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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를 뜻하는 라틴어, ‘메멘토 모리’는 로마 공화정 시절의 개선식에서 유래되었다. 승리에 도취한 개선장군에게 너무 우쭐대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였다. 신이 아닌 인간일 뿐임을 잊지 말고 공손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경각시키는 것이다. 동양권에도 이와 비슷한 말로‘화무십일홍’과‘권불십년’있다. 내재한 의미는 모두가 인생에 대한 겸손과 성찰이다. 

19세기 초, 가까운 이들의 모습을‘메멘토 모리’라 칭하며 사진을 찍어두는 게 유행이었다. 당시, 사진촬영은 가격이 매우 비싸 차마 생전에는 엄두를 못 내고, 죽음에 이르고서야 그를 기억하기 위해서 찍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억의 유실에 대비한 박제가 무슨 의미가 있으랴. 남은 자들의 삶의 호흡은 또다시 반복되는 것을. 

인간의 한계는 죽음에 대한 어쩔 도리 없는 숙명 앞에서도 늘 이기적이고 탐욕적이 된다. 그러함에도 우리 주변에는 멀쩡하게 세상을 살다 어느 날 예고 없이 찾아든  질환으로 고난의 삶을 지탱하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제아무리 현대의학이 발달했어도 병환은 여전히 불편하고 곤혹스러운 손님이다. 가뜩이나 비좁은 일상을 비집고 들어선 모진 병은 평온했던 존재를 어둑한 암전에 가둬놓는다. 아프기 전과 후의 삶의 풍경은 마치 긴 터널, 안과 밖의 명암 차이만큼 갈라져 있다. 인생의 우기가 도래한 것이다. 그 누가 육신의 질환 앞에서 초연할 수 있단 말인가. 

언젠가 어느 글에서 존재에 대한 온전한 성찰의 시간을 허락해 주는 게 통증이라 썼지만 큰 병 앞에서 그런 내공을 보이기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터이다. 누구나 가늠하기 힘들었던 죽음이란 것이 간결해진 병마의 무게로 다가서면 일상은 무겁고 서늘해진다. 이런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가족의 삶도 무너진다. 돌보지 못한 건강의 연쇄작용은 가족 공동체를 위협하기도 한다. 무책임한 일이다.

누구나가 생계를 위해 살다 보면 제 한 몸 간수하는 것조차 지난한 문제임을 알고는 있지만 부지불식간에 찾아온 병마와 의연하게 대비한 채 맞서는 일은 여간해서 쉽지 않다. 고단한 삶을 살면서도 일상적 건강수칙을 지켜내는 일이 그 무엇보다 가치 있는 인생이라는 주변의 조언들도 귀에 딱지처럼 달라붙은 도덕경 같기 때문이다. 하긴 의사인 나도 평상시 건강을 주체하지 못하면 이 또한 의사 자격이 없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고된 의료현장에서의 노동은 쉼마저 허락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핑계가 익숙하지 않던가. 

우리 대부분은 건강 악화로 평화로웠던 일상의 자유를 구속당한 후에야 건강의 가치를 온전하게 받아들인다. 한 치 앞을 못 보는 인간의 우매하고 처연한 일이기에 참으로 딱한 일이다. 본디 건강은 육신의 회복을 전제로 나빠지는 것이 아닌 돌보지 못한 필연적 결과이다. 모두가 예외 없다. 

속절없이 찾아온 병마로 인해 희망 없는 날에도 삶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저마다의 삶의 채색은 미완이 된다. 직업으로서 타인의 몸을 돌보았지만 정작 자신의 몸을 돌보는 일에 익숙하지 않았던 나도 오십 고개를 훌쩍 넘어가면 언제나 푸른 날들이라 우겨가며 살아 낸 일상은 아니었는지 성찰해 본다. 하긴 윽박지른다고 건강이라는 놈이 말을 듣지는 않을 터이니.

비가 오지 않는 땅은 종국에는 사막이 된다. 건강 검진에 기초한 사실적 판단보다는 밑도 끝도 없는 희망에 자신의 건강을 낙관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병이 들면 일상에 무력감을 느끼기 쉽다. 또 스스로를 존중하는 자존감도 쇠약해진다. 이런 비루한 상황과 맞닥뜨리기 전에 일상의 건강수칙을 지켜내는 태도가 자존감의 근원이 되어야 한다.  

대책 없는 건강 낙관주의로 뻣뻣이 고개를 치켜든 오만한 오늘이라면‘메멘토 모리’를 상기하자. 톨스토이의“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처럼 욕망의 잔재들이 다시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건강의 소중함과 초연하게 마주하게 될 것이다. 평화 연구자 정희진의 말처럼 “삶이란 죽은 자의 망막에 맺힌 나의 시간이다”아, 인생은 속절없이 짧다. ‘메멘토 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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