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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 교수의 ‘백세 일기’와 내면의 안부

매일 일기를 쓰며 지난 시간에 머무르기보다는 어제보다 더 새로운 내일 살기를 꿈꿔


소싯적 책깨나 읽었다. 학창 시절 짊어진 삶의 무게가 통찰의 경지까지 이르게 할 다독은 아니었다. 그래도 세상천지 보편적 섭리들을 주제넘게 채워 넣었다. 얄팍한 독서 이력은 우쭐할 만큼의 잡학 다식으로 존재했고 때론 대화에서 편리할 때가 있었다.     



충동과 포기의 호르몬에 속절없이 지배당하던 고등학교 3학년 무렵에는 목전에 다다른 입시로 읽고 싶었던 아니 어쩌면 그 시절 읽었어야 될 책들을 묵혀두었다. 성장기의 책은 때가 있기에 나이 오십이 넘어선 지금에 이르러 제대로 된 독서를 했다고 자평하기도 부끄럽다. 끼니를 거른 심정이다.     



거칠고 포만한 세상살이에서 사람과 사람 간의 대화는 직선이 편할 때도 있다. 모든 것이 조급해진 사회에서 근접하지 못할 관계라면 할애할 시간도 없을 터이다. 그러나 솔직함으로 포장된 직설적 화법은 단절을 가져올 가능성이 농후하다. 사교의 핵심은 곡선이다. 우회 화법이다. 말속에 촌철살인까지는 아니더라도 행간을 남긴다면 더없이 좋을 일이다. 그러나 시 같은 언어는 선천적이지 않다. 대게 책을 통해 얻어지는 후천적 재능인 경우가 많다.     



모든 인간관계는 이기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관계를 확장하는 것이다. 그 단아하고 변치 않을 인생의 철학을 책은 일깨워 주었다. 그 많던 책들은 어디론가 새 주인을 찾아 떠났고, 서재엔 군데군데 밑줄 쳐둔 문장들이 수두룩한 책들만 남아있다. 시간이 지나 왜 밑줄을 쳤는지 가늠하기 어려운 책들도 있다. 그러나 책이 전하는 진심에 내 스스로 감동했을 터이다. 그 소중한 시간이 지금의 나의 영혼일 것이다.     



세상의 모든 책은 모든 사람의 삶을 장려한다. 축복한다. 우리들 대부분은 평생을 살아도 무겁게 가라앉은 진실을 끝내 대면하지 못하고 가볍게 보풀처럼 흩날린다.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될 타인의 시선 속에서 내면의 나를 발견하지 못하고 인생의 결정을 지리멸렬 미루고 있다면 독서만큼 위로와 조언의 말을 전해줄 도구는 없다.     



꽤 잘 살고 있는데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버거움 때문에 비루한 일상이라 오판하고 있다면 안데르센의 동화책도 희망이 된다. 책은 본디 그런 것이다. 읽지만 사람을 듣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대화할 이가 없어 외로울 땐 더더욱 그렇다.     



살아있는 동안 정신과 인간적 성장이 가능하고, 신체는 노쇠해져도 정신적 성장은 지속될 것이라는 믿음을 확인시켜준 김형석 교수의‘백세 일기’를 근간에 읽고 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출판사의 소개 글처럼 한 세기의 무게가 담긴 단단하고 빛나는 성찰의 내공을 엿본다. 그의 말대로“오래 살기를 잘했다.”라는 스스로의 평가에 부합되는 책이다.     



100세가 넘어선 지금도 여전히 성실하게 삶의 순간을 채워나가는 이의 고백은 내가 꿈꾸는 일상의 바이블이다. 매일 밤, 작년과 재작년의 일기를 읽고 오늘의 일기를 쓰는 그는 그렇게 충만한 삶의 시간을 되새기고, 지난 시간에 머무르기보다는 어제보다 더 새로운 내일을 살기를 꿈꾼다. 그 방식은 독서와 글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내면의 안부를 스스로가 묻는 것이었다.     



“나는 우리 사회를 불행과 고통으로 끌어들인 문제의 핵심은 아주 평범한 '공동체 의식'을 상실했거나 포기한 데 있다고 본다. 솔직히 말하면 더불어 살 줄 모르는 사회를 만들었다는 뜻이다... 청년의 '지성을 갖춘 용기'는 소중하다, 장년의 '가치관이 있는 신념'은 필수적이다. 노년의 '경험에서 얻은 지혜'도 있어야 한다. 이 3세대가 공존할 때 우리는 행복해지며 사회는 안정된 성장을 누릴 수 있다.”     



“90을 넘기면서 가장 힘든 것은 늙는다는 생각이 아니다. 찾아드는 고독감이다. '나 혼자 남겨두고 다 떠나가는구나'하는 공허감이다.”     



‘지성을 갖춘 용기’, ‘필연적 고독감‘이라는 책 속 그의 지혜는 결국 책의 힘으로 채워진다. 그는 이 평범하고 당연한 해법을 진즉에 깨우쳤던 것이다. 백세를 살아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백세가 되어도 맑은 정신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김형석 교수처럼 내면의 안부를 끊임없이 묻는 일상을 우린 과연 살고 있는 것일까. 그 질문의 답은 과거에도 앞으로도 책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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