든 순간이 내 어린시절을 기억하게하는 소중한 보물이되었다.
일곱 살 생일 아침이었다. 나는 텔레비전에서 본 것처럼 케이크 위 초를 끄며 소원을 빌어보고 싶었다. 색깔 풍선이 있고 친구가 모여 노래를 부르는 그런 생일을 꿈꿨다.
"할머니, 케이크는 언제 나와요?"
할머니는 부엌에서 뭔가를 끓이고 계셨다.
"우리 손녀 생일상 차려줄게."
할머니가 내어주신 밥상에는 김치, 멸치볶음, 계란말이가 놓여 있었다. 평소 먹던 소박한 우리 집 밥상 그대로였다. 평소와 다른 것 하나만 꼽아본다면, 밥상 한가운데 커다란 사발에 담긴 미역국과 산처럼 높이 쌓인 밥이 있었다. 일곱 살 아이가 먹기에는 너무 큰 어른 대접이었다.
"할머니, 케이크 없어요? 초도 없고..."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할머니는 내 앞에 앉아 말씀하셨다.
"우리 예쁜이, 생일날 밥 다 먹어야 평생 굶지 않는다. 할머니가 정성 들여 끊인 미역국이다."
"싫어요! 나는 케이크 먹고 싶어요!"
할머니 눈에 서운함이 스쳤지만 목소리는 단호했다.
"생일 밥상은 남기면 안 된다. 어서 먹어라."
나는 훌쩍훌쩍 울며 미역국에 밥을 말아먹었다. 미역국에 내 눈물이 섞여 더욱 짠맛이났다.
사십 대 중반, 어느 생일 아침이다. 남편이 정성스레 차린 상을 내민다. 커다란 사발에 담긴 미역국과 수북이 담긴 밥. 꼭 할머니가 차려주시던 그 모습이다.
"와, 십오 년 동안 끓이더니 미역국이 정말 맛있어졌네!"
엄지 척 올리며 칭찬하는 내게 남편이 환하게 웃는다. 그리고 무슨 비밀인양 조용히 이야기한다.
"사실은 할머니 부탁이야."
"할머니 부탁?"
"결혼할 때 할머니가 따로 부르시더라고. 우리 손녀 생일에는 꼭 미역국 끓여주고 밥 든든히 먹이라고 하셨어. 몇 번을 당부하셨지."
가슴이 뭉클해진다. 우리 할머니는 생일날 밥 잘 먹어야 평생 굶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으셨다. 그 믿음으로 일곱 살 나에게 고봉밥과 대접 미역국을 주셨던 거다.
할머니 당부 덕분에 이번 생일도 나는 고봉밥과 대접 가득한 미역국을 먹는다. 할머니 소원처럼 나는 굶는 일 없이 오늘도 행복한 생일을 맞는다.
우리 할머니가 그리운 생일 아침이다. 그때 할머니가 내게 준 건 단순한 미역국이 아니었다. 그건 첫 손녀를 축복하는 마음이었고, 평생 굶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도였다. 가난해도 포기하지 않는 사랑이었다.
미역국 한 그릇에 담긴 할머니 마음을 이제야 제대로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