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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한 국가들의 코로나 백신 독점과 멀어지는 집단면역

[안태환의 의창(醫窓)] 우려하던 대로 백신의 양극화는 현실이 되었다. 미국과 유럽 등 소위 먹고살 만한 나라들이 코로나19 백신 확보를 위해 ‘백신 자국 우선주의’를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 백신 생산 허브인 인도마저 자국 내 확진자가 늘고 있다며 국내 수요 우선 원칙을 선언했다. 아프리카를 위시한 제3세계 국가들의 백신 기근은 더더욱 심화될 것이다. 우리도 희망의 접종을 벚꽃에서 시작하여 국화가 피는 날에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겠다던 계획이 멀어지는 듯 싶다.



코로나19는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를 넘어 선지 오래되었다. 지금도 확산은 진행 중이다. 지구촌 인류의 백신 연대가 절실하다. 그러나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다. 과거 신종인플루엔자 팬데믹 당시에도 그랬다. 부유한 국가들이 백신을 독점했다. 그보다 더 심각한 코로나19 상황에서는 말할 나위도 없다.



지금처럼 백신 평등의 환경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라면, 선진국을 중심으로 하는 야만의 ‘백신 이기주의’는 더더욱 횡행할 것은 자명하다. 백신 평등의 도덕시험에 응하지 않는 나라들이 속출하는 이상 인류의 공존은 불가하다. 백신 이기주의에 대응하여 세계보건기구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하지만 그들은 무기력하다.



여름까지 우리 정부가 확보한 백신 물량은 890여만 명 분이다. 나머지 300만 명분은 2분기에 공급받기로 예정된 노바백스, 모더나, 얀센 등에서 충족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모더나는 여전히 협상이 진행 중이며 백신 원료 수급에 노바벡스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기에 더해 당초 계획과 달리 얀센도 50만 명분 미만으로 공급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이미 공급됐어야 할 될 코백스 퍼실리티 제공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도 공급이 늦춰지고 있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기 힘든 명백한 사실 하나. 코로나19가 종식되려면 세계가 집단면역을 달성해야 한다. 집단 구성원의 70% 이상이 감염병에 대한 면역을 갖게 돼 질병이 더 이상 퍼지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특정 국가가 내부 집단면역을 이뤄도 별반 소용이 없다. 기존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이 변이종에 대한 면역력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 어떤 개별 국가도 집단면역을 이룰 수 있는 상태에 도달하지 않았다. 특정 국가가 집단면역을 달성한다 해도 다른 나라에서 변이종이 생기면 별 의미가 없다. 나라 전체의 국경을 완전히 닫는 일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 쇄국정책 만으로는 코로나19 바이러스를 가둬둘 수 없다. 자국 이기주의에 함몰되어 나 홀로 백신이 의미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미 인류는 그러한 학습을 체험했다.



코로나19가 폭주를 계속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은 세계 각국의 백신 보급률을 높이는 것이다. 그래야 코로나19 확산과 변이종 발생 가능성이 줄어든다. 현재 극빈국은 물론이려니와 개발도상국에서도 백신은 태부족이다. 애초에 많은 물량을 확보하지 못해서다. 세계보건기구의 극빈국 지원 백신사업 만으로는 아프리카, 아시아, 중동 각국에서 광범위한 예방접종을 달성하기는 지난하다. 이들 국가의 의료 인프라와 운송 시스템은 창궐하는 코로나19를 따라 잡지 못할 것이다.



자국 이기주의는 팬데믹의 종식에 어두운 그늘을 드리운다. 백신 최대 생산국인 미국의 모르쇠와 유럽연합 회원국들의 백신 배분 갈등은 지구촌 공생의 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나누지 않으면 모두가 위험하다. 봄은 왔지만 인류는 여전히 혹한의 겨울 한가운데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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