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웜홀 너머 가요 '옥경이'의 추억

30여 년 전, 혈기왕성한 의대 신입생이 되었을 때, 모르는 것 투성이였다. 열정은 샘 물 같았고 현실은 단단한 호두 표피 같았다. 생물, 화학, 물리 그리고 뜬금없는 한문까지 해야 할 공부는 도무지 끝이 없었다. 때론 난해했고 간혹 무기력했다. 숫자와의 싸움은 고교를 마치면 끝날 줄 알았다. 그러나 오판이었다. 모진 숫자와 수식 그리고 원소와 기호들은 아직 가야 할 공부가 산적했음을 일깨워 주었다.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가는 청춘의 푸른 꿈은 온통 아들 걱정 뿐인 어머니의 채근으로 채색되었다. 어느 날,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간 보세 옷집, 쉽사리 용기 내기 수월찮은 베이지색 양복은 일취월장 아들의 건투를 빌어 주시는 어머니의 서낭당이었고, 흰색 운동화는 시골 청년의 멋 내기 끝판 왕이었다. 서울 살이 내 첫 의상은 그랬다. 나고 자란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가기 전 가장 먼저 한 일이었다.     



입학 후, 생경한 의대에 대해 ‘상투’에 가까운 관점으로 마냥 공부만 했다. 선배들이 풀이해 주고 가르쳐줘도 스스로 의사의 학습법을 익히는 데는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하긴 누군들 처음이 창대하겠는가. 나는 그렇게 의사의 길로 끈덕지게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흐릿한 기억이지만 의대 동기들의 모임 첫날이었다. 강의실에서 자기소개를 하며 불렀던 성스러운 입교 가는 ‘옥경이’였다. 그 후 나는 교내에서 자연스레 ‘태진아’로 불리었다. 유난히 흰색 양복을 선호하는 가수 ‘태진아’를 닮았었나 보다. 그렇게 트로트는 내 지난한 의대 생활 청춘의 인문학이었고 삶의 흔적이 되었다.     



4분의 4박자를 기본으로 하는 트로트는 영어로 '빠르게 걷다', '바쁜 걸음으로 뛰다' 등을 뜻한다. 그러고 보니 나의 열혈 청춘의 자화상을 쏙 빼닮았다. 일각에는 트로트가 일본의 엔카에 뿌리를 둔 왜색 음악이라 비판하기도 한다. 또 일각에서는 재즈 템포의 4분의 4박자 곡으로 추는 사교댄스 연주 리듬을 일컫는 폭스트로트(fox-trot)의 영향을 받아 한국인의 정서가 녹아든 독자적 음악이라 평가한다.     



허나 그 근원이 무슨 상관이랴. 트로트가 일본식 노래이기에 버려야 한다면, 미국식의 팝송과 힙합은 왜 버리지 않는가? 글로벌 시대에 감 떨어지는 꼰대식 발상이라며 청년들에게 몰매 맞을 일이다. 음악이 외래적이라 배격한다면 한류도 외국인들에겐 외래적이라 배척당할 것이다.     



그야말로 트로트 전성시대이다. TV를 켜면 방송국마다 어김없이 트로트를 방영한다. 방송국에서는 다양한 오디션 프로그램을 만들어 시청자들의 이목을 끈다. 다양한 출연자들이 벌이는 경쟁 방식은 쫄깃하기도 하고 그들이 부르는 노래 가사에 잊었던 추억을 소환하기도 한다. 시청률도 가히 넘사벽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온 국민이 트로트에 열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는 팬데믹이 가져온 문화 현상이다. 타인과의 거리 두기로 오랫동안 코로나 19로 지친 사람들 마음에 트로트가 위안을 주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트로트는 상실의 시대를 기록한 문장일지도 모른다.     



호사가들은 트로트가 관광버스용 ‘위락 음악'이라는 거친 조롱을 일삼기도 한다.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트로트가 우리네 삶 속에서 지난 시간들을 아로새겼다는 것이다. 거대담론인 불의에 저항하거나 정의를 부르짖지 않아도 소소하지만 스며드는 개인의 언어로 민초들의 땀과 눈물을 위로했다. 나도 그렇게 위로받고 힘을 내었다. 새내기 의대생일 때 동기들 앞에서 낭랑하게 불렀던 노래를 너무 오래 잊고 있었다. 웜 홀(worm hole)을 넘나들어 30년의 시공을 초월해서, 막스 베버의 말대로 '분노도 편견도 없이' 나지막이 불러보는 옥경이, “너도 나도 모르게 흘러간 세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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