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집(群集)의 자연법칙

비난을 멈출 때 보이는 구조의 질서

by diogenes

군집의 자연법칙~

- 비난을 멈출 때 보이는 구조의 질서 -

인간은 함께 모인다. 모임은 이상으로 시작하지만 곧 분포로 수렴한다. 우리는 자주 묻는다. 왜 모두가 같은 열기로 움직이지 않는가. 왜 어떤 이는 앞에서 태우고, 어떤 이는 뒤에서 머무는가. 그러나 오래 관찰하면 알게 된다. 군집(群集)은 의지(意志)의 총합(總合)이 아니라 에너지의 분포(分布)로 움직인다는 것을. 언제나 소수가 방향을 만들고, 조금 더 많은 이들이 그 방향을 지지하거나 관망하며, 다수는 그로 인해 형성된 장을 누린다. 이것은 타락이 아니라 구조다. 우리는 스스로를 결단의 존재로 믿는다. 그러나 일상을 지배하는 것은 의지가 아니라 관성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정치적 동물’이라고 했지만, 그 동물성은 고귀한 이전에 생존을 전제로 한다. 생존은 에너지의 보존을 뜻한다. 책임은 에너지를 요구하고, 위험은 심리적 비용을 요구한다. 따라서 군집 안에서 먼저 에너지를 태우는 자는 항상 소수로 남는다. 이것은 도덕적 실패가 아니라 자연의 경향이다. 권력과 책임의 관계를 분석했던 미셸 푸코는 권력이 개인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흐른다고 보았다. 책임 또한 그렇다. 그것은 선언으로 분배되지 않는다. 흐름 속에서 특정 지점에 집중된다. 군집은 언제나 중심을 만든다. 그리고 중심은 언제나 더 많은 무게를 감당한다. 반면 안락은 넓게 퍼진다. 위험은 집중되고 이익은 확산된다. 이 역시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구조(構造)의 방향성(方向性)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미워하는 이유는 그를 도덕의 잣대로 보기 때문이다. 왜 저 사람은 나 만큼 책임지지 않는가, 왜 저 사람은 같은 무게를 들지 않는가. 그러나 구조를 이해하는 순간 질문은 바뀐다. 왜 항상 이런 분포가 반복되는가. 막스 베버는 행위를 이해하려면 동기보다 맥락을 보아야 한다고 했다. 군집 또한 그렇다. 개인의 결함이 아니라 장(場)의 구조가 반복을 만든다. 비난을 멈추면 감정이 가벼워진다. 원망을 거두면 에너지가 남는다. 군집을 설계의 대상으로 보는 순간 그 안에는 다른 차원의 즐거움이 생긴다. 모두를 바꾸려 하지 않고, 소수의 동력을 보호하며, 다수의 존재를 인정하는 태도. 이것은 체념이 아니라 성숙이다. 완벽한 군집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구조를 이해한 자는 불완전함 속에서도 질서를 본다. 그리고 그 질서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선택한다. 군집은 늘 흔들린다. 그러나 흔들림 조차 일정한 패턴을 따른다. 그 패턴을 읽은 뒤에는 더 이상 화낼 일이 없다. 다만 중심이 어디인지 알게 되었을 뿐이다.


2026 2月末, 진짜 2월이 다 갔다

獨樂齋에서 幽人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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