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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환의 건강 프레쉬] 의사 불신의 시대

의사와 환자 사이의 불신이 극심한 시대에 의사라는 직업으로 살고 있다. 서점 판매대에는 근거조차 희박한 의료계의 여성 혐오를 다룬 르포르타주 ‘의사는 왜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가’가 팔리고 있고, 보기에도 섬뜩한 ‘의사에게 살해당하지 않는 47가지 방법’과 같은 책들은 출간 몇 해가 지나도 부단히 읽히고 있다. 의사와 병원에 대한 불신은 미세먼지처럼 날이 갈수록 확산일로에 놓여 있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환자와 의사는 같은 적을 두고 상호 협력하는 존재이다. 의료 서비스의 본령이 그렇다. 일상을 막아선 질병이라는 단일 된 적을 두고 상호보완과 협력은커녕 의사와 환자가 불신과 분열로 치닫는다면 질병의 치료는 요원하다. 모두에게 고약한 상황인 것이다. 



의대에 입학하고 의사로서 30여 년을 살아오며 환자로부터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믿음을 받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환자로부터 신뢰받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당연한 목표는 우리 의료 시스템 상에서는 간단치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병의원 수익의 근간을 이루는 행위별수가제는 의사와 환자 사이에 이해관계가 불일치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차후 이 부분에 관한 글을 쓸 기회가 있을 것이다.



돌아보면 오늘날의 의사에 대한 불신의 시작점은 사회적 대혼란을 겪었던 의약분업과 몇 번의 의사 파업에 있었을 것이다.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이기주의적 행태를 일삼는다는 세간의 비난은 국민들 시각에서는 당연한 비판이었다. 그러나 의사로서 엄청난 상처와 자존감을 상실케 한 근거 없는 비난도 득세했다. “선거에 뽑을 사람이 없더라도 덜 나쁜 사람을 뽑는 것이 좋은 투표”라는 정치적 격언이 극단적인 비유일지라도 의사 또한 마찬가지이다. 좋은 의사, 사람의 향기가 나는 의사, 아픈 이들을 치료하는 것이 삶의 원동력인 의사가 아직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지난 2016년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발간한 ‘우리나라 국민의 공중보건 위험 인식 조사와 정책 활용 방안에 대한 기반연구’ 보고서에는 보건의료직군 중 의사직군이 가장 낮은 신뢰도를 나타냈다. 이에 반해 유럽의 경우, 의사를 향한 신뢰 수준이 불신비율의 두 배가 넘는다. 우리와 정 반대의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어쩌다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인지 가슴이 답답해진다.



의사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면 의료 소송이 자연스레 증가하게 된다. 늘어난 의료 소송만큼이나 의사에 대한 사회적 불신도 확산된다. 의료소송에서 문제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의사는 불필요한 검사를 하는 방어적 진료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는 건강보험 재정 악화는 물론이려니와 의료 분쟁이 많이 생기는 특정 전공과목 수련에 대한 젊은 의사들의 기피 현상을 야기한다. 종국에는 특정 과목의 의사 부족으로 제때 진료 받지 못하는 의료 사고를 잉태하게 된다. 의사와 환자 그 누구에게도 이득이 될 것 없는 악순환의 고리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행위별수가제에 대한 선진적 재검토가 필요하다. 나아가 의사와 환자가 상호 존중하는 문화에 대해선 일부에서 벌어지는 바람직하지 않은 의료행태에 대한 의사사회의 자정노력과 환자 친화적인 의료 서비스 강화가 선행돼야 한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의사를 신뢰하는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아픈 이들은 모든 것이 다급하고 서운하다. 환자의 불만을 보듬는 것도 의사로서의 내공이다.



의사에 대한 환자의 신뢰는 증상이 있는데도 병을 키우는 어리석음을 범할 확률을 줄여준다. 의사를 믿는 마음이 사회적으로 확장되면 모든 질병을 충분히 사전 예방하고 적기에 치료해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 그것이 바로 건강사회의 바로미터가 된다.



모든 것들의 불신의 시대에 살며 생명을 다루는 의사만큼은 믿을 수 있다는 국민적 신뢰는 대한민국의 존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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