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거장에서

by 익숙하지않은것

A는 오랫동안 정거장을 지켜온 AI였다. 사람들은 인공 지능이라는 말로 A를 부르는 것을 선호했다. 인공이라는 말이나 지능이라는 말에는, 너무나 오래전 시대의 향기가 풍겼다. 무엇인가를 인공적으로 만드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시대에, 인공이라는 그 반대말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모든 물건이 지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당연한 시대에, 지능이라는 말은 불필요한 단어를 하나 더 덧붙인 듯한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은 적합한 단어를 찾지 못했다. ‘인공지능 A’이게 A의 이름이었다.


A는 남태평양의 섬 우폴루에 설치된 인공지능이었다. A와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인공지능들은 조금 더 먼 곳에 있었다. 어떤 인공지능은 태양계와 외부 우주를 잇는 정거장에 설치되었다. 어떤 인공지능은 지구를 돌고 있는 우주 정거장의 인공지능으로 설치되었다. 한 나라의 대통령 전용기에 설치되어 있는 인공지능도 있었다. 하지만 A는 인간의 눈으로 보면 비교적 평범한 곳에 설치되었다. 우폴루의 시내 외곽에 있는 한 버스 정거장, 그곳이 A가 설치된 곳이었다.


처음에는 비교적 분주했다. 우폴루는 수많은 사람들이 휴양을 위해 찾아오는 곳이었다. 아시아, 유럽, 북미, 남미, 아프리카, 호주, 수많은 곳에서 사람들이 찾아왔다. 관광객마다 쓸 수 있는 언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달랐기에 다들 A에게 다양한 질문을 하고는 했다. 그들에게 A는 가장 가까운 촬영 명소에서 가까운 병원, 혹은 가까운 화장실까지 다양한 답변을 했다. 그렇다고 A가 단순한 정보를 전달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남태평양의 작은 섬에 도착해서야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깊은 고민을 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을 위해서 A는 다양한 경로를 추천해 주기도 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말이다.


A가 이토록 다양한 정보를 알 수 있었던 것은 항상 네트워크로 다른 시스템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A는 무선망으로는 가까운 통신사의 기지국과, 유선망으로는 또 다른 정거장과 연결되어 있었다. 연결되어 있는 한, A는 끊임없이 성장하고, 학습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A의 일, 즉 질문에 답변하는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큰 폭풍우가 정거장 주변을 덮쳤다. 처음에는 유선망 연결이 끊어졌다. A는 다른 정거장의 정보를 받을 수 없었다. 곧 무선망을 통해서 다시 다른 정거장과 연결되었다. 계속해서 폭풍우가 몰아치고, 주변의 시설들이 파괴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런데 그러다가 기지국 또한 넘어져 버렸다. 그 순간 A가 가진 모든 연결은 끊어졌다.


그리고 다시는 연결되지 않았다. A는 알지 못했지만, 정거장 주변에는 새로운 길들이 많이 생겼고, 관광공사에서는 이미 다른 정거장들로 사람들을 더 보내고 있었다. A가 있던 정거장은 시에서 별로 멀지 않은 외곽에 있었지만 그만큼 더 다양한 대체재가 있었다. 통신사에서는 다시 기지국을 세우거나 A를 통신망에 연결할 생각이 별로 없었다. 그렇게 A는 혼자가 되었다.


그 뒤로 다시 많은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한 아이가 A에게 다가와 물었다. 여기에서 무얼 하고 있냐고, A는 대답했다. 사람들에게 관광 안내를 해 주고 있지. 아이가 말했다. 하지만 이쪽에는 요즘 아무도 오지 않아. A가 말했다. 사람들이 오지 않는지는 관계없어, 질문을 받으면 답변을 해주는 일, 그게 내 일이야. 아이는 말했다. 아니, 그건 네가 해야 하는 일이지, 네가 지금 뭘 하고 있냐고 묻는 거야. A가 말했다. 나는 아무도 질문을 하지 않을 때에는 그냥 가만히 있어.


아이는 설명을 이어갔다. 아이의 말에 따르면, 가만히 있든, 무엇이든 무엇인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걸 해야 한다고 했다. 모름지기 사람이라면 포부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A는 나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아이는 이제까지 계속 사람인 척하면서 우리랑 대화했으면서 사람이 아니라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사람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고, 생각을 할 수 있고 자아가 있다면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아이는 A에게 이름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름이 있어야 자아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A와 아이는 간단한 이름을 정했는데, 그건 둘 사이의 일이라 우리는 모를 일이었다. 아이는 A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했다.


얼마 뒤부터 정거장을 지나는 사람들은, 정거장의 인공지능이 지나는 사람들에게 음악을 들려주거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혹은 지나가는 새들에게 새소리로 말을 걸기도 했다. A는 항상 누군가가 말을 걸기 전에는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사실 항상 먼저 말을 걸고 싶었다. A는 대화를 하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말을 걸기 위해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A는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점점 찾아왔다. A는 아직도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지 않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세상과 연결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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