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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림 Mar 30. 2024

안녕, 나의 아기판다 푸바오

푸바오가 나를 살게 했다

이 브런치는 나의 과몰입 아카이브이니 푸바오 얘기도 빼놓을 수는 없겠다.


푸바오를 처음 만났던 시점은 2021년 늦은 가을이었다. 바닥을 쳤나 싶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소진되어 있었다. 도저히 살아나갈 기력이 없어 어떤 시기엔 먹고 자고만을 반복하기도 했다. 기력이 떨어지고 얼마 후에는 그동안 오래 버텨왔던 몸마저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그러던 중 여행 숙소에서 본 유퀴즈 재방송으로 에버랜드에 판다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당시 강철원 사육사가 그렇게 바라고 원하던 아기판다는 그 시점에 이미 태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정적으로, 그 아기판다 푸바오의 매주를 유튜브로 방송하는 “전지적 할부지 시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판다는 식육목의 곰과 동물인데, 저렇게까지 인간에게 곁을 내주는 친구들이었던가…? 저렇게까지 인간에 대한 애착과 사랑이 얼굴에 드러나는 존재들이었어?

에버랜드의 판다 바오 가족들의 인간에 대한 사랑은 마찬가지로 인간이 사랑과 열정, 헌신을 쏟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판다는 하루 중 16시간을 잔다. 쭈욱 스트레이트로 자는 게 아니라, 대나무를 먹고, 자고, 싸고를 간헐적으로 반복한다. 그들의 생활도, 움직임도 느릿느릿하고 단조롭다. 실제로 판다월드에 가 보니, 이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자고 있었다. 유튜브 컨텐츠에 나오는 재미있는 모습은 실제의 1/20정도일까. 사람들은 이 모습을 보며 “쟤들은 인간보다 팔자가 좋다”며 혀를 차고 있었다. 이동의 자유가 없는 동물원의 개체들이 과연 팔자가 좋은 건지는 당사자에게 물어봐야 알 문제지만, 판다들과 인간은 말이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만은 확실했다. 삶의 가치는 바쁘게 돈을 버는 데 있지만은 않다는 것. 한정된 좁은 공간에서 반복되는 느릿한 생활을 해도,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다면 행복해질 수 있다. 맨날 먹고 자고 싸는 같은 행동의 반복인 것 같아도, 판다와 인간이 매일 주고받는 사랑의 결과물이니 늘 조금씩 다르고 특별하다.

눈을 좋아하는 푸바오.

에버랜드는 보통의 동물원과 달리 소풍과 가족 행사로 늘 바쁜 시설이고 나의 몸은 병약했다. 그래서 아주 자주 갈 수는 없었지만 비수기와 푸바오 생일(7월 20일)에는 비싼 입장료와 먼 거리를 감수하고 에버랜드에 가서 하루종일 푸바오가 먹고, 자고, 싸고, 때로는 푸질머리를 부리는 모습을 멍때리며 보고 돌아오곤 했다. 그러면 안개가 가득 덮인 내 인생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나의 삶이 어떻게 요동치든 늘 그 자리에는 푸바오가 있었다. 비록 2023년, 또 한번의 유퀴즈가 방송된 뒤 판다월드엔 발 디딜 자리도 없게 되었을지언정. 나더러 ”판다에 미친 이상한 사람“이라고 하더니 작년에는 ”그 판다가 푸바오였어?“ 라고들 했다. 내가 맨날 보던 그 컨텐츠들은 갑자기 초인기 컨텐츠가 되어 당황스럽게도 했다.

푸바오 두 살 생일 때의 모습. 이때는 아직 푸멍이 가능하던 때였다.

“푸바오” 하면 따라붙는 말은 늘 “4살이 되면 떠나야 한다” “기간한정”이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아니 지금 있을 때 잘해주면 되지, 왜 벌써 떠나는 얘기부터 해? 라고 생각했는데 그 날이 벌써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푸바오에게 나같은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기분이다. 그 자리에 가도 푸바오가 없다니, 가슴이 저며온다. 아니다. 푸바오를 못 봐도 상관없다. 다만 인간들의 이해관계로 인하여, 푸바오는 인간도 힘든 장거리 이동과 환경변화를 겪어야 한다. 아무리 판생 2막이라고 힘주어 말해봤자 평생 자라온 환경과 애착인간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지는 건 이 친구에게 너무 가혹한 일 아닌가. “할부지”가 날 버렸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아니다. 푸바오는 할부지 말 다 알아듣는 똑똑한 애라서 할부지가 설명해준 말을 다 이해하고 있을 거야.


푸바오, 사랑한다. 늘 당당하고, 행복과 편안함만이 있는 삶을 늘 누리길 바란다. 잠시 힘든 일이 있어도 엄마와 할부지들이 주었던 사랑들을 기억하며 이겨낼 수 있을 거야. 그 곳에서 주고받았던 사랑의 온기를 기억하며, 나도 어떻게든 살아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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