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하던 시절, 간부 회의실 벽면에는‘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없다’는 격언이 걸려 있었다. 이 격언을 다시금 상기하는 것은 군이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적인 코로나19 바이러스 경계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번 청해부대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의 본질도 여기에 있다.
아라비아반도의 예멘과 동아프리카 소말리아 사이에 위치한 아덴만 해역에서 국제 연합작전을 수행하던 청해부대는 국군의 첫 전투함 해외 파병부대이다. 머나먼 이국땅에서의 숭고한 노고는 장병 90%가 코로나19에 확진된 사태로 귀결되어 국가의 역할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동일 집단 최악의 감염률로 기록될 것은 분명하다. 인재라고 비판받아도 딱히 변명의 여지가 없을 듯하다. 장병들은 백신 접종을 못 한 채 사실상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다. 이동조차 자유롭지 못한 배 안에 있었다.
부대원의 언론 인터뷰를 통해 확인된 군 당국의 방역 태도는 의사로서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함 내 의무실에선 심한 증세만 없다면 완치 판정을 내리고 업무로 복귀시켰다는 대목에선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피 가래가 나올 정도로 증세가 심해 여기저기 살려달라는 사람이 속출했으며 지옥이 따로 없었다’라는 병사의 전언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해외 파병 사상 초유의 집단감염 사태도 그렇거니와 작전을 수행하던 배를 도중에 인계하고 조기 귀국한 사실도 국군 역사에 흑역사로 기록될 것이 자명하다.
국내에서는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부터 예비군까지 접종을 마쳤지만 정작 해외파병 국군에게는 백신을 접종하지 못한 안일한 사태는 곤혹스럽다. 사회 전 분야의 백신 접종을 책임져야 하는 보건당국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파병 장병들의 백신 접종을 우선순위로 챙기지 못한 우리 국방부의 태도는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군의관 시절 소속 부대였던 국군의무사령부는 전국 12개 군 병원과 의무학교, 의학 연구소 등 15개의 부대로 구성된 군 의료기관이다. 전문 의료 인력과 첨단화된 장비와 시설을 구비하고, 장병 질병 치료는 물론 질병 예방연구, 군 전문 의료 인력 양성 등의 군 의료 서비스 제공을 위해 창설된 군 조직이다. 해외파병 의무지원도 고유의 업무 중 하나이다. 스스로가 “장병과 국민이 신뢰하고 끝까지 책임지는 의료 서비스”를 구현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의무사령부의 역할은 청해부대 집단감염 사태에 없었다. 해외파병 부대원에 대한 의무사의 역할은 존재했어야 했고 국방부에 백신 접종 건의를 지속적으로 추진했어야 마땅했다.
군 당국도 나름의 여러 사정이 있었겠지만 국제 연합작전을 수행 중인 아덴만 인근 미군부대나 인접 국가로부터 청해부대의 접종을 지원받는 방안은 검토되어졌어야 했다. 남수단에 파병된 한빛부대는 UN군 지원으로, 아랍에미레이트에 파병된 아크부대는 주둔국 협조로 접종을 마친 경우와 청해부대가 극명하게 대비되기 때문이다.
복사꽃과 자두꽃은 개화하는 시기가 같다. 두 꽃을 묶어 도리(桃李)라고 칭한다. 사마천의‘사기’이장군열전 태사공(太史公)편에는 도리불언 하자성혜(桃李不言 下自成蹊)라는 격언이 나온다. ‘복숭아나무와 자두나무는 말이 없지만 나무 밑에 절로 길이 생긴다’는 의미이다. 부하들을 자기 몸처럼 아꼈던 중국 한나라의 명장 이광을 칭송한 표현이다. 복숭아나무와 자두나무는 향기로운 꽃과 단 열매를 맺으며 묵묵히 사람들을 위해 공헌한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아도 세인들에게 신뢰를 받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도리의 참된 가치이다. ‘유능한 안보 튼튼한 국방’은 구호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국군장병에 대한 군 당국의 도리는 무엇이었는지 통렬하게 되돌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