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 서정주는 서정시의 정수리에 위치한 한국 문단의 큰 별이었다. 그의 언어 부림이 너무도 경이로워 ‘큰 시인들 다 합쳐도 미당 하나만 못하다’는 평단의 찬사를 호사롭게 받았다. 그의 시 ‘자화상’을 거칠었던 20대 대통령선거가 끝난 직후 다시 읽는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미당의 시 ‘자화상’ 속 변명 궁색
방역 실패에 사과도 없는 당국
정치방역 음모론만 더 키울 뿐
집단면역 위한 의도가 아니길
미당이 불과 스물세 살에 쓴 ‘자화상’에는 질곡의 삶이 녹아 있다. ‘팔 할이 바람’이라는 구절에서는 나약한 인간 본성과 한계가 오버랩된다. 그는 친일시와 종군시를 썼고 또 한때는 군사정권에 대한 찬양 발언도 했다. 60여 년의 창작활동 중에 무려 천여 편의 시를 발표하고 한때는 10여 편의 시가 교과서에 실렸지만 이제는 사라졌다. 그의 이름을 딴 문학제가 환대받지 못하는 이유도 이 같은 과오에 기인할 것이다. 이에 대해 딱히 시시비비를 가릴 생각은 없다. 역사는 진실로서, 시는 운율로서 평가받고 사람들 속에 자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당은 생전에 지난 행적에 대해 수차례 사과했다. “독립할 줄 몰랐다. 일제 속에 묻혀 마냥 지낼 줄 알았다”라고 했다. 그 암흑의 시대에 생존을 위해 나약한 선택을 한 그의 처신은 못내 아쉽다. 의연했던 시인 이육사와 윤동주가 있었기에 더더욱 그 아쉬움은 크다.
순국한 애국지사들의 강직하고 숭고한 삶이 있는 반면, 인간 본성 밑면 그대로 살아남기 위해 현실과 타협했던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 시절 반듯함을 지탱하는 삶을 살았노라 자신할 이는 또 그 얼마나 있을까. 시로서 애국 애족을 했던 서정주였더라면 더없이 좋았겠지만, 그의 호 미당이 ‘아직 덜된 사람’이라는 의미라니 그를 시인으로서만 이해하는 것이 한결 편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그의 주옥같은 시어에 시적 허용을 넘어 역사적 관용까지 해줄 요량은 아니다.
아내와 사별 후, 통절하던 미당은 서너 달 뒤, 아내를 따라 떠났다. 돌이켜 보면 서정주의 삶은 사내로서 지극히 평범한 범부였을 것이다. 그러하기에 그의 시에서 애국과 혁명을 읽을 순 없는 노릇이다. 어쩌면 질곡의 현대사를 살아오면서 우리는 요란한 미사여구와 혁명적 구호에 취해 서정주를 호기롭게 평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당처럼 우리 민초들의 삶을 좌우하는 것도 언제나 어쩔 도리 없는 바람이었다. 민초들에겐 늘 절박했던 것은 이념이 아닌 먹고사는 문제이며 생존이었다. 그러하기에 미당의 ‘바람’은 불가항력적이며 넘어 서기 힘든 현실의 벽이었을 것이다. 애써 이해하려니 그랬다.
질퍽하다는 표현이 과하지 않을 선거가 끝난 후, 오만과 내로남불이 원하지도 않는 사람의 등을 떠미는 ‘팔 할의 바람’으로 우리 사회는 새로운 리더를 소환했다. 그리고 이 지긋지긋한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오랜 거리두기로 켜켜이 쌓여가는 각자도생이 이 암울한 바이러스 시대의 관습이 되지 않도록 승자든 패자든 실존이 모나지 않는 조율의 용기를 내어야 한다. 그 용기가 정점 시기와 규모 예측이 크게 빗나가고 확진자가 폭증하는데도 그 누구도 책임지려 하거나 사과하지 않는 현 방역상황에 대한 바른 태도다.
꼼꼼하지 않아도 어눌해도 희망은 암담한 현실의 초월이다. 시대에 대한 거대한 절망은 오히려 담대한 용기를 준다. 코로나로 피폐해지고 이념으로 포획된 이분법적 한국 사회의 현실을 너무 무섭게 재현할 이유는 없다. 그렇다고 아득한 현실을 너무 아름답게 그리는 것 역시도 부질없다. 서정시가 아닌 다음에야 현재의 시간을 실증적으로 살아 내야 할 의무가 우리 모두에게 있다. 저마다의 눈으로 자신이 재단되지만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라는 ‘자화상’ 속, 미당의 고백이 그릇된 행적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없듯이 대선을 앞두고 느슨해진 방역 조치가 예상을 빗나간 결과라며 뉘우치지 않는 이들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혹여 표심을 득하려 했다던 ‘정치방역’의 음모론만 키울 뿐이다.
작금의 상황을 보면 혹여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이 모진 대가를 치르면서 집단면역을 이루려는 불온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집단면역은 바람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지난 과오에 대한 변명의 도구로도 궁색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