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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중요할까

지방에서 올라온 환자는 아픈 이야기보다 하소연을 풀어냈다. 긴 병에 지친 환자는 사는 곳에서 여러 병원을 다녔지만 여전히 코로 숨을 쉬기 어렵다며 지역의료의 결핍을 원망했다. 처음 간 병원에서의 치료 기간을 물었다.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다. 관찰 후 다양한 처치로 증상의 호전을 기대하기엔 짧은 시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주 오래전 강원도에서의 군의관 시절, 축농증으로 힘겨워하는 병사들도 그랬다. 군 병원에 대한 불신 탓이 컸겠지만 “서울로 가야 될까요”를 늘 되묻던 기억이 떠올랐다. 축농증은 제법 긴 호흡이 필요한 치료이기에 늘 대답은 ‘굳이’였다. 만성적 질환이 아니고서야 일상적 생활 수칙을 지키며 처방된 약만으로도 경과는 나아지기 십상이다.



의·정 주장 반은 맞고 반은 틀려
의료개혁, 내용적 논쟁은 부재
필수과 책임질 대학만 증원해야
의사 증원 숫자 집착하지 않아야





지방에 있는 환자들은 지역의료에 대한 불안 속에 서울 큰 병원의 의료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희망을 갖는다. 수십 년이 지난 상황에서도 그 정서는 크게 달라져 있진 않아 보인다. 의료환경을 따지고 보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지방의 좋은 병원도 많으나 이른바 필수 의료의 공백도 엄연한 현실이다.


좋은 의사가 되어 있진 못해도 되려고 하는 태도이기에 환자의 사연을 마냥 듣다가 한없이 밀려있는 대기 환자들을 배려 못 하기 일쑤이다. 현대 의료 환경에서 공감 어린 감성 진료의 지난함은 대기 환자의 숫자와 연동된다. 통증의 호소이든 하소연이든 듣지 않고 어찌 공감 진료가 가능하겠는가. 서울 그리고 수도권 병원들은 모두가 매한가지일 것이다. 수도권 집중화로 인한 과잉 현상은 어디 의료뿐이겠는가.


존경해 마지않는 의사 장기려의 삶은 어김없이 인술과 사람이었다. 척박한 산업 고도화 사회를 살며 편익에 취해 사라져가는 건 어쩔 도리 없지만 지켜야 할 생명의 가치는 부둥켜안아야 함을 일깨운 삶이었다. 개인으로서 장기려 박사의 인술은 제한적이었다. 사람이 못하면 국가가 나서야 한다. 시민의 생명을 존중하는 것도 아픈 이들을 돌보는 것도 국가의 역할이지만 우리는 너무 오랜 기간 민간 부분에 그 역할을 위임해왔다. 지금의 의료대란이 그 방증이다. 그러다 보니 수도권과 지방으로 확연히 나뉜 대한민국의 현실 속에 의료도 공적 서비스의 가치는 흐릿해지고 점차 상품이 되었다. 그 책임이 온전히 의사 탓이던가. 정권교체기마다 부실하기 짝이 없는 의료개혁은 합리적 방안으로 나아가질 못했고 정부도 의사도 그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지 않은가.


의사 증원에 대한 옳고 그름의 찬반과는 별개로 의료개혁에 대한 내용적 논쟁이 부재되어 있는 작금의 현실은 심히 개탄스럽다. 무엇이 중요한 논쟁이 되어야 하는지 길을 잃어가고 있다. 결국 의대증원 2000명을 선포하고 나선 정부와 더더욱 적대적으로 돌아선 의사 집단 사이에서, 지방 소멸·고령화 시대에 봉착한 보건의료 구조를 재편하기 위한 혁신의 길은 미로가 되고 있다.


이번 증원으로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그곳에서 의사를 만나게 될까? 단정하기 어렵다. 정부가 의과대학별로 정원을 배정하기 전에 간과해선 안 될 현실이 있었다. 지역 의대에 정원을 주면 수련은 서울과 수도권 등에 있는 병원에서 한다. 대규모의 의대 입학 정원 확대만으로는 열악한 지역의료에 도움이 되긴커녕 오히려 서울에 있는 대형병원에 인력을 공급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충분히 검토되었어야 했다. 지역 의대 졸업생이 지역에서 양질의 수련을 받은 뒤 머물 수 있는 인프라 확보가 없는 증원만으로 의료개혁이 가능할까.


지역의 필수 의료 문제를 책임지겠다는 대학만이 정원을 받아가는 가치 부여의 방식으로 의료개혁의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그러나 의료개혁의 배는 산으로 가고 있다. 단순히 지역 의대별로 수를 배분하는 현재의 정부안으로는 오히려 수도권 대형병원의 쏠림 현상과 모두가 염려하는 의료 시장주의를 가속화할 가능성이 크다.


누구나가 예외 없이 의지와 다르게 흘러가는 분열은 마음 곳곳에 상처를 남긴다. 욕을 듣더라도 의사로서의 사명감을 가진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 국민의 더 나은 의료접근성을 확장하기 위해 의정 간 대화는 멈추지 않아야 한다. 정부도 기득권이라는 프레임으로 의사들의 마음속 상처를 규정해서는 안 된다. 전공에 따른 의사 소득의 양극화도 성난 심정의 근간임을 이해해야 한다.


만고의 진리처럼 단순히 의대 정원만 늘린다고 필수·지역의료가 강화되긴 어렵다. ‘어떻게’가 더 중요하다. 지역사회와 공공의료에 대한 필수 교육과정과 지역 의대의 낙후된 강의실과 실습 장비를 확충하는 재정 지원의 세심한 설계가 먼저다.


대한민국에서 의정 간의 극한 대립은 이제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의정 간의 사회적 갈등 비용은 속절없이 소비되었다. 덧난 상처에 새살은 돋지 않았다. 이제 무엇이 중요한지를 논의해야 한다. 의사 증원의 숫자에만 의사도 정부도 집착하지 않기를 소망해 본다.

안태환 의학박사·이비인후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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